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가 기함 S80 T5에 새로운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을 실었다. 2리터짜리 4기통 가솔린 엔진에 8단 자동 변속기를 달아 힘과 효율을 모두 챙겼다. 볼보는 그동안 독일 브랜드들에 밀려 저평가된 측면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으로 무장한 S80 T5는 상품 가치 측면에서 흠잡을 데 없는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볼보의 기함 S80은 끈덕진 생명력을 자랑한다. 1998년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지금 거리에서 볼 수 있는 2세대로 모습을 바꾼 건 2006년이었다. 지난해 하반기엔 다시 안과 밖에 손질을 가했다. 새로운 S80의 두드러진 변화는 파워트레인에서 찾을 수 있다. 볼보는 다운사이징, 모듈화, 플랫폼 공유 등 자동차 업계 흐름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 결과 중 하나가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이다. 볼보는 신형 2리터 4기통 가솔린·디젤 엔진에 8단 자동변속기를 물렸다. 이를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이라 부른다. 2리터 엔진이지만 힘과 연료 효율성이 현저히 좋아졌다. 기존 모델에 비해 연비를 최고 26%까지 개선했다. 볼보는 앞으로 중대형·SUV 라인업에도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을 적용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S80 T5는 가솔린 엔진을 얹은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을 품고 있다. 볼보가 추구하는 변화를 가장 잘 보여준다. 볼보는 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아우디 A6 등을 경쟁상대로 지목했다.
볼보 기술진이 새로 다듬은 S80 T5는 외모가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크롬 장식을 조금 더 사용해 세련됨을 더한 정도다. 단정하고 수수한 이미지는 이전 S80과 변함이 없다. 간결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차체는 점잖은 디자인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에게 오히려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볼보를 대표하는 기함이지만 운전하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크지도 않다. 길이, 폭, 높이는 4,850×1,860×1,495mm이다. 실내 크기를 결정짓는 휠베이스는 2,835mm다. 그랜저와 폭은 같지만 70mm 짧고 25mm 높다. 휠베이스는 10mm 짧다. 편안하게 운전할 수 있는 크기다.
시승을 하기 위해 볼보 S80 T5와 대면했다. 운전석 문이 묵직했다. 두툼한 문짝을 보며 역시 볼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하지만 세련된 북유럽 스칸디나비아풍 실내공간은 그대로다. 운전석에 앉아보면 포근한 느낌이 든다. 실내 장식은 전체적으로 검정 바탕에 호두나무 장식을 섞어 차분한 느낌을 준다. 변속기와 센터페시아 버튼 배치는 여느 볼보 모델과 같다. 차량 설정, 전화, 멀티미디어, 라디오 등을 조작할 수 있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조작이 쉽다. 한글 지원이 되지 않는 게 조금은 아쉬운 점이다. 내비게이션은 국산 지니 맵을 사용하고 있다.
프리미엄 수입차 브랜드 중에는 본사에서 개발한 한국형 내비게이션을 사용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한국형’이란 말과 다르게 편의성이 떨어지는 게 대부분이다. 때문에 진짜 한국 실정에 맞는 국산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사용하는 게 사용자 입장에선 더 실용적이다.
볼보 S80 T5는 운전대 또한 두툼하다. 수동으로 운전대 각도와 길이를 조절할 수 있다. 자동이 아닌 게 의아하긴 했지만 큰 불편을 주는 건 아니다. 대신 패들시프트와 열선 기능을 갖추고 있다. 안락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볼보 좌석도 그대로다. 몸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안락한 느낌이 그만이다. 과격한 운전에도 몸을 곧잘 잡아준다. 운전석은 전동으로 조절할 수 있다. 여기에 운전 자세를 3개까지 기억하는 메모리 기능도 지원하고 있다. 조수석도 전동으로 자세를 바꿀 수 있다. 운전석과 조수석 모두 3단계 열선 기능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요추 받침은 손으로 다이얼을 돌려 맞춰야 한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기능에 전동장치를 쓰지 않는 볼보의 특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뒷좌석 머리 공간과 다리 공간은 모두 넉넉한 편이다. 열선 기능 또한 갖추고 있다. 뒷좌석은 6 대 4로 나눠 접을 수 있다. 팔걸이 위쪽에는 스키 같은 긴 물건을 실을 수 있게 구멍도 뚫어 놓았다. 볼보의 기함답게 뒷유리창에 햇빛 가리개도 설치되어 있다. 트렁크 용량은 480리터다. 내부에 튀어나온 부분이 거의 없고 반듯해 짐을 싣고 부리기 편하다. 트렁크 바닥재에 난 홈에 손을 넣어 들어 올리면 노란색 고무줄이 달린 커다란 패널이 올라온다. 그로서리 홀더다. 일반 화물 고정용 그물보다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S80 T5는 새로운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을 사용한다. 볼보는 기함에는 배기량이 큰 엔진을 달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도 탈피했다. 볼보의 합리주의다. S80 T5에 탑재한 4기통 싱글 터보 가솔린 엔진은 5,500rpm에서 245마력을 낸다. 최대토크는 1500~4,800rpm에서 35.7kg·m다. 리터당 100마력이 넘는 고출력 엔진이다.
