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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불' 켜진 현대기아차 신차 출시로 위기 극복한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해외법인장들을 소집해 긴급 비상 대책회의를 가졌다. 국내 판매부진에 이어 해외 판매에서도 하락세가 나타나고 있어서다. 현대기아차는 다양한 신차 출시로 시장에서 다시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내수는 물론,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더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지난 7월 13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해외법인장들을 현대자동차그룹 본사로 긴급 소집했다. 국내 판매 부진에 이어 글로벌 시장 판매량까지 하락한 상황에서 이 자리에 모인 60여 명의 해외법인장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말했다. “시장이 어려울수록 판매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정 회장은 현대기아차의 올해 판매목표를 820만 대(현대차 505만 대, 기아차 315만 대)로 제시했다. 지난해 판매량 800만 대보다 2.5% 늘려 잡은 것이었다. 현실을 고려할 때 정 회장이 내준 숙제는 결코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현실을 보자. 현대기아차는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국내외 시장에서 394만 6,067대를 판매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 줄어든 수치다. 현대차는 241만6,626대, 기아차는 152만9,441대를 판매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3.2%와 1.2%가 감소했다. 정 회장이 제시한 올해 판매목표 820만대를 달성하려면 하반기에 425만 대가 넘는 차량을 판매해야 한다. 올해 상반기보다 약 7.7%,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4% 많이 팔아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현대기아차의 하반기 판매 전략의 발들에 불이 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현대기아차는 국내외 판매부진의 원인으로 글로벌시장의 불확실성 증대를 꼽고 있다. 엔화 및 유로화의 상대적 약세가 국내외 판매에 영향을 미친 측면이 크다고 보고 있다.

원화가 강세 기조를 나타내면서 현대기아차가 해외시장에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신차 출시 및 판촉 강화에 밀렸다는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중국의 성장둔화도 원인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현대차의 중국 판매량은 1년 전보다 31%나 급락했다. 업계는 이 결과에 대해 중국의 경기둔화속에 미국· 일본업체들의 공세와 중국 현지업체들의 추격을 받은 결과라고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외부 요인만으로 모든 판매부진을 설명할 수는 없다. 13일 해외법인장 회의에서 현대기아차는 라인업이 세단에 집중됐다는 점과 신차 출시가 활발하지 못했던 것을 판매 하락의 더 큰 원인으로 분석했다.

정몽구 회장은 국내외 시장에 드리워진 ‘ 빨간불’ 을 끄기 위해 공격적인 신차출시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글로벌 신차 출시가 집중된 하반기에 신차효과를 극대화해 전년 판매실적을 뛰어넘자는 게 그가 제시한 위기 극복 방안의 골자라 할 수 있다.

전문가들 역시 하반기 현대기아차의 판매실적 개선을 위해선 신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장문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말한다. “신차가 현대기아차의 실적개선에 중요한 몫을 할 겁니다. 신차 출시를 통해 수요를 개선하고, 공장 가동률을 높이고, 재고소진을 위한 인센티브를 줄이는 등 선순환을 마련해야 실적 개선을 이룰 수 있어요.”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원도 “현대기아차가 판매량을 늘리려면 내수시장에 출시되는 K5, 쏘나타 등 신차 효과가 중요하다”며 “미국과 중국시장에서도 신형 투싼, 신형 K5 같은 신차투입으로 판매량 증가를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는 하반기 다양한 신차를 내놓는다. 이미 쏘나타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쏘나타 1.6터보, 쏘나타 1.7디젤은 7월 2일, 신형 K5는 7월 15일 국내 시장에 출시했다. 신형 스포티지, 신형 아반떼, 신형 에쿠스 등도 하반기 출시를 앞두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글로벌시장 판매 전략도 구체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형 투싼, 소형 SUV 크레타, 신형 K5, 씨드 등 전략 신차들로 마케팅 역량을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현대차는 하반기 중국, 미국, 유럽 등 주요 시장에 신형 투싼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인도를 비롯한 신흥시장에는 소형 SUV 크레타로 글로벌 SUV 시장을 적극 공략할 예정이다. 기아차는 대표 글로벌 모델인 신형 K5의 출시와 더불어 유럽에선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씨드로 점유율을 더욱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현대기아차는 특히 새로 출시한 2016년형 쏘나타와 신형 K5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쏘나타와 K5는 글로벌 시장에서 연간 100만대 이상 판매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수출 부진을 겪고 있는 현대기아차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7월 15일 열린 신형 K5 미디어 발표에 참석한 기아차 박한우 사장은 “신형 K5는 동급 국내 브랜드뿐만 아니라 수입브랜드와 견주어도 디자인과 성능 모든 부분에서 뛰어나다”며 “10월 초 출시되는 스포티지까지 더해 해외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기아차가 잇달아 신형 중형 세단을 내놓고 소비자 선택 폭을 넓히면서 국내 자동차 시장을 빠른 속도로 잠식 중인 수입차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을지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올해 상반기 국내에서 판매된 수입차는 11만 9,823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27%나 급증했다. 이에 비해 현대차와 기아차는 올해 상반기 국내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곽진 현대차 부사장은 최근 현대차 판매 부진과 관련해 “올해 상반기 국내에서 33만6,000대를 판매해 내부적으로 세운 목표를 달성했지만, 지난해에 비해선 3만 대 정도 줄었다”며 “수입차들이 유로5 기준 디젤엔진 차량을 대폭 할인했고 현대차의 신차 출시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분석했다. 기존 K5 역시 올해 상반기 국내에서 한 달 평균 3,300대 정도를 판매했지만, 수입차 공세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차는 올 연말까지 국내에서 신형 쏘나타 판매량 10만대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기아차는 신형 K5를 한 달 평균 8,000대 가량 판매해 올해 국내에서 4만6,000대를 팔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김창식 기아차 부사장은 7월 1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진행된 K5 신차발표 행사에서 “중형 세단 쏘나타와 K5가 공동으로 수입차에 대응해 중형차 시장을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일한 중형 세단 구매계층을 겨냥한 데 따른 ‘간섭현상’보다 시너지 효과가 더 클 것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현대기아차는 신차판매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브랜딩 전략에도 힘을 쏟을 전망이다. 국내외에서 전개되고 있는 다양한 마케팅은 물론, 해외 소비자에게 현대기아차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현대차는 미국 프로풋볼리그(NFL), 기아차는 미국 프로농구(NBA) 등 인기 스포츠를 지속적으로 후원한다는 구상이다.

