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적 해킹 '소니 사건'의 전모 ①

소니 픽처스 Sony Pictures는 단 한 번의 사이버 공격으로 무릎을 꿇었고, 미국 기업들은 공포에 떨었다. 포춘이 사건의 전말, 그리고 소니가 일찌감치 해킹의 전조를 알아차렸어야 하는 이유를 파헤쳤다. BY PETER ELKIND


2014년 11월 3일 월요일, 4명으로 구성된 노스 사 Norse Corp.(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작은 규모의 ‘위협정보 threat-intelligence’ 분석업체)의 팀이 로스앤젤레스 교외 컬버 시티 Culver City에 위치한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 스튜디오 단지에 도착했다.


예정된 미팅 시간인 오전 11시 30분보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소니의 사이버보안 책임자와 만나 수년 간 소니를 괴롭힌 문제, 즉 해커들의 공격으로부터 스튜디오를 보호할 노스의 서비스를 설명할 예정이었다.

노스 팀은 정문에서 잠깐 보안점검을 받은 후, 소니 단지의 동쪽에 위치한 조지 번스 빌딩 George Burns Building으로 이동했다. 정보 보안 부서 1층에는 ‘정보부서(Info sec)’라는 표지가 작게 붙어 있었지만, 잠겨 있지 않아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노스 팀의 신분을 확인할 안내담당자나 경비담당자도 없었다. 사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소니의 국제 데이터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있는 여러 대의 컴퓨터가 관리하는 사람 없이 칸막이 안에 놓여 있었다.

노스 팀은 소니 정보보안 수석 부사장 제이슨 스팔트로 Jason Spaltro의 사무실 밖 작은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들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15분이 흘렀다.

노스의 공동 설립자이자 최고기술책임자인 토미 스티안센 Tommy Stiansen은 “좀 당황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소니 정보보안부서엔 사람이 없었고, 모든 컴퓨터 화면이 로그인 된 상태였다. 기본적으로 청소부도 정보보안부서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베테랑 변호사이자 당일 미팅을 주선한 미키 샤피로 Mickey Shapiro도 “우리가 나쁜 마음만 먹었다면, 끔찍한 일을 벌일 수도 있었다”고 거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스팔트로(소니에서 1998년부터 근무했다)가 나타났다. 그는 노스 팀을 근처 회의실로 안내했고, 그곳에는 또 다른 스튜디오 정보보안책임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미팅이 시작됐고, 스티안센은 노스가 어떻게 잠재적 위협요소들을 포착하는지 설명했다. 그때 스팔트로가 “이봐, 북한영화에 정말 도움이 되겠어!”라고 소리쳤다. 노스 팀에 따르면, 당시 스팔트로는 크리스마스 개봉을 준비하던 세스 로겐 Seth Rogen (*역주: 공동 감독 겸 주연을 맡았다) 의 코미디 영화 ‘인터뷰 The Interview’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영화는 북한의 실질적 지도자 김정은을 암살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스티안센은 “북한이 소니를 위협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소니는 북한의 사이버 위협에 대해 전혀 언급한 바 없다고 주장했다).

노스 팀의 증언에 따르면, 미팅은 1시간 정도 진행됐다. 소니 측 인사들은 ‘매우 생산적이었다’고 밝힌 후 , 따로 연락을 취하겠다고 말하곤 방문자들을 남겨둔 채 회의실을 떠났다. 노스 팀은 알아서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3주 후, 태평양 시간으로 11월 24일 월요일 오전 7시에 소니 픽처스에 대한 대규모 사이버공격이 시작됐다. 네트워크에 접속한 직원은 총소리와 화면 위에 떠다니는 협박의 글을 피할 수 없었다. 좀비가 돼버린 스튜디오 책임자 두 명의 작은 머리 위로는 불타는 해골 그림이 떠오르고 있었다.

소니 IT 담당자들이 선을 뽑기도 전에 해커의 악성코드는 스튜디오 단지의 장비 하나하나를 감염시켰고, 대륙을 건너 소니 국제 네트워크의 절반을 점령했다. 6,797대의 개인용 컴퓨터 중 3,262대, 그리고 1,555대의 서버 중 837대에 저장된 모든 것을 삭제해버렸다. 해커들은 복구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7가지 방법으로 데이터를 덮어쓰는 특별한 삭제 알고리즘까지 추가했다. 결국, 악성코드는 각 컴퓨터 시작 프로그램을 점령했고 장비를 뇌사 상태에 빠뜨렸다.

악성코드가 활동을 시작한 그 순간부터-해커들이 소니에 침입한 지 몇 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소니 픽처스가 베타맥스 Betamax (*역주: 소니가 1975년 개발한 비디오테이프 녹화 기술)시절로 돌아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시간이었다. 스튜디오에선 팩스를 사용하고 종이메모로 의사를 전달해야 했으며, 7,000명의 직원에겐 종이 수표로 임금을 지불해야 했다.

