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엔씨 갈등 어디로 가나

‘TJ-JJ 목장의 결투’

국내 게임업계를 양분하고 있는 엔씨소프트와 넥슨의 경영권 분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양사의 갈등 양상은 그동안 동지 관계를 유지해 왔던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김정주 넥슨 창업주의 경쟁구도로 변질되는 모양새다. 절친한 선후배 관계인‘T J(김택진)-JJ(김정주)’연 합의 붕괴는 곧 게임시장의 재편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번 경영권 분쟁은 의미가 매우 크다.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지난 2년간 진행돼온 넥슨과 엔씨소프트(이하 엔씨)의 협업 관계가 사실상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 엔씨에 대한 넥슨의 경영권 행사 발표가 결정적이었다. 넥슨이 지난 2012년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주식 14.7%를 인수하면서 시작된 양사의 동거는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시작은 훈훈했다. 양사는 모두 급변하는 글로벌 게임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었다. 무엇보다 국내 게임산업 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해온 김택진 엔씨 대표와 김정주 넥슨 창업주의 연합에 대해 업계는 큰 기대감을 가졌었다. 서울대 공대 1년 선후배 사이인 김 회장과 김 대표는 업계에 잘 알려진 동지이자 친구이다. 30년간 돈독한 우정을 과시하며 넥슨과 엔씨, 나아가 게임시장의 성장을 이끌어왔다.

실제로 양사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마비노기2’의 공동개발에 착수했다. 양사에서 선발된 마비노기2 개발팀 100여 명이 서울 삼성동 엔씨소프트 건물에 입주해 이 개발을 진행했다. 마비노기2는 넥슨의 엔씨 지분 인수 이후 열린 ‘지스타 2012’에서 최초 공개되며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지난해 1월 마비노기2 개발이 사업성에 대한 재고로 전면 중단됐지만, 당시만 해도 양사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급작스러운 넥슨의 경영 참여 발표로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렇다면 과연 넥슨의 갑작스러운 경영 참여 선언은 왜 일어난 것일까? 표면적 이유는 단순명료했다. 협업을 진행한 결과, 기대만큼의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성과가 나지 않아 엔씨소프트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넥슨의 발표는 설득력이 없어 보였다. 지지부진한 사업의 책임을 엔씨소프트로 돌리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특히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엔씨소프트의 2014년 매출은 8,387억 원, 영업이익 2,782억 원, 당기순이익 2,275억 원이었다. 전년대비 매출은 11%, 영업이익은 36%, 당기순이익은 43% 증가하며 넥슨의 지적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넥슨의 입장은 확고부동하다. 대주주로서 지위를 확실히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양사의 이해관계를 넘어 김정주 넥슨 창업주 겸 회장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간 갈등이 이번 분쟁의 시발점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는 다양한 근거가 존재한다. 첫 번째 근거는 바로 김택진 대표가 손에 쥔 8,000억 원 때문이란 것이다. 알려진 대로 지난 2012년 김택진 대표는 자신이 보유한 엔씨 지분 14.6%를 넥슨에 매각했다. 이 매각으로 김택진 대표의 지분은 9.9%로 떨어져 넥슨에 이은 2대 주주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김 대표는 약 8,000억 원의 현금을 손에 쥐었다.

당시 넥슨이 김 대표의 엔씨 주식을 매입한 이유는 바로 글로벌 게임 기업 EA를 인수할 포석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상반기 EA의 매출은 약 23억 달러 수준이었다. 넥슨은 8억 2,000만 달러, 엔씨소프트는 3억 8,000만 달러였다. 외형이 작은 넥슨과 엔씨가 덩치가 큰 EA를 인수하기 위해선 각개전투가 아닌 협력이 필요했다.