복합 공인연비는 리터당 12km로 가솔린 엔진 치곤 준수한 수준이다. 도심, 고속도로 기준으론 각각 리터당 10.2km와 15km다. 이는 실제 계기반 트립 컴퓨터에 나타난 수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볼보는 신형 파워트레인을 선보이면서 “출력을 향상시켰지만 연료 효율성도 놓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연비와 출력의 상반된 두 요소를 한꺼번에 만족시키려는 욕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다운사이징한 2리터 엔진으로 덩치 큰 기함을 움직이긴 버거울 것이라는 생각은 기우다. 가솔린 엔진의 특징은 역시 고속회전에서 나온다. 2리터 엔진이지만 출력이 전혀 부족하지 않다. 엔진에 유입되는 공기의 양을 높여 5~6기통 엔진 이상 성능을 발휘한다. 8단 변속기는 부드럽고 편안한 주행을 돕는다. 연료 소비를 줄이고 탄력주행 구간을 늘이기 위해 자동변속기 토크컨버터 내부에 특별한 부품을 추가했다. 정속주행 중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도 탄력 주행 거리가 길다. 내리막길을 달릴 때도 변속기가 엔진 힘을 전달하는 샤프트와 분리되며 탄력주행을 한다. 이렇게 달리면 연료 절감 효과가 커진다. 센터페시아에는 탄력 주행을 유도하는 ‘에코+’모드 버튼이 있어 이를 이용하면 더 적극적인 경제운행도 할 수 있다.
S80 T5는 첫 가속이 폭발적이진 않지만 꾸준하게 힘을 낸다. 특히 시속 100km 이상에서 가속이 시원하다. 속도계는 지칠 줄 모르며 올라간다. 제원상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걸리는 시간은 6.5초다. 엔진 회전 질감은 부드럽고 정숙하다. 볼보 S80 T5는 안정성도 뛰어났다. 도로를 눌러가며 달리는 느낌을 받았다. S80 T5에는 스포츠 섀시가 장착되어 있다. 스포츠 섀시가 적용된 S80 T5는 앞부분이 무거운 디젤 모델에 비해 더 나은 균형감을 보여주었다.
인상적인 건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의 거동이었다. 너무 단단하지도 않고 너무 출렁이지도 않는다. 차체가 둔덕을 지그시 누르며 자연스럽게 빠져나간다. 듬직한 느낌이다. 이런 서스펜션 세팅은 고속에서 안정감을 만들어주는 요인이 된다. 직진 중에는 어떤 속도 영역에서도 탄탄한 안정감을 보여준다. 곡선 구간에서도 마찬가지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도 좌우 쏠림 없이 자연스레 돌아나간다.
S80 T5는 가솔린 엔진을 얹은 만큼 디젤 모델에 비해 정숙성이 우수하다. 정숙성이 독일 프리미엄 세단과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다. 자잘한 진동도 느끼기 어렵다. 고속으로 달려도 실내로 들어오는 풍절음이 크게 들리지 않는다. 볼보를 얘기하면서 안전성을 빼놓을 수 없다. 보통 5~6년 주기로 풀모델 체인지를 하는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행보를 감안하면 S80의 교환 주기는 길어 보인다. 그러나 처음 만들 때부터 워낙 잘 만들었다는 긍정적인 해석도 가능하다. 예를 들면 이렇다. 1998년에 출시된 1세대 S80은 경추 보호 시스템 좌석(WHIPS, Whiplash Protection System)과 측면충격 보호시스템(SIPS, Side Impact Protection System)을 장착했다. 그외에도 측면 충돌이나 전복 사고 시 운전자와 탑승자의 머리를 보호해주는 커튼형 사이드 에어백도 달았다. S80을 포함해 10여 년 전 나온 볼보 모델들이 최근 자동차 업계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인 스몰오버랩 충돌 테스트를 거뜬히 통과했다는 점만 봐도 볼보의 안전성이 대단한 수준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새로운 S80 T5는 세계 최초 저속추돌방지 시스템인 시티 세이프티(City Safety)를 달고 있다. 차간 거리를 인식해 추돌위험이 있으면 미리 경고해주는 시스템이다. 시속 50km 이하로 주행 중 앞차의 급정거로 추돌 사고 위험이 높아졌음에도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작동하지 않으면 스스로 제동을 건다. 사각지대 정보 시스템(BLIS)은 사이드미러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사각지대 사고를 예방한다. 볼보 S80에는 차간 거리를 조절하며 정속 주행을 하게 해주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도 탑재돼 있다.
S80 T5의 가격은 부가세를 포함해 5,830만 원이다. 새로운 파워트레인을 이식한 S80 T5는 내실이 탄탄한 차다. 달리고, 돌고, 서는 기본기에 충실하다. 안락한 승차감과 쾌적한 주행질감, 넉넉한 실내공간, 수준급의 연비, 그리고 알찬 편의 사양도 모두 담아냈다. 출시 후 10년이란 세월이 지나면서 그 성숙함이 정점에 달했다. 타보면 타볼수록 그 착실한 내면이 드러나는 매력적인 세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