그것은 소니가 겪게 될 공포의 시작에 불과했다. 해커들은 회사 데이터를 파괴하기 전에 우선 그 데이터들을 훔쳐냈다. 사건 발생 후 3주 동안, 여러 기밀 파일이 공개 파일공유 사이트에 9번에 걸쳐 올라왔다. 미완성 대본과 분노로 가득 찬이메일, 임금 내역과 4만 7,000만 개 이상의 사회보장번호가 유출됐다. 소니에서 제작한 영화 5편-그 중 4편은 개봉 전이었다-이 무단복제 사이트에 무료로 퍼졌다. 해커들은 9·11테러와 유사한 방식으로 영화관을 위협했고, 소니는 영화 ‘인터뷰’의 크리스마스 개봉을 포기해야만 했다. 큰 소동이 발생한 지 1주일 후, 결국 소니는 영화를 주문형 비디오로 공급하고 몇 백 개의 영화관에서만 개봉하겠다고 발표했다.

12월 19일, FBI는 영화에 대해 위협적 태도를 보였던 북한을 해킹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백악관도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취했다. 소니는 북한 지도자 암살을 다루는 코미디영화를 제작했다는 사실과 함께, 영화 개봉을 아예 포기하려 했던 초기 대응방식 때문에 강력한 비난에 시달렸다.

소니는 가장 어려운 시기에 할리우드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고, 오바마 대통령의 비판도 들어야만 했다. 직원들은 끝나지 않은 명의 도용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이 사건 전에도 소니 스튜디오와 도쿄에 위치한 모기업 소니는 곤란한 상황에 빠져있었다. ‘큰집 소니(Big Sony)’-스튜디오 측 경영진은 모기업을 이렇게 부른다-는 최근 7년 중 6년 동안이나 손실을 기록했고, 당시에도 위기에 계속 직면하고 있었다. 소니 픽처스는 소니의 몇 안 되는 수익 사업부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여러 인터뷰와 내부 이메일을 통해 드러난 바에 따르면, 이 스튜디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기대에 못 미치는 수익도 문제였지만, 비용절감과 정리해고의 압박도 있었다. 한 행동주의 투자자로부터 수모를 당했으며 내부 다툼도 겪고 있었다. 소니 픽처스의 CEO 마이클 린턴 Michael Lynton은 해킹사건이 터지기 전 18개월 동안 4번이나 이직을 시도하기도 했다.

소니 입장에서 보면, 회사는 무고한 피해자였다. 12월 미국 국영라디오방송(National Public Radio)과의 인터뷰에서, 린턴은 소니가 “일반적인 사이버 공격에 대해선 매우 잘 대처하고 있었지만,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사이버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사이버 공격을 “매우 정교한 공격”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소니 픽처스는 수석 대변인 로버트 로슨 Robert Lawson을 통해 질문에 대한 서면답변을 제공했다.

린턴이 해고나 징계를 계획하진 않았다고 밝혔다. CEO의 논리는 이랬다. 단순한 해커 일당보다 훨씬 많은 자원을 보유한 외국 정권이 소니를 공격했기 때문에 막을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단지 스튜디오는 불리한 싸움에 말려들었을 뿐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로슨은 발표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가 이 공격을 사전에 알고 막아냈어야 했다는 모든 주장에는 오류가 가득하다. 국가 단위의 위협에 정통한 FBI와 (소니 사이버안보 컨설턴트) 케빈 맨디어 Kevin Mandia의 수사결과와 의견을 무시하는 것이다. 당시 FBI 사이버부서 부국장이었던 조지프 데마레스트 Joseph Demarest는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사용된 악성코드는 민간업계에 현존하는 사이버 보안책의 90%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것이어서 정부조차 위험하다고 감히 생각한다’고 명백하게 증언했다.” 발표문은 이에 그치지 않고 ‘맨디어는 이번 공격에 사용된 정교한 정보 해킹 방식이 왜 감지되지 않았는지 이미 설명했다. 맨디어와 FBI 모두 업계 표준 바이러스 백신을 통해 해당 악성코드를 잡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덧붙였다.

소니를 공격한 해커들이 철벽 같은 사이버 보안수단까지 무력화시켰는지는 알 수 없다. 전문가들은 소니의 사이버 보안수단이 다른 곳에 비해 더 나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너무나도 많은 기업이 취약한 구식 체계를 당연하다는 듯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가지 기본적인 보안대책을 갖추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소니의 방어 의지가 투철하지 않았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사실 소니에겐 보안을 강화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수 년 간 이뤄진 소니의 여러 사업 결정은 해커들이 소니를 사이버 공격의 표적으로 삼도록 만들었고, 영화 ‘인터뷰’의 개봉으로 그 정점을 찍었다. 게다가 북한에겐 파괴적인 사이버 공격으로 크게 비난 받은 전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소니 경영진은 더 나은 대비책을 마련하는 데 실패만을 거듭하고 있었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선임위원이자 사이버보안 전문가인 제임스 루이스 James Lewis는 “그 어떤 기업도 ‘우리가 좀 허술해서 침입이 가능했다’고 말하진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가 규모의 공격이기 때문에 막기 힘들다고 해서, 문을 활짝 열어놓고 레드 카펫을 깔아줘야 하는 건 아니다.”

