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의 고공행진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SK하이닉스는 역대 최고 경영실적을 기록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 마이크론을 제치고 반도체 매출 순위 세계 4위에 올라섰다. 한때‘골칫거리’로 불렸던 SK하이닉스가 불과 10년여 만에 세계 4위의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한 비결은 무엇일까? 올해 ‘가장 존경받는 한국 기업’ 전기·전자 및 정밀기기 부문 4위에 오른 SK하이닉스의 저력을 확인해봤다. _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 SK하이닉스는 역사상 최고의 위상을 경험하고 있다.”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의 2015년 신년사에는 SK하이닉스가 거둔 성과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최고의 위상이라는 박 사장의 자신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SK하이닉스를 설명하는 수많은 수치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7조1,260억 원과 5조 1,090억 원이었다.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운 실적이었다. 순이익 역시 4조 1,950억 원을 기록해 2년 연속 신기록 달성이라는 대단한 성과를 보였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과는 더욱 눈부시다. 시장조사업체 IHS의 2014년 글로벌 반도체 업체 매출순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61억 1,3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려161억 1,100만 달러를 기록한 미국 마이크론을 제치고 4위에 올랐다. 특히 지난해 글로벌 매출액 상위 10위 내 반도체 기업 가운데 20% 이상 매출 증가율을 기록한 곳은 SK하이닉스가 유일했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이같은 성장세를 이어갈 경우, 오는 2016년에 퀄컴을 제치고 글로벌 순위 3위에 오를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점치고있다.
SK하이닉스가 올해 ‘가장 존경받는 한국 기업’ 전기·전자 및 정밀기기 부문 4위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도 글로벌 시장에서의 선전 덕분이다. SK하이닉스는 전체 9개 조사 항목 중 ‘ 글로벌 비즈니스 수행의 효율성’ 항목에서 가장 높은 6.99점을 기록했다.
이처럼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SK하이닉스는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한국 경제계의 ‘골칫거리’였다. 1983년 현대전자산업으로 출발한 SK하이닉스는 지난 2000년 이후 반도체 가격 하락에 따른 경영난으로 파산 위기에 몰렸다. 당시 업계에선 하이닉스의 회생 가능성을 낮게 봤다. 과감한 투자가 수반돼야 하는 반도체시장에서 자금력이 없는 하이닉스가 살아날 수 있겠냐는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하이닉스의 임직원은 이를 악물었다. 인력 감축과 임금 동결을 기꺼이 감수하며 회사 살리기에 적극 동참했다. 치열했던 회생 노력은 하이닉스의 회생 스토리를 담은 책 제목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2011년 출간된 이 책의 제목은 ‘ 21세기 난중일기’ 였다.
무엇보다 당시 하이닉스가 지금의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던 가장 큰 계기는 바로 SK그룹의 하이닉스 인수였다. 2010년 초부터 반도체 시장에 관심을 가진 최태원 회장은 반도체 각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해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2011년 그룹 이사회에 하이닉스 인수를 제안한다. 당시 대다수 이사진은 최 회장의 제안을 반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영 실적이 날로 악화하는 상황에서 조 단위의 인수합병은 그룹 전체에 큰 무리가 될 수 있다고 최 회장을 설득했다.
하지만 최 회장은 단호했다. “반드시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어야 한다.” 결국 최 회장과 SK그룹은 2011년 7월 9일 SK텔레콤을 통해 하이닉스 인수를 전격 선언했다. 하이닉스 인수에 들어간 자금은 총 3조 4,267억 원 수준.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다. 인수 후 SK그룹은 전년 대비10% 증가한 약 4조 원을 설비 증설에 투자했다. 당시만 해도 경쟁기업들은 글로벌 경기침체를 이유로 설비 투자를감축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SK하이닉스는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하며 미래를 내다봤다. ‘ 위기가 곧 기회’ 라는 최 회장의 의지, 그리고 SK하이닉스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이끌어낸 투자였다.
이후 SK하이닉스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강력한‘추격자’로 선두 기업들을 견제해나갔다. 삼성, 마이크론등 굴지의 반도체 업체와 격차를 줄이는 ‘패스트 팔로어( FastFol lower)’ 전략을 고수했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를 이어갔다. 이는 ‘패스트 팔로어’를 넘어 ‘퍼스트 무버(FirstMover)’가 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었다.
핵심은 다수의 M&A와 해외기술센터 설립을 통한 연구개발(R&D) 역량 강화였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012년 6월 이탈리아 ‘아이디어 플래시Idea Flash ’를 인수해 유럽 기술센터로 전환했다. 이를 시작으로 같은 해 9월에는 미국컨트롤러 업체 LAMD(현 SK하이닉스 메모리 솔루션)를약 2,800억 원에 인수해 낸드 솔루션의 자체 역량 강화에나섰다. SK하이닉스는 이를 기반으로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선도하는 다양한 제품을 출시했다. 이 중 모바일 D램과고용량 DDR4 모듈은 SK하이닉스의 대표적인 시장 선도제품이었다.
SK하이닉스의 이 같은 전략은 정확히 적중했다. 2007년 전체 D램 매출에서 불과 3%를 차지했던 모바일 D램은2012년 이후로는 30%대를 유지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013년 말 차세대 모바일 D램 규격인 LPDDR4제품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고, 지난해 9월에는 차세대 고성능 모바일 D램의 한 종류인 와이드 IO2 모바일 D램 개발에도 성공하며 이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입증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월 글로벌 시장 최초로 20나노급 8기가비트(GB) DDR4를 기반으로 한 세계 최대용량 128GB의 DDR4모듈 개발에도 성공했다. 이 제품은 실리콘관통전극(TSV) 기술을 활용해 기존 최고 용량인 64GB의 2배에 이르는 최대용량을 구현했다. 속도 측면에서도 DDR3의 데이터 전송속도인 1333Mbps(초당 메가비트)보다 빠른 2133Mbps를 달성했다. 64개 정보입출구(I/O)를 가진 모듈을 통해 초당 17GB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이 제품은 동작전압도 기존 DDR3의 1.35V에서 1.2V로 낮췄다.
이 밖에도 SK하이닉스는 세계 최초로 TSV(Through Silicon Via) 패키지 기반의 차세대 초고속 메모리HBM(High Bandwidth Memory)를 개발하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초당 128GB의 데이터 처리가 가능한 HBM은 빠른 속도가 핵심인 하이엔드 그래픽 시장을 시작으로 슈퍼컴퓨터와 네트워크 같은 응용 분야에서 널리 활용될 전망이다.
최근 SK하이닉스는 올해 시장 대응을 위한 전략으로 20나노 초반 D램 양산을 위한 차세대 공정 기술 개발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차세대 공정 기술 기반의 20나노 초반 D램 양산을 통한 원가경쟁력 강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SK하이닉스는 지난 2012년부터 총 2조1,000억 원을 투자해 이천 M14 공장을 건설 중이다. 노후한 D램 공장을 대체할 핵심 제조 인프라인 M14 공장이 완공되면 SK하이닉스는 업계 최고 수준의 양산 체제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SK하이닉스는 성장세가 예상되는 낸드플래시의 경우오는 2분기 TLC 제품의 본격 양산을 시작으로 SSD 등 솔루션 제품 공급을 확대해 수익성 향상을 노릴 생각이다. 하반기에는 3D 제품의 양산성을 확보해 다가오는 시장에 대비한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더불어 자체 컨트롤러를 탑재한 기업용 솔리스테이트드라이브(SSD)와 인터페이스별 제품 라인 업을 강화해 낸드플래시 경쟁력 강화와 수익성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