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상반기, 두산그룹의 변신은 거침이 없었다. 과감한 기업 인수 합병(M&A), ‘선택과 집중’을 통한 경쟁력 강화 전략을 잇달아 선보였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도 ‘이제는 움직일 때가 됐다’며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올 초부터 이어진 두산그룹의 광폭 행보가 어떠한 효과를 낼지 관심을 쏟고 있다. 포춘코리아가 무한변신을 예고 중인 두산그룹 신성장동력의 성공 가능성을 살펴봤다.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세계 경제는 더디지만, 회복은 진행되고 있다. 이 말은 이제 행동하고 움직일 때가 됐다는 것이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2015년 신년사를 통해 올해 두산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밝혔다. ‘행동’, 이 한 단어에 모든 것이 함축돼있다. 박 회장이 ‘행동’을 주문한 이유는 어찌 보면 단순하고 간단하다. 오랜 기간 이어진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침체 속에서도 두산그룹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저력은 바로 선제적이면서도 적극적인 ‘행동’ 이었기 때문이다.
두산그룹은 원래 음식료 및 주류 전문 그룹이었다. ‘두산=OB맥주’로 불린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두산은 과감히 체질개선에 나섰다. 2000년대 초반 한국중공업, 고려산업개발, 대우종합기계를 인수해 각각 두산중공업, 두산건설, 두산인프라코어로 사명을 바꾸고 그룹 사업 포트폴리오의 환골탈태를 꾀하기 시작했다. 당시 인수한 3개의 기업은 현재 두산그룹의 주력사로 성장했다. 이후에는 과감한 M&A 전략을 통해 양적·질적인 성장을 이끌어 냈다. 영국의 미쓰이밥콕, 미국의 밥캣, 루마니아의 IMGB의 인수합병이 대표적 사례다. 지속적이면서도 차별화된 전략은 두산그룹을 일약 글로벌 중공업 그룹의 반열에 올려놓을 만큼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두산그룹도 최근의 세계적인 경기 악화를 빗겨갈 순 없었다. 두산은 그 와중에서도 숨을 고르며 반등을 위한 준비를 조용히 진행했다. 가장 눈에 띄는 행보는 바로 핵심 계열사의 CEO 교체였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인수·합병을 진두지휘했던 김용성 사장이 실적 악화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신임 사장에 정통 엔지니어 출신인 손동연 기술본부장이 선임됐다. 두산중공업 역시 정지택 부회장을 경영 전면에 내세웠다. 공직자 출신인 정 부회장은 폭넓은 국내외 인적 네트워크로 해외 마케팅 강화에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중공업의 CEO 교체는 단순한 인적 쇄신 이상의 의미가 가진다. 양 사는 두산그룹 매출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핵심 계열사다. 핵심 계열사의 반등 없이는 그룹 전체의 실적 향상을 꾀할 수 없기 때문에 본격적인 ‘행동’에 나설 것을 주문한 박용만 회장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인사로 평가할 수 있다.
반등을 위한 내부 준비는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본격적인 비상을 위해 두산그룹은 ‘신성장동력’을 전면에 내세웠다. 두산그룹이 앞세운 신성장동력은 바로 ‘연료전지’와 ‘가스엔진’ 시장이다. 연료전지와 가스엔진 분야는 그 동안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으로 꼽혀왔다. 그렇다면 두산그룹은 과연 야심 차게 선택한 신성장동력 사업에서 기대만큼의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최근 두산그룹에 반가운 소식 하나가 날아들었다. 한국남동발전이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건설하는 복합화력발전소에 들어갈 280억 원 규모의 연료전지 경쟁입찰에서 기자재 공급업체로 선정된 것이었다. 두산이 공급하는 연료전지는 5.6㎿ 규모로 세계 최초로 복층형 구조를 적용하고 있다. 복층형 연료전지는 설치 면적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어 부지가 좁은 도시에 설치하기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산은 이번 연료전지 운영과 관련해 400억 원 규모의 장기 서비스 계약도 체결할 예정이다.
이번 계약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수치 상의 실적 때문만은 아니다. 두산그룹이 신성장동력으로 내세운 ‘연료전지’ 사업에서 이뤄낸 첫 공급계약이기 때문이다. 연료전지는 인프라지원서비스(ISB)를 추구하는 두산그룹이 신성장동력으로 선택한 사업이다. 두산그룹은 지주회사 두산(주)을 앞세워 지난 2012년부터 성장 가능성이 큰 200개 이상의 신기술 사업 리스트를 작성해 신성장동력 선정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 중 연료전지 사업에서 가능성을 발견한 두산은 인수합병 전략을 통해 이 시장의 문을 두드리기로 결정했다.