이번 기사를 위해 소니 전현직 고위 이사진(모두 실명공개를 거부했다), 사이버 안보 전문가, 경찰관계자들과 50차례 이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또 해커들이 소니로부터 훔쳐낸 여러 이메일 및 문서를 참고했다. 그 내용은 할리우드에서 도는 소문과 비교할 수 없는 자료였다. 이를 통해 해킹이 발생한 무렵의 소니 픽처스 사업을 엿볼 수 있었다. 이사진의 성격, 도쿄 모기업으로부터의 압박을 비롯해 21세기 엔터테인먼트 스튜디오 운영의 어려움 등을 가늠할 수 있었다(이 기사에선 이메일 자체의 구두점, 오자 등은 수정하지 않았다).
이메일에는 놀라운 사실이 가득했으며, 알려지지 않았던 일화도 담겨 있었다. 소니가 직원 이메일을 감시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역설적인 사실은 해킹으로 유출된 이메일과 문서를 통해 이렇게 끔찍한 해킹이 성공했던 이유, 그리고 기업이 자기방어를 위해 마련해야 할 대책을 알아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포춘이 이 자료를 사용하기로 결정한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소니 사건은 하나의 본보기가 되었다. 공포감이 미국 기업들의 이사회를 엄습했다. 소니에게만 국한되는 특별한 상황도 있었지만, 그 교훈은 모든 기업에 의미가 있었다. 옛말을 인용하면, 결국 기업은 두 종류로 나뉜다. 이미 해킹을 당한 기업과 해킹 당한 사실을 모르는 기업이다. 타깃 Target, 앤섬 Anthem, 홈 디포 Home Depot, 제이피 모건 J.P. Morgan과 같은 수많은 기업이 수익에 직결된 데이터를 도난 당하거나 산업스파이 범죄 탓에 피해를 입은 바 있다.

미국 기업들은 막대한 자원을 들여 인터넷 범죄에 맞서는 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마주하게 될 위험은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거대해지고 있다(잘 알려진 대로 미국의 국세청, 백악관 이메일 시스템, 인사국도 침입 당했기 때문에 정부도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 사실 과거에는 해킹의 피해자가 대부분 기업이 아니라 고객이었다. 그러나 소니 해킹 사건을 통해 해커들이 이사진의 가장 중대한 비밀을 훔쳐내고, 그들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그런 측면에서 충격은 엄청났다.




거인의 굴욕
일본 전자제품 대기업과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의기투합은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로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소니는 지구 상에서 가장 막강한 전자제품업체였으며, 당시만 해도 일본 기업의 지배력이 영원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소니는 48억 달러라는 막대한 돈을 지불하며 경영난에 허덕이던 컬럼비아 픽처스 Columbia Pictures를 인수했다. 그리고 소니의 고급 하드웨어-TV, 비디오 리코더, 음악 재생기-매출을 늘리기 위한 필수 소프트웨어가 영화라고 선언했다. 스튜디오의 이름을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로 바꿨지만, 경영난이 해소되지 않아 5년 후에는 27억 달러 규모의 자산 가치 절하를 감내해야 했다.

그 후 소니는 일상제품이 된 소비자가전에 25년 동안 집중했다. 하지만 세월은 소니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물론 소니는 여전히 초거대기업이다. 직원규모만 13만 2,000명에 이르고, 3월에 끝나는 회계연도 매출도 747억 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소니는 지난 7년 동안 121억 달러의 회계상 손실을 기록했다.

2012년 4월 CEO에 오른 히라이 카즈오 Kazuo Hirai는 ’매우 심각한 위기감‘을 표명하며, 수천 명 규모의 정리해고를 비롯한 회생 전략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변화를 기피하는 일본기업문화 속에서 히라이의 전략은 너무 더디게 진행됐다.

히라이의 전임자는 첫 비일본인 출신 CEO 하워드 스트링거 Howard Stringer였다. 스트링거는 경직된 회사에 활기를 불어넣지 못했고, 스스로의 무능을 탓하며 절망했다. 플레이스테이션 PlayStation 비디오게임 부문 출신인 히라이는 플레이 스테이션을 안정적인 수익사업으로 만드는 데 공헌했다. 51세의 젊은 나이에 CEO에 임명된 그는, 편안한 옷을 즐겨 입고 직원들에게 자신을 카즈 Kaz라 부르라고 할 정도로 강한 친화성을 보였다. 미국에서 몇 년을 보낸 후에는 완벽한 영어로 제품설명을 해내기도 했다.