문제는 실탄이었다. 넥슨은 이미 일본 증권시장 기업공개(IPO)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비교적 넉넉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엔씨의 현금 보유량을 EA 인수가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넥슨이 전격적으로 엔씨 지분 매입을 결정한 것이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EA 인수는 불발됐다. 매각의사를 내비쳤던 EA가 내부 반발로 매각 입장을 철회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EA 외에도 넥슨과 엔씨가 매입할 수 있는 글로벌 기업은 많았다. 주요 글로벌 기업이 인수 대상 명단에 오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업계에선 당장 EA 인수 불발보다 과연 김택진 대표가 8,000억 원의 실탄을 어떤 용도로 사용할지 관심이 증폭되고 있었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발생했다. 지난해 3월 김택진 대표가 FX마진 시장에서 상당한 수익을 올렸다는 소식이 불거졌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당시 김 대표는 지분 매각으로 손에 쥔 8,000억 원 중 절반이 넘는 5,000억 원을 FX마진 시장에 투자해 1,50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엔씨 측은 단순한 개인적 투자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지만, 그때부터 업계에선 김 대표가 넥슨과의 협업이 아닌 전혀 다른 사업군으로 진출하려 한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게임사업에 지친 김택진 대표가 게임업계를 떠나려는 게 아니냐는 루머까지 떠돌았다. 지난 2010년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의 민간위원으로 활동한 김 대표가 박근혜 정부의 핵심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등 정계 진출이슈가 나온 것도 이 시기와 묘하게 겹쳐 소문을 증폭시켰다. 의중을 알 수 없는 김 대표의 행보에 김정주 회장은 심기가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근거는 김정주 회장과 넥슨의 엔씨 지분 추가 매입에 따른 적대적 M&A 가능성이다. 엔씨 지분 인수로 1대 주주에 오른 넥슨은 엔씨 경영에는 간섭하지 않겠다고 꾸준히 공언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말 넥슨은 엔씨의 지분 0.4%를 추가로 매입하며 지분을 15%로 끌어올렸다. 15%는 넥슨이 엔씨의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다. 넥슨 측은 경영과는 무관한 단순투자라고 밝혔지만, 당시 엔씨와 김택진 대표는 넥슨에 불편한 감정을 내비쳤다고 알려지고 있다.

세 번째 근거는 바로 김택진 엔씨 대표의 부인인 윤송이 부사장의 사장 승진이다. 업계에선 이번 넥슨의 경영 참여 발표를 촉발한 원인 중 하나로 윤 부사장의 사장 승진을 지적하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1월 23일 2015년 정기 임원 인사에서 윤송이 글로벌최고전략책임자(Global CSO) 겸 엔씨 북미·유럽 법인(NC West) CEO를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 발령한다고 발표했다. 엔씨소프트 측은 “이번 인사의 핵심은 북미·유럽 지역 공략 강화와 혁신 서비스 개발 집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윤 사장은 지난 2012년부터 북미·유럽 지역 대표직을 수행하며 엔씨의 대표 히트작 길드워와 후속작 길드워2의 성공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윤 사장 선임의 이면에는 가족경영을 통해 지배력을 강화하겠다는 김택진 대표의 의지가 반영되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벤처에서 출발한 여타 기업들 가운데 유독 가족경영 색채가 강한 업체로 알려져 있다. 윤 사장 외에도 김택진 대표의 동생인 김택헌 전무는 엔씨소프트 최고사업책임자(Chief Business Officer, CBO) 자리를 맡고 있다. 업계 관계자 사이에선 엔씨가 넥슨과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고 윤 사장을 승진시켜 김정주 대표의 불만을 샀고, 그래서 결국 김 대표가 경영 참여라는 칼을 꺼내 든 게 아니냐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같은 다양한 설에 대해 양사는 모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여전히 넥슨 측은 ‘경영 참여 선언은 양사의 발전된 협력을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고, 엔씨 측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넥슨과 엔씨의 협력이 ‘불편한 동거’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건 업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국내 게임업계를 주름잡은 양대 산맥인 넥슨과 엔씨, 양사가 걸어온 길 자체가 문자 그대로 ‘극과 극’이었기 때문이다. 김택진 대표와 김정주 대표의 경영스타일 차이도 이같은 업계의 진단에 한몫을 하고 있다.

