창립 40주년이라는 상징적 시기에 수장으로 취임한 한인우 한국천문연구원장은 그동안의 꾸준한 투자와 노력을 바탕으로 천문연이 본격적인 인프라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강조한다. 또한 내부적으로 질적인 성과를 독려하는 다양한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며 이른 시일 내에 세계적인 연구성과 창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Q. 이제 곧 취임 200일을 맞게 되는데.
어느 덧 취임 후 반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겠지만 향후 3년의 경영성과 계획을 수립하고, 제반여건을 마련하느라 안팎으로 바쁘게 지내온 터라 6개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린 것만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경영성과 계획을 수립하면서 구성원들과의 토론을 거쳐 합의점을 도출시켰다는 것이 가장 뿌듯하게 기억됩니다. 연구현장의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실무진과 크고 작은 합의의 장을 마련했고, 지난 7월에는 경영진과 주요 담당자 40여명이 한자리에 모여 자정이 훌쩍 넘는 시간까지 기관의 미래에 대해 열띤 토론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천문연 가족들은 ‘우주의 신비에 대한 지식창출로 국가와 인류사회에 기여한다’라는 새로운 비전을 수립했습니다. 또한 도전적·창의적 연구를 수행하는 2개 이상의 최정예 연구그룹을 육성하고, 개방형 혁신을 모태로 2건 이상의 SCI급 논문을 발표한다는 경영목표도 마련했습니다.
이외에 취임 전부터 중요한 가치로 여겨왔던 행복과 소통의 증진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예컨대 조직 곳곳에 숨어있는 애로사항을 파악하고 개선방안을 모색하고자 기관장 직속 ‘행복·소통위원회’를 창설했으며, ‘소통의 토크쇼’를 두 차례 개최해 전 직원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Q. 천문연의 핵심 연구분야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천문연의 연구개발 활동은 크게 3가지 부문으로 구분됩니다. 첫째는 지구와 태양계를 포함한 별과 은하, 우주, 그리고 생명의 기원을 밝히는 순수기초연구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기초연구의 효과적 수행을 위한 첨단기기 인프라 구축도 핵심 연구 분야에 속합니다. 마지막은 태양플레어 폭발 등의 우주 위험 대응을 포함한 국가·사회적 현안을 해결하는 공공연구가 있습니다.
지난 40년간 천문연은 이 3개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들을 창출했습니다. 예컨대 순수 기초연구에서는 외계행성 찾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난 2009년 2개의 태양을 공전하는 외계행성계을 발견함으로써 관련 논문이 미국 천문학회지가 선정한 2년간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5편 중 하나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공공 연구에 있어서도 운석 추락, 위성 충돌 같은 우주 위험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범정부 대응체계 안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지난 5월 수립된 ‘우주위험대비 기본계획’에 근거해 ‘우주물체감시시스템 개발 사업’을 본격 추진 중입니다.
Q. GMT 등 인프라 구축에도 많은 진전이 있던 것으로 압니다.
인프라 부문의 경우 지난 10여 년간 괄목할 만한 성과들이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2009년 착수한 거대마젤란망원경(GMT) 국제공동개발 사업입니다. 국내 광학천문학연구에 획기적 발전을 이룰 프로젝트인 만큼 2020년경 GMT가 완공되면 세계를 선도하는 대형 성과 창출이 기대됩니다.
2011년에 완성된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 역시 일본 국립천문대의 일본우주전파관측망(VERA)과 통합, 2012년부터 직경이 2,000㎞에 달하는 세계 최초의 4채널 초장기선 전파간섭계(VLBI)로 거듭났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연구성과들이 도출될 것입니다.
덧붙여 올해 말 완공 예정인 ‘외계행성 연구시스템(KMT-Net)’, 작년 11월 과학기술위성 3호에 실려 발사된 적외선 ‘우주망원경 미리스(MIRIS)’, 미국 맥도널드 천문대에서 시험관측 중인 ‘적외선 고분산 분광기(IGRINS)’도 세계적 성과창출이 기대되는 인프라입니다.
이외에 최근 우주물체 전자광학 감시시스템(OWL) 몽골관측소가 완공됐고, 내년에는 1m 구경의 인공위성 레이저 추적 시스템(SLR)이 완공 예정에 있습니다.