히라이는 자신의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소니 픽처스에 간섭하지 않았다. 소니 픽처스는 10년 이상 미묘한 음과 양의 파트너십으로 운영됐다. 소니 스튜디오의 책임자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으로 군림했던 에이미 파스칼 Amy Pascal이었다. 유명인들의 자존감을 다루는 데 능숙한 파스칼은 영화감독이나 스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사랑을 받았다. 조지 클루니 George Clooney가 지난해 파스칼에게 ‘에이미, 당신을 존경한다. 당신은 유일하게 영화를 사랑하는 스튜디오 책임자’라는 이메일을 보낼 정도였다. 로스앤젤레스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파스칼은 생각나는 대로 이메일을 길게 쓰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열정적이면서도 상처를 잘받고 숨기는 것이 없는 인물이었다. 지난해 910만 달러 연봉을 받은 그는 한 때 러시아 태생의 미국 영화 제작자 루이스 B. 메이어 Louis B. Mayer가 머물렀던 거대한 집무실에서 자랑스럽게 자신의 왕국을 이끌었다. 상대방에게 관대한 계약을 추진하기도 했고, 수익성이 확실치 않더라도 도전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4년 스트링거는 재정 건전성을 정비하기 위해 파스칼을 압박했다. 린턴에 협조하라는 것이었다. 린턴은 AOL유럽을 떠나 새롭게 소니 픽처스 CEO로 합류한 상황이었다.

린턴은 히틀러로부터 탈출한 부유한 독일계 유대인 집안 출신으로 네덜란드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엑서터 Exeter에서 공부한 후, 하버드에서 학사학위와 MBA를 취득했다. 하버드에선 럭비선수로 활동했고, 투자은행가 일을 잠깐 하기도했다. 시원시원하고 지적이며 침착한 성격으로, 여느 동부해안 지식인들처럼 예술에도 관심이 많았다. 할리우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신경하고 돈에 집착하는 사람들보다 교양 있는 인물로 평가 받았다. 1998년 린턴은 디즈니 스튜디오를 떠나 펭귄 북스 Penguin Books를 이끌기 위해 동부로 돌아왔다. 그는 뉴요커 New Yorker지 기자에게 ‘영화로만 이뤄진 삶’에 대한 자신의 ‘공포’를 고백한 적이 있다.

인맥을 매우 중시하는 린턴은 극적인 변화나 관심을 부담스러워 했다. 막후에서 상황을 조율하길 원했다. 일례로 억만장자 리언 블랙 Leon Black의 조카를 위해 영화 오디션을 주선했고, 마서즈 비니어드 Martha‘s Vineyard *역주: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고급 휴양지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저녁식사를 하기도했다. 친구인 작가 맬컴 글래드웰 Malcolm Gladwell에게 소개팅을 주선해주려고 페이스북의 최고운영책임자(COO) 셰릴샌드버그 Sheryl Sandberg와 머리를 맞댄 적도 있다.

상당한 부를 축적했음에도(소니에서 2013년 받은 연봉은 960만 달러였다), 린턴은 검약한 모습을 보였다. 타고 다니던 차가 폭스바겐 골프 GTI Volkswagen Golf GTI였다. 파스칼은 유출된 한 이메일에서 린턴을 “매일 같은 구두를 신을 것 같은 인물”이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그 구두가 스위스 최고급 구두업체에서 제작됐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린턴과 파스칼은 10년 동안이나 소니에서 살아남았다. 할리우드에선 ‘영원’과 같은 시간이다. 50대 중반인 두 사람은 사는 곳이 서로 3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으며, 같은 유태인교회를 다녔다. 린턴은 소니에 합류하면서 능숙하게도 파스칼의 권한을 침범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수지타산에 별 문제가 없을 경우엔 그녀가 원하는 영화를 가로막는 일도 거의 없었다(심지어 자신이 싫어하는 영화도 막지않았다). 예를 들어보자. 영화 ‘머니 몬스터 Money Monster’의 대본을 읽어본 린턴은 파스칼에게 이런 메일을 보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무 단순하고 과장이 심하며 꽉 막힌데다가 있어 바보 같다. 그래도 예산상 괜찮고 위험요소만 없다면, 반대하지는 않겠다.” 그 후 소니는 이 영화를 계획대로 추진했다. 그러나 아직 개봉일정은 잡히지 않은 상황이다(소니 대변인 로슨은 “(린턴이) 처음에는 지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논의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바꾸고 결국 프로젝트를 지원하기로 했다. 유출된 이메일을 통해선 이를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히라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4년 6월 린턴은 캐머런 디아스 Cameron Diaz의 코미디 영화 ‘섹스 테이프 Sex Tape’(훗날 흥행에 참패했다)에 대한 열정적인 유럽 상영보고서를 히라이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자신과 CEO 둘 다 이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농담을 던졌다. 히라이는 ‘그저 내 본업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답장을 보냈다.

린턴은 ‘박스오피스가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우리 둘의 생각은 같다’고 답했다.




댄 러브 몰아내기. “삭감하지 못할 비용은 없다.”
2013년 5월,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면서 ‘큰집 소니’와 스튜디오의 관계에 변화가 찾아왔다. 동시에 위태롭던 경영 파트너십이 더욱 흔들리기 시작했다. 모기업 소니가 댄 러브의 압박을 받게 된 것이었다. 뉴욕 시에 위치한 헤지펀드 서드 포인트 Third Point를 운영하는 러브는 11억 달러 규모의 소니 주식을 매수하며-도쿄 본사 지분의 6%를 상회하는 규모다-소니 픽처스를 표적으로 삼고 있었다.

러브는 자신의 사냥감을 거칠게 뒤쫓았다. 때론 경영진의 사적인 실수를 지적하며 몰아내려 시도를 하기도 했다.