김택진 대표는 전형적인 개발자형 CEO다. 엔씨의 대표 게임인 리니지 시리즈, 아이온, 블레이드앤소울, 길드워는 막대한 개발금과 인력이 필요한 전형적인 대형 온라인 게임이다. 김 대표는 게임의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체크하며 완벽한 작품을 내놓는 데 역량을 발휘해왔다. 실제로 김 대표는 게임 개발자 회의에 자주 참석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김 대표는 게임업계 진출 이전부터 게임을 매우 즐겨온 ‘게임광’이었다. 김 대표와 이찬진 한글과 컴퓨터 창업자가 공동 개발한 한글 워드프로세서 ‘아래아한글’에 포함됐던 타자연습 게임 ‘베네치아’도 김 대표의 의견이 적극 반영된 작품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반면 김정주 회장은 사업가형 CEO로 꼽힌다. 성공작을 보유한 회사를 꾸준히 인수 합병하며 넥슨의 덩치를 키워왔다. 실제로 김 회장은 지난 2011년 일본 증시 상장 이후 약 3년여 동안 10개가 넘는 국내외 개발사를 인수한 바 있다. 과거 네오플, 게임하이를 인수하며 게임업계 공룡으로 성장한 넥슨은 지난 2011년 10월 JCE엔터테인먼트(현 조이시티)를 시작으로 엔씨소프트, 일본 모바일 게임사 ‘인블루’와 ‘글룹스’를 인수했고, 북미시장에서도 꾸준히 지분투자를 하며 규모를 키워왔다. 최근 김 회장은 미국을 포함한 해외시장을 돌며 게임 이외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발굴에도 집중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유모차 브랜드 ‘스토케’와 레고 장터 ‘브릭링크’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처럼 전혀 다른 CEO의 경영스타일은 고스란히 양사의 조직문화로 스며들었다. 익명을 요구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넥슨에는 사업팀, 엔씨에는 개발팀을 우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마비노기2, 메이플스토리2 등 협업 콘텐츠 개발 과정에서도 양사 개발인력의 융합이 원활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경영권 참여 논란으로 무너진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신뢰관계는 회복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업계에선 적어도 양사가 진흙탕 싸움까지 가는 건 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넥슨과 엔씨가 국내 게임업계에서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양사도 대화를 통해 이번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은 녹록지 않다. 넥슨은 오는 3월 말로 예정된 주주총회에서 후임 혹은 추가 이사를 선임할 때, 넥슨이 추천하는 인사를 선임할 것을 제안하는 주주제안서를 발송했다. 윤송이 사장의 연봉 공개도 요청하며 전방위적 압박에 들어갔다. 엔씨소프트 역시 최근 전환사채 인수 방식으로 KG이니시스에 약 450억 원을 투자하면서 대주주인 넥슨과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았다. 투자와 관련된 사항도 언론발표 당일 넥슨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파국과 해피엔딩의 갈림길에 선 양사의 앞날은 3월 말로 예정된 엔씨소프트 주주총회에서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선 김택진 회장이 넥슨 쪽 지분을 다시 매입해 넥슨과의 관계를 청산하거나, 극적으로 새로운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해 갈등을 봉합할 가능성을 가장 높게 보고 있다.

결국 해결의 실마리는 30년 지기 선후배인 김정주 넥슨 회장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쥐고 있다. 이미 박지원 넥슨코리아 대표와 정진수 엔씨소프트 부회장이 각각 김 회장과 김 대표의 대리인 격으로 만나 각사 수장의 의견을 전하고 협상을 진행 중이다. 물론 법정 다툼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 관계자들 사
이에서는 벌써 양사가 소송에 대비한 전략을 짜고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중견 게임업체 CEO는 “양 사 대표의 관계를 고려했을 때 법적 다툼까지 가는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사태로 게임업계 전반이 위축되는 상황이 와서는 결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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