전략이 마련되자 일사천리로 작업이 시작됐다. 지난해 국내 주택용 연료전지 시장 업체인 퓨얼셀파워와 건물용 연료전지 원천기술 보유업체인 미국 클리어엣지파워를 잇달아 합병·인수했다. 이후 두 회사를 합병해 ‘두산 퓨얼셀BG’를 출범시키며 연료전지 시장에 정식 출사표를 던졌다.
두산이 합병한 퓨얼셀파워는 국내 주택용 연료전지 시장에서 강점을 가진 리딩 기업이다. 가정용 연료전지로 사용되는 고분자 전해질 연료전지(Polymer Electrolyte Fuel Cell)의 설계와 생산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로 업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 미국 클리어엣지파워는 건물용 연료전지 원천기술을 보유한 글로벌 연료전지 업체다. 삼성에버랜드와 롯데월드에 400kW급 발전용 연료전지를 공급한 UTC파워를 인수해 국내 시장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두산이 연료전지 시장 진출을 위해 진행했던 당시 인수·합병은 지난 2012년 영국 수처리 전문업체 ‘ 엔퓨어’ 인수 후 2년 만에 진행된 M&A였다. 당시 두산그룹은 몸집 줄이기를 위한 계열사 간 합병에 집중하며 외부 기업 M&A는 자제해오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의욕적으로 대형 인수· 합병을 잇달아 성사시켰기 때문에, 두산그룹이 연료전지 시장에 거는 기대치가 그만큼 크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연료전지는 수소 화학 반응을 통해 전기를 얻는 전지로, 에너지 문제와 공해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신재생 에너지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주요 선진국들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신재생에너지 공급을 의무화하고 있어 그 가치가 더욱 배가 되고 있다.
국내 현행법상 발전사는 총 발전량 중 일정 비율 이상을 신재생 에너지로 이용해야 하는 신재생 에너지 의무 할당제 규제를 받고 있다. 이 같은 규제는 현재 미국뿐 아니라 주요 선진국에서도 이미 시행 중이거나 도입이 준비되고 있다. 세계 연료전지 시장은 지난 2013년 기준 1조8,000억 원 규모로 추정되고 있다. 업계에선 연료전지 시장이 연평균 30% 이상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오는 2018년에는 5조 원, 2023년에는 40조 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론 연료전지 시장의 후발주자인 두산에겐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도 산적해 있다. 현재 포스코에너지가 80% 이상의 국내 연료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어 영업망과 제품 양산능력의 신속한 확대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경쟁력을 찾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많이 나오고 있다.
연료전지 업계 한 관계자는 “주요 대기업들이 연료전지사업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선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글로벌 업체와의 기술 격차를 얼마나 빨리 좁힐 수 있느냐도 시장 안착과 경쟁력 강화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료전지 사업을 담당하는 두산 퓨얼셀BG의 정형락 사장은 말한다. “아직 연료전지 사업은 시장 형성단계입니다. 이미 시장에 진입한 기업들도 아직은 양산 경험이 많지않아요. 먼저 양산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원가 절감과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 당면과제라 할 수 있어요. 타깃 시장도 더욱 넓게 봐야 합니다. 유럽과 일본 시장에 대한 공략이 필요하고, 발전용·가정용이 일반적인 연료전지의 사용 범위도 다양화시켜야하죠. 두산은 글로벌 마케팅 역량과 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해 꾸준히 투자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대다수 업계 관계자들은 두산의 연료전지 시장 진출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신성장동력을 통한 수익원 다변화 전략이 성공을 거둘 경우, 두산그룹 전체의 실적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김장원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복합화력발전소와의 첫 번째 연료전지 공급계약을 시작으로, 향후 다양한 사업에서 추가 수주가 기대된다”며 “연료전지 사업을 중심으로 매출처 다원화와 수익성 강화가 이어진다면 연간 실적 역시 큰 폭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두산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또 다른 신성장동력은 바로 ‘가스엔진’이다. 가스엔진은 액화가스(LPG), 천연가스, 석탄가스 등 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는 내연기관을 의미한다. 특히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셰일가스 붐이 일어나며 가스엔진 수요 역시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사실 두산에게 가스엔진 시장은 그리 낯선 시장이 아니다. 두산의 핵심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미국 가스엔진 시장에 진출해 꾸준히 경쟁력을 쌓아오고 있었다. 지난 2008년 미국 발전기 제조 회사 제네락(GENERAC)사와 발전기용 디젤엔진의 3년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했던 두산인프라코어는 이후 북미 최대산업용 가스엔진 제조 및 판매회사인 PSI(Power Solution Inc.)사에 3년간 5,200만 달러 규모의 ‘엔진 롱블럭(연료 및 점화계통을 제외한 반제품 형태의 엔진)’을 독점 공급하기도 했다.