그는 서한을 한 통 보내 소니 이사회를 압박했다. 공모를 통해 스튜디오 주식을 20%까지(린턴이 관리하던 음악사업부문까지 포함됐다) 분할하고, 회생 자금을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러브는 소니 픽처스의 이익 마진이 경쟁사에 비해 턱없이 낮을 뿐만 아니라, 거품이 너무 많고 경영 또한 부실하다며 공개적으로 회사를 비판했다. 또 히라이가 린턴과 파스칼에게 ‘자유이용권’을 줬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영화산업은 한치 앞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소니 스튜디오의 경우는 현재뿐 아니라 미래도 불투명했다. 2013년 여름블록버스터를 노리며 대규모 투자를 감행한 ‘화이트 하우스 다운 White House Down’과 ‘애프터 어스 After Earth’가 실패의 쓴 잔을 마셨다. 소니가 제작을 준비하는 영화 중에는 버팀목 노릇을 할만한 ‘ 텐트폴 tentpoles’ 이 부족했다. 수익성이 좋은 속편이 나올 수 있거나, 액션 피규어와 비디오게임 같은 관련 제품을 출시할 수 있는 영화가 없었다.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성공작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해외시장이 박스오피스 수익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해외에서 주목 받는 작품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히라이는 러브의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소니 스튜디오에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모기업 매출의 11%를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익을 내는 몇 안 되는 사업 중 하나였던 것이다. 또 공모를 통한 분할은 히라이가추진 중이던 ‘하나의 소니(One Sony)’ 전략에 흠집을 낼 수있었다(히라이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간의 시너지효과를 노리며 부활시킨 전략이다).

그 후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소니 임직원 대다수는 러브를 두려워하면서도 미워했다(총괄부사장은 유출된 메일에서 러브를 ‘얼간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소니 이사진은 그가 스스로 물러나도록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마음을 사로잡는 방식을 선택했다. 히라이는 도쿄에서 러브와 조찬을 가졌다. 린턴과 파스칼은 새로운 스튜디오 PR 전문가 찰리 시프킨스 Charlie Sipkins를 연봉 60만 달러에 영입했다(시프킨스는 위기관리업체 재직 시절 야후 Yahoo와 러브 사이의 협상을 성공시킨 바 있었다). 또소니는 러브의 투명성 향상 요구에 화답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2013년 11월 21일 사상 처음으로 ‘엔터테인먼트 투자자의 날(Entertainment Investor Day)’을 개최하기도했다.

경영진은 이 행사의 인터넷 방송을 계획하며, 마치 아카데미 시상식을 준비하는 듯 했다. 파스칼은 3주 먼저 자신의 발표내용을 준비한 후, 린턴과 다른 이들에게 ‘이제 리허설을 시작합시다’라고 이메일을 보냈다. 러브는 소니가 약속한 몇 가지 계획에 대해 CNBC 인터뷰를 통해 만족감을표시했고, 소니 경영진은 그 계획을 강조할 수 있도록 행사 내용을 수정하기도 했다. PR 전문가 시프킨스는 모두에게이메일을 보내 드레스코드까지 알렸다. “하나라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다… 남자는 어두운 정장에 무늬가 없는 셔츠와 단순한 넥타이를 갖췄으면 한다. 여성의 경우, 가능하다면 정장을 입거나 긴 스커트 또는 드레스를 입어주길 바란다.”

소니 경영진은 5시간의 발표를 통해 재정건전성과 수익안정성을 위한 자신들의 의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린턴과 파스칼은 영화 제작허가에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겠다고약속했다. 재능이 있어도 유리한 계약조건을 받기 힘들 것이고, 재정 측면의 결과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소니는 연간 영화 제작 건수를 24편에서 18편으로 줄였다.

스튜디오도 향후 2년 간 지출을 2억 5,000만 달러 삭감하겠다고 약속했다(수백 명의 정리해고를 의미했다). 린턴도 “삭감하지 못할 비용은 없다”고 선언했다.

이 시기에 린턴은 경영 컨설턴트 베인 앤드 코 Bain & Co.에 의뢰해 추가로 5,000만 달러 비용 절감 방법을 찾고, 이를 통해 총 3억 달러의 지출삭감을 달성하고자 했다. 소니는 이처럼 출혈이 불가피한 노력을 널리 알리고자 했다. 유출된 회의록에 따르면, 회사는 ‘앞으로 모든 사람이 이 프로젝트를 지칭할 때 ‘미래를 위한 건설’이란 이름을 사용하기 바란다…

