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타스틱 포’는 우주선에서 우주선(宇宙線)에 노출돼 초인적 힘을 가지게 된 슈퍼히어로들의 활약상을 다룬다.
진실을 말하자면 은하 우주선(GCR)에 노출돼도 초능력은 생기지 않는다. 암 발병 확률이 높아질 뿐이다. 이런 GCR의 유해성은 지구 자기장의 보호 하에서는 문제되지 않지만 화성 탐사선에 탑승한 우주비행사라면 상황이 다르다. 이들은 미 항공우주국(NASA)이 정한 한계치인 총 150일을 훌쩍 뛰어넘는 기간 동안 GCR에 피폭될 수밖에 없다.
지구에서 화성까지 가는데만 최대 260일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NASA 우주 방사선 분석그룹의 케리 리 박사에 따르면 이 문제를 해결할 쉬운 방법은 없다. 우주탐사선에 다수의 방사능 차폐벽을 두르면 되지 않느냐고? 그때는 탐사선의 중량이 발사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무거워진다. 우주선을 자기장으로 감싸면 어떨까. 자기장 생성에 필요한 초전도 자석은 우주보다 온도가 낮아야 하며, 그러려면 또 다른 방사능 배출원인 원자로를 탐사선 내에 설치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는 엄청난 전력이 필요하다.
“어쩌면 승무원들을 완벽히 방호하는 게 답이 아닐 수도 있어요. 다소 평범한 방어막을 설치하는 대신 기존보다 훨씬 빠른 속도를 낼 추진기관을 탑재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GCR피폭 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겁니다.” 향후 NASA가 어떤 대안을 내놓을 지는 알 수 없지만 SF 영화 속 우주탐사선만큼 멋질 필요는 없다. 그저 승무원들을 확실히 보호해주면 그만이다.
킬러 로봇의 등장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와 ‘투모로우랜드’에는 각각 킬러로봇의 원조인 터미네이터 로봇과 평행세계를 발견한 소녀를 뒤쫓는 악당 로봇이 등장한다.
영화 속 악당 로봇들은 대개 인간으로 위장해 인간 사회에 침투해서 인간들을 말살한다. 그러나 현실의 로봇 연구자들은 안드로이드(인간형 로봇)에 의한 인간의 정신적 고통을 더욱 염려한다. 이와 관련 영국 브리스틀대학의 로봇공학자 앨런 윈필드 박사는 로봇의 외관을 인간과 얼마나 닮게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규칙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외관은 인간과 똑같은데 지능은 세탁기 수준인 로봇은 비윤리적인 사기 행위입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의인화를 병적으로 좋아한다. 때문에 인간이 로봇에 가진 애착만큼 로봇이 제대로 화답하지 못하면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SF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로봇에 대한 일방적 애정은 그 뒤처리에 많은 사회적 비용이 요구됩니다.”
이에 윈필드 박사는 동료들과 함께 2010년 로봇 제작의 윤리지침 초안을 마련했다. 이 초안에는 로봇을 인간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서는 안되며, 항상 기계적 부품이 노출돼야 한다고 적혀 있다. 로봇을 인간처럼 느끼지 못하도록 해 불필요한 정신적 고통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다만 모든 학자가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미국 인디애나대학의 로봇공학자 칼 맥도먼 박사는 로봇과의 우정이 정신적 치유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노인들의 치매와 우울증 방지를 위해 애완동물을 꼭 닮은 로봇이 활용되고 있다.
맥도먼 박사 역시 인간과 유사한 로봇이 인간의 사회적 본능과 간섭을 일으킬 수 있음은 인정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인간을 닮은 안드로이드를 통해 사회적 고립감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면 미래의 의사들은 망설임 없이 로봇 친구를 처방해 줄지도 모른다.
Q&A: 스피로스 미칼라키스
스피로스 미칼라키스 박사는 캘리포니아공대 양자 정보·물질연구소의 대외협력 책임자다. 학자로서의 양자 역학 연구에 더해 양자 역학에 대한 대중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게 그의 임무다. 이를 위해 그는 SF 만화와 비디오게임을 제작하고 영화 자문도 맡고 있다. 올 여름 개봉하는 ‘앤트맨’과 현재 기획단계에 있는 리메이크작 영화 ‘바디 캡슐(Fantastic Voyage)’에도 자문을 했다. 이런 그에게 과학이 SF 영화에 어떤 기여를 했으며, 그 기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물어봤다.
Q. 영화 앤트맨의 주인공은 몸이 작아지면서 초인적 힘을 얻는다. 어떤 물리학적 원리가 이를 가능케 할 수 있나?
과학적 관점에서 앤트맨의 몸이 작아지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몸의 질량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는 줄어드는 질량이 에너지로 변환돼 큰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주인공의 몸이 줄어들 때마다 세상을 부숴버릴 수는 없으니 이 방법은 탈락이다.
두 번째는 질량은 유지하면서 몸의 밀도를 극단적으로 높이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 주인공이 입은 슈트가 몸의 밀도 상승에 따른 엄청난 체중 증가 효과를 상쇄시켜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앤트맨은 개미의 등에 올라타기는커녕 지하 수십㎞까지 땅을 파고들어갈지도 모른다.
Q. 질량은 유지하면서 크기를 줄일 방법이 있나?
있지만 누구도 시도해본 적은 없다. 이론상 전자의 질량을 늘리는 입자를 가지고 원자에 방사능 처리를 하면 크기가 원래의 200분의 1로 줄어든다. 물성을 감안하면 중성미자가 실험대상으로 제격이다.
얼마 전 영화 ‘바디 캡슐’의 각본을 맡은 데이비드 고이어와 사람의 크기를 줄이는 방법에 관해 토론을 벌였었다. 제작자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라 과학적으로 타당한 논리를 원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 속 과학의 사실성에 큰 관심이 없다. 그저 재미있는 장면이 만들어져 관객들이 ‘저게 가능해?’라는 의문을 품고, 과학적 진실을 찾아보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Q. 재미보다는 과학적 사실이 중요하지 않을까?
재미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스타트렉’이 처음 방영됐을 때 사람들은 텔레포테이션, 워프 드라이브 등 영화 속 모든 장면이 허구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과학자들이 현재 그 주제를 연구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물리적 법칙을 깰 수 있을지, 시간의 근원은 어디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재미있는 SF는 우리에게 무엇을 연구할지 알려준다.
Q. 그렇다면 과학 자문이 왜 필요한가?
할리우드는 이른바 ‘맥거핀’을 즐겨 사용한다. 그런 영화에서 과학은 미스터리한 기기나 아주 특별한 화학물질처럼 모호한 것으로 묘사된다. 내가 지난 5년간 제대로 활동한 것이 맞는다면 앞으로는 과학 자체가 스토리를 주도하는 영화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GCR Galactic Cosmic Ray.
맥거핀 (MacGuffin) 작품의 줄거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마치 중요한 것처럼 꾸며서 관객들의 주의를 집중시킴으로써 혼란과 의문을 유발하는 극적장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