Q. GMT 프로젝트에 대해 좀더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GMT 거대망원경은 직경 8.4m의 반사경 7장으로 직경 25m의 반사경을 구현한 세계 최대 지상 광학망원경입니다. 허블 우주망원경과 비교해 집광력이 100배, 분해능은 10배 뛰어나기 때문에 생명체 존재 가능성이 있는 외계행성 탐사와 빅뱅 직후 우주 초기의 모습을 더욱 정밀하게 탐사할 수 있습니다. 최근 천문학계가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거대 블랙홀의 미스터리도 연구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 천문연과 미국의 카네기재단, 스미소니언연구소, 하버드대학, 애리조나대학, 텍사스대학 오스틴캠퍼스, 호주천문재단, 호주국립대학, 브라질 상파울루대학 등 11개 기관이 건설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GMT의 부경(보조망원경) 개발을 위한 시험모델 개발에 참여해 지난해 애리조나대학과 공동으로 비축비구면 반사경의 성능 검증을 수행했고, 개발된 반사경과 셀을 결합해 부경 개발 기술 완성도를 높이는 시험을 수행 중입니다. 또 하버드-스미소니언 천체물리센터, 텍사스대학과 함께 각각 GMT 1세대 관측기기인 초고분산 가시광 분광기(G-CLEF)와 근적외선 고분산 분광기(GMTNIRS)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Q. 천문연의 당면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현재 천문연은 양적 성과에서 질적 성과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연구의 패러다임을 변경하는 과도기에 있습니다. 사실 천문연의 성과는 양적인 측면에서 이미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다소 뒤쳐져 있는 게 사실입니다. 40년의 역사 동안 네이처나 사이언스 지에 주저자로 논문을 게재한 경험이 전무한 실정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꾸준한 투자와 노력을 바탕으로 이제 본격적인 인프라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판단합니다. 내부적으로도 질적인 성과 창출을 독려하는 각종 제도를 정비하고 있는 만큼 이른 시일 내에 세계적 수준의 연구성과 창출이 가능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양적 성과는 현재 수준을 유지하는 한편 IF(영향력 지수) 상위 20%의 SCI(E)급 논문 비율과 분야별 CI(인용지수) 상위 10%의 SCI(E)급 논문 비율, 국제 공동 논문게제 비율, 공동연구 실적 같은 질적 성과지표에 집중하는 전략목표를 설정했습니다.
Q. 임기 내에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뀌뜸해주세요.
국내 천문 연구도 이제 추격형에서 벗어나 개척형·선도형 연구를 추진할 수 있는 시기를 맞았다고 봅니다. 향후 10년 내에 천문연에서 세계적인 연구그룹이 3개 이상 탄생할 수 있도록 탄탄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개인적인 최우선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국내외 우수 인력을 확보와 육성하는데 역점을 둘 생각입니다. 이들이 ‘최정예 연구그룹’으로서 세계를 놀라게 할 성과를 내도록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단기적인 연구 성과를 채근하지 않고 10년 정도 장기적 목표를 갖고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자에게는 연구비 지원과 급여에서 특별대우를 할 예정입니다. 또한 ‘개방형 혁신’을 통해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대형 성과가 창출될 수 있도록 제반 제도와 여건도 정비해 나갈 방침입니다.
Q. 창조경제 생태계 조성과 관련된 천문연의 기여방안은 무엇입니까.
천문연은 창조경제 실현에 기여하고자 3대 혁신전략을 수립했습니다. 창의·선도형 기초원천 지식기반 사업 강화, 우주강국 실현을 위한 우주과학 연구 선도, 산·학·연·군 협력체계 강화가 그것입니다. 먼저 창의·선도형 기초원천 연구사업 강화를 통해 대형 연구성과를 창출하고 창의인재 육성에 앞장설 계획입니다. 또 민·군 기술협력, 히든챔피언 육성을 위한 중소 벤처기업 발굴 등 창조경제 생태계 조성을 위한 산·학·연·군 협력 및 개방화에 힘쓸 것입니다.
실례로 천문연은 이미 삼성탈레스, LIG 넥스원 등 방위산업체와의 공동연구를 강화하고 전년대비 중소기업 기술자문 인력·예산을 대폭 확대한 상황입니다. 연구성과의 중소기업 기술이전에도 만전을 다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4월에는 중소기업 부설연구소를 유치, 천문연의 연구장비를 활용한 광학제품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6억5,000만원 상당의 매출실적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Q. 기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천문학 연구는 고등 지성을 가진 인간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천문학 연구를 통해 우리는 이 거대한 우주의 기원과 진화 과정을 이해하고,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통찰을 얻기 때문입니다. 즉 천문학은 자연과학 가운데서도 가장 대중의 관심과 흥미를 끄는 학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천문연은 지금껏 이뤄낸 것보다 앞으로 이뤄야할 것들이 훨씬 더 많지만 세계 최고의 인프라를 기반으로 세계 최고의 연구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천문연이 전 세계 천문연구의 메카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쌓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조급해하지 않고 ‘섬김과 소통’의 초심을 상기하며 차근차근 예정된 사업들을 추진해나가겠습니다. 언젠가 대한민국 천문학자의 이름과 연구성과가 각국의 과학 교과서에 실리는 날을 꿈꿔 봅니다.
한인우 원장 프로필
학력
1984년 서울대 물리학 학사
1989년 미국 피츠버그대학 천문학 박사
경력
1991~1992 한국천문연구원 보현산천문대건설팀장
1992~1993 한국천문연구원 위치천문연구실장
1994~1995 한국천문연구원 응용천문연구부장
1995~1998 한국천문연구원 보현산천문대장
2002~2005 한국천문연구원 광학천문연구부장
2005~현재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전임교수
2007~2008 한국천문연구원 연구발전협의회 부회장
2009~2010 한국천문연구원 연구발전협의회 회장
2014~현재 한국천문연구원장
분해능 (resolving power) 현미경, 망원경 등이 인접해 있는 2개의 광원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