이 과정을 통해 엄청난 생산력 향상을 이룰 수 있다. 모든 이가 진심을 다해 이 노력에 동참하길 바란다’고 경영 팀에 별도의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베인 앤드 코에 컨설팅을 의뢰한다는 소식을 소니에서 발표하기도 전에 언론이 이를 먼저알렸다. TV부문 대표 스티브 모스코 Steve Mosko는 “이 때문에 큰 혼란이 발생했다… 어제는 사무실 직원 모두가 하루 종일 일자리를 잃는 건 아니냐고 끊임없이 물어왔다”고 소니의 최고재정책임자(CFO)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러브에겐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2014년 1월, 그는 히라이와 린턴에게 이메일을 보내 자신이 뉴욕 포스트 New York Post와의 인터뷰에서 긍정적인 말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그는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도 썼다. 미국 연예전문지 버라이어티 Variety가 러브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그는 소니 경영진에게 미리 언질을 해주었다. 러브는 “배경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고만 말했다(그는 포춘과의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러나 유출된 이메일에 따르면, 소니의 뉴욕 법무자문관 니콜 셀리그먼 Nicole Seligman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소니내부에 러브의 스파이가 있는지 의심했고, 이를 알아보기로했다. 셀리그먼은 자신의 권한으로 스튜디오 최고 변호사 레아 베유 Leah Weil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는 비밀리에 IT부서에 요청을 했다. 2013년 1월 이후 러브와 소니 내부인 사이에 오고 간 이메일을 수집해 자신에게 전달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러브가 소니 경영진 린턴, 그리고 모스코와 10여통 정도의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내용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둘은 셀리그먼에게 이미 그사실을 이야기한 바 있었다.

셀리그먼은 비밀 이메일을 통해 베유에게 ‘새로운 것은 없다.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베유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왜 모두 공포에 떠는가… 무엇이 문제인가?”
러브의 간섭으로 소니 픽처스 전체에는 불안감이 감돌았다. ‘투자자의 날’ 당일, 린턴은 영화사업 부문의 수익이 증가하지 않을 것임을 예상하며 “사업의 중심축을 바꿔” 실질적인 수익사업에 집중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텔레비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 Breaking Bad’나 ‘블랙리스트 Blacklist ’의 성공, 연합체의 구성, 해외 채널 포트폴리오 성장 덕분에 스튜디오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이 TV사업에서 나오고 있었다. 소니는 2018년에는 이 이익 비율이 75%까지 늘어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유출된 이메일을 보면, ‘투자자의 날’ 이후 언론보도 때문에 파스칼이 크게 분노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제 TV가 최우선이라든가, 그녀의 일자리가 위기에 처하고 있다든가, 파스칼이 연봉 25만 달러가 훌쩍 넘는-실제로는 30만달러-개인 비서와 갈라선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할리우드 리포터 Hollywood Reporter의 기사다) 등의 보도가 이어졌다.

파스칼은 “읽어본 기사 중에 가장 터무니없다”, “말도 안 된다”, “바보 같다”, “미쳤다”라며 소니 경영진, 업계 지인, 가족들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또 린턴에겐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왜 모두 공포에 떠는가. 무엇이 문제인가?’ 라고 이메일을 보냈다.

린턴은 ‘우리가 어떤 비용이든 줄일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 이라고 쏘아붙였다. ‘그 정도의 연봉을 받는 비서가 있다는 건 통제가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통제능력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이클, 모든 이야기는 우리가 TV에 집중하는 방법이나 당신이 최종결정권을 가지는 방식에 관한 것들뿐이다… 완전히 소설을 쓰고 있다…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린턴은 ‘정말 되살아난 모습을 보여주거나, 그들이 다른 스튜디오를 표적으로 삼을 때까지’라고 답했다.

파스칼에게 보고하던 TV 부문 이사진 또한 자신이 비난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요가를 즐기는 운동광 모스코(소니에 20년 간 몸담았으며 TV사업을 다시 세운 인물이다)는 파스칼과 린턴이 언론을 통해 자신을 비롯한 팀원들에게 ‘인신공격’을 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모스코는 지난 2월 파스칼에게 이메일을 보내 ‘당신들을 위해 항상 노력했는데… 버스 아래 내던져진 하인 취급을 받고 있다… 완전 엉망이다’라고 항의했다. 모스코는 새로운 프로그램의 초기비용을 두고 자신을 힐난한 린턴에게도 분노를 표출했다. ‘엄청난 적대감이 나를 향하고 있음을 느끼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매년 우리는 여러 가지 해결 방법을 찾아왔다…’ 지난 여름, 린턴은 모스코가 권력욕이 있다고 의심하게됐다. 그는 프라하 휴가 중이었던 셀리그먼에게 이메일을 보내 ‘스티브 모스코가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의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오르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셀리그먼은 ‘스티브가 COO에? 말도 안 돼’라고 답했다.

린턴 또한 수익 확대의 압박이 커지면서 별로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그는 2013년 11월 “최근 일이 너무 힘들다”고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내가 하기로 한 것보다 모든 것이 좀 더 어렵지만, 버텨낼 것이다…”

린턴은 이미 10년 동안 CEO직을 수행한 상태였고, 자신을 영입한 스트링거가 떠나면 미래도 불투명해질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직할 기회를 일찌감치 찾기 시작했다. 2013년 초, 그는 타임 워너 Time Warner의 CEO 제프 뷰커스 Jeff Bewkes와 두 번의 만남을 갖고 워너 브라더스 Warner Bros. 스튜디오 운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2013년 10월에는 러셀 레이널즈 Russell Reynolds의 헤드헌터 일리네 나겔 Ilene Nagel이 새로운 총장을 찾고 있던 튤레인 대학교 (Tulane University)를 대신해 린턴과 만나 총장직에 관한 이야기를 교환했다. 린턴에겐 박사학위도, 학계 경험도 없었다. 그러나 총장 선임위원들과 만나기 위해 기꺼이 뉴올리언스까지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면접이 이뤄지기 전, 나겔은 대학 측에서 면접을 취소했다고 린턴에게 전했다. 기본적인 자격이 부족해 ‘승인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결론지었다는 것이었다.