최근 두산인프라코어는 가스엔진 시장 공략을 위해 당시 협력했던 PSI와 합작법인 ‘두산PSI유한회사(이하 두산PSI)’ 를 설립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가스엔진 수요 증가에 발맞춰 발전기와 컴프레서 등에 들어가는 산업용 가스엔진 시장으로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합작법인 설립을 결정했다. 두산PSI는 미국 조지아주에 사업장을 두고 차량용을 제외한 모든 산업용 가스엔진을 개발·생산·판매할 예정이다. 두산PSI는 북미를 포함해 유럽과 중국, 남미 등 글로벌시장에서 2018년까지 연간 1,000대를 판매한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준호 엔진 사업부문(BG)장은 “양사의 시너지를 통해 단기간 내 사업역량을 키울 수 있게 됐다”며 “고객 요구에 맞는 다양한 제품을 신속하게 개발·생산· 공급하는 시스템을 이른 시일 내에 갖춰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두산이 미래먹거리로 내세운 가스엔진 사업은 신성장동력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두산그룹 전체 매출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두산인프라코어 수익원 다변화의 핵심 키워드가 바로 ‘ 가스엔진’ 사업이기 때문이다. 현재 두산인프라코어는 전체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건설기계 자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밥캣홀딩스(이하 밥캣)에서 거둬들이고 있다. 밥캣의 지난해 연간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3조 7,287억원과 3,220억 원. 특히 매출액의 경우 두산인프라코어 전체 매출의 약 49%에 달하고 있다. 한때 ‘계륵’으로 불렸던 밥캣이 이젠 두산인프라코어에서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밥캣을 제외한 다른 사업에선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있다.
특히 중국시장에서의 부진이 치명적이다. 한때 중국 굴삭기시장 점유율 1위를 달렸던 두산인프라코어는 중국 내 건설경기 침체와 일본 경쟁사들의 공세에 밀려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건설기계 부문 매출이 두산인프라코어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의 부진은 뼈아픈 결과로 이어지고있다. 지난 1분기 중국 건설기계 사업 매출은 1,057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63.4%나 감소했다. 1분기 중국 굴삭기 판매량 역시 1,157대를 기록하며 전년 동기 판매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한때 20%에 육박하던 중국시장 내 점유율 역시 7.5% 수준(올 3월 기준)으로 급락한 상황이다. 이 같은 중국시장 부진과 밥캣에 의존하는 매출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가 연료전지와 가스엔진을 통한 신성장동력 확보라는 것이다.
현재 두산인프라코어는 중동시장을 가스엔진 사업의 새로운 요충지로 정하고 활발한 세일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미 밥캣 건설장비와 지게차 소형 디젤엔진 (G2) 등 주력 제품으로 중동시장 공략에 청신호를 밝힌 두산인프라코어는 최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2015 중동 전력 전시회’에 참여해 두산PSI가 개발한 발전기용 천연가스 엔진을 최초로 선보이기도 했다. 향후 두산인프라코어는 발전 효율을 20% 이상 높인 천연 가스엔진을 앞세워 중동시장을 적극 공략할 계획이다. 두산인프라코어의 미래먹거리 발굴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 두산인프라코어는 김용성 사장 직속의 미래전략팀을 조직하고 빅데이터와 로보틱스, 3D 프린팅 등 3개 분야에 대한 연구 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두산그룹이 선보인 신성장동력은 장밋빛 미래와 또 다른 부진 중 어느 한쪽으로 두산을 이끌 것이다. 준비가 아닌 행동으로 모든 것을 말하겠다는 박용만 회장과 두산그룹의 신성장 전략이 어떠한 결과로 이어질지 앞으로의 상황을 주목해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