현대차는 10년 전 ‘품질 경영’을 선언했다. 그동안 거둔성과는 엄청났다. 세계 5위 자동차 기업으로 고속 성장하며 업계 최고의 패스트 팔로어로 불렸다. 그리고 그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또 다시 달라져야 한다는 압박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더 높은 자리를 노리는 현대차에겐 과거와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바로 현대차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현대기아차는 차를 많이 파는 회사에서 가장 사랑 받는 브랜드로 변신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전 세계 시장에서 통용될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과정도 필요했다. 벤츠는 ‘최고’를, BMW는 ‘운전의 재미’를, 볼보는 ‘안전’을 바로 떠올릴 수 있다. 현대차는 이를 위해 ‘브랜드 경영’ 을 시작했고, ‘ 모던 프리미엄’ 이라는 브랜드 경영의 큰 줄기로 찾았다.

현대차는 지난해까지 브랜드 노출 극대화를 통한 인지도 향상을 글로벌 브랜드 전략으로 삼았다. 전략은 나름대로 성공했다. 이 기간 현대차 브랜드 가치는 크게 상승했다. 세계 최대 브랜드 컨설팅업체 인터브랜드가 지난해 발표한 ‘2014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서 현대차는 2013년보다 3 계단 오른 40위를 기록했다. 기아차 역시 9계단 상승한 74위를 기록했다.

현대기아차는 전 세계 시장에서 높아진 제품 및 브랜드 인지도를 바탕으로 현 위기상황을 넘겠다는 계획도 밝히고 있다. 그에 따라 글로벌시장에서 주요 차종의 판매가를 높이고 있다. 저렴한 가격을 장점으로 내세웠던 전략에서 벗어나 품질과 성능으로 인정받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제값 받기’로 수익성을 확보해 경쟁사와 차별화된 성과를 이뤄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2015년 자동차시장 전망’을 내놓으면서 “메이저 업체들이 고급화 전략을 더욱 적극적으로 시행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는 소수 업체가 추구하던 고급화 전략이 업계 전반으로 확산함에 따라 고급차와 대중차의 경계가 허물어져 프리미엄 브랜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망했다. 한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대당 판매 가격은 1만 6,500달러 수준인 반면, 상위권 업체들은 2만 5,000달러를 넘는다”며 “프리미엄 자동차로 선진시장을 공략하지 못하면 경영악화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짖적했다.

현대차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말한다. “값 싼 브랜드라는 이미지 만으론 더 이상 성장을 할 수 없습니다. 현대차도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어요. 제값 받기를 통해 시장점유율과 수익성을 동시에 끌어올려 최근의 원화 강세 등 어려운 시장환경을 극복할 겁니다.”

현대기아차는 어려운 시장 상황이 지속 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다양한 신차 전략으로 판매를 끌어올리는데 힘쓰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신차 개발과 마케팅 능력은 이미 세계 정상급이다. 여기에 브랜드 가치만 더 끌어올린다면 지금의 상황은 의외로 쉽게 극복될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과제는 쉽게 달성할 수 없다. 하지만 뚝심의 현대기아차에겐 도전과 응전을 감내할 충분한 능력이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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