그 무렵 린턴은 세 번째 이직기회를 알아보고 있었다. 스미스소니언 협회(Smithsonian Institution)의 최고 운영책임자인 총재직이었다. 린턴은 스미스소니언 이사진과 1월 8일 만났고, 나겔은 다음 날 린턴에게 은밀하게 ‘커다란 미소 그림’을 이메일로 보냈다.

린턴은 ‘오, 좋은 소식이군!’이라고 답했다. 나겔은 ‘비밀로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나겔은 2월 스미스소니언 이사진이 ‘좀 더 전형적인 후보를 선택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린턴은 소니 픽처스를 떠나기 위해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 총장직에 1년 동안 집중했다. 린턴과 소니의 계약이 끝나는 2016년이면 그 자리는 공석이 될 예정이었다. 2013년 11월, 뉴욕대학교 이사였던 헤지펀드 억만장자존 폴슨 John Paulson을 만난 후, 린턴은 자신을 후보로 제안하는 서한을 보내는데 동의했다. 그는 친척과 친구들-뉴욕 출신의 작가 글래드웰도 포함되어 있다-에게서 받은 추천서를 수정하고, 12월 3페이지짜리 초안을 완성했다. 이 초안에서 린턴은 ‘언뜻 보기엔 뉴욕대학교 차기 총장으로 당연한 선택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 경력이 이 업무에 딱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능력과 강단이있고, 투지가 넘치며, 혁신적이지만, 동시에 성격이 까다롭고, 이기적이며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관리했던’ 자신의 경험을 내세웠다. 마지막으론 ‘대학교라는 교육기관의 환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린턴은 2014년 한 해 동안 총장직을 따내기 위한 노력을지속했다. 그는 8월에 뉴욕대학교 이사회 의장이던 변호사마르티 립턴 Marty Lipton을 만났다. 립턴은 린턴에게 “어려운시도”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는 립턴의 의중을 애써 외면하면서 “총장직에 정말로 꼭 지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린턴은 9월 또 다른 총장인선위원회 위원이던 억만장자 켄 랑곤 Ken Langone을 만났다.

한편, 소니 픽처스에 대한 압박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소니는 자사의 가장 큰 프랜차이즈 영화인 ‘스파이더맨 Spider-Man’(이전 4편의 작품에서 총 32억 5,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이 박스오피스에서 좋은 결과를 거두길 기대하고 있었다(린턴은 뉴욕 시사회에 러브를 초대했지만, 부하직원에게 이 투자자의 자리가 에이미나 자신의 자리와 가깝지 않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Amazing Spider-Man 2’의 글로벌 티켓 판매액이 7억 900만 달러에 그치며 실망을 안겼다. 소니는 8억 6,500만 달러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2개월 후, 또 다른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바로 코미디영화 ‘섹스 테이프’였다. 흥행 성적이 공개되자, 린턴은 파스칼에게 ’올해 최악의 실패라고 생각한다‘고 이메일을 보냈다.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다. 이것이 끝이 아닐까 봐 두렵다.‘




“이 영화 때문에 쓰러질 뻔 했다. 바로 당신 때문이다. ”
소니의 영화사업은 또 한 번 어려운 한 해를 보내며 고난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파스칼은 자신의 능력-떠오르는 스타와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도움이 되기를 희망했다. 세스 로겐이 그녀의 바람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처럼 보였다.

로겐과 그의 협력자 에번 골드버그 Evan Goldberg는 ‘슈퍼배드 Superbad’(캐나다에서 10대 시절에 함께 쓴 시나리오)를 시작으로 2007년부터 소니와 상업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이 두 단짝이 만든 히트작 중에는 ‘파인애플 익스프레스 Pineapple Express’와 ‘디스 이즈 디 엔드 This Is the End’가 있다.

2014년 초, 파스칼은 3개의 소니 프로젝트를 추가하기 위해 로겐과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로겐과 골드버그가 감독을 맡아 이미 촬영을 마쳤던 영화 ‘인터뷰’를 2014년 10월 10일 개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로겐이 처음부터 북한의 실제 지도자 암살을 다룬 코미디영화를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시나리오작가 댄스털링 Dan Sterling이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초반 원고에는 김일환 Kim Il-hwan이라는 가상의 인물이 있었다. 스털링은 그때 김정은으로 바꾸자고 제안한 사람이 스튜디오 이사 중 한 명(스털링은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다)이었다고주장했다. 로겐과 골드버그는 그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 우선 중국에 대한 영화가 아니란 점이 좋았다. 중국은 중요한 영화시장이기 때문에 소니 입장에선 관계악화가 부담스러웠다. 북한이란 소재도 할리우드에서 추진할 만한 자극적인 것으로 괜찮아 보였다. 파스칼과 린턴은 이 같은 내용변화에 적극 찬성표를 던졌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이 결정은 재고했어야 마땅했다. 북한은 불량국가(rogue state)로 핵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지도자는 변덕스럽고 예상이 불가능한 독재자다. 소니에서 근무하는 한 영화제작자는 포춘에 “왜 김정은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박스오피스에서 그렇게 큰 의미를 가질까? 심각한 영화라면 그럴 수도 있다.하지만 이건 코미디 영화다!”

지금은 영화 ‘인터뷰’의 내용이 잘 알려져 있다. 선정적인 토크쇼를 진행하는 바보 같은 인물(제임스 프랑코 JamesFranco 분)와 그의 절친 프로듀서(로겐)가 인터뷰를 위해 북한 김정은으로부터 초대를 받는다. 영화에서 김정은은 두사람의 프로그램을 몰래 좋아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런데CIA가 두 방송인에게 김정은의 암살을 지시한다. 그리고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영화는 김정은이 헬리콥터에서 죽음을 맞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프랑코와 로겐이 연기한 두 인물이 탱크를 이용해 헬리콥터를 격추시키는 것으로 그려진다.

영화 제작에는 4,400만 달러가 들었고(이 중 로겐의 몫은 820만 달러였다), 마케팅 예산은 3,200만 달러였다. 소니는 R등급 치곤 상당히 높은 박스오피스 성적(1억 달러~1억 3,500만 달러)을 예상했다. 영화에는 호랑이와 군사장비가 등장하고, 값비싼 특수효과도 들어갔다. 로겐도 잡지 롤링스톤 Rolling Stone과의 개봉 전 인터뷰에서 “뜻대로할 수 있었던 상황을 마음껏 즐겼다”고 말했다. “그들이 엄청난 돈을 지원했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뭐든지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두 단짝이 이뤄낸 상업적 성공을 고려하면, 소니에겐 로겐과 골드버그의 비위를 맞추고 그들을 스튜디오에 묶어둘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둘은 스튜디오 단지 외부의 호화 사무실에서 일을 하며, 대마초를 피우고 돌아다녔다. 소니의 영화 마케팅 부문 사장 드와이트 케인스 Dwight Caines는 로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당신 영화를 좋아한다.

솔직히 말해 당신 작품은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 중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사회는 성공적이었다. 파스칼은 지난 4월 로겐과 그의 팀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영화 때문에 쓰러질뻔했다. 바로 당신 때문이다’라고 썼다. 로겐은 ‘제작할 수 있게 해줘 고맙다. 다른 그 누구도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라고 화답했다.

로겐과 그의 팀은 김정은 정권의 이상하고 폭압적인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폭로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스털링은 “대형 스튜디오 영화를 제작하면서 저급한 농담 속에 내포된 정치적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는 점에 흥분했다”고 회고했다. 소니 경영진도 같은 생각이었던 듯하다. 케인스는 5월 로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이 영화는 악명 높은 실제 인물을 소재로 삼고 있는데, 이런 대담한 시도는 다른 그 어떤 영화에서도 해 본 적이 없었을 것‘이라고 치켜 세웠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런 시각 때문이다… 웃음 사이사이에 날카로운 한방이 있다.‘



“인정사정 없이 반격에 나설 것이다.”
유출된 이메일을 확인해 보면, ’실제 인물‘을 모욕하려던 소니의 태도는 6월 17일부터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영화의 첫 번째 예고편이 인터넷에 공개되고 나서 며칠이 지난 후 영화를 직접 본 히라이가 린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이미 난항을 겪고 있는 일본과 북한의 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히라이의 생각처럼, 이 영화는 일본 기업에겐 위험한 시도였다.

린턴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우선 재편집을 위해 인터넷에 올린 예고편을 내렸다. 원래 소니 스튜디오의 브랜드(컬럼비아 픽처스, 트라이스타 Tristar, 스크린젬스 Screen Gems 등)로 개봉하는 모든 영화 크레디트에는 히라이가 추진한 ’하나의 소니‘ 전략에 따라 소니 로고만이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영화 ‘인터뷰’와 연관된 모든 것에서 ’소니‘를 지우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일본과의 연관성을 최소화하려는 시도였다. 소니는 아시아에서 제한적으로 영화를 개봉한다는 계획도 백지화했다. 린턴은 파스칼에게 “인터뷰에 대한 모든 것을 숨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며칠 후, 북한 정부 대변인은 영화 ‘인터뷰’의 개봉이 “가장 노골적인 테러 및 전쟁행위를 상징한다”고 경고한 뒤 “인정사정 없이 반격에 나설 것”이라 위협했다(후에 북한은 백악관과 유엔안보리에 정식으로 항의했다). 북한이 다른 국가를 위협한 사례는 많았지만, 대부분은 단순한 엄포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김정은 정권은 이미 일련의 사이버공격으로 광범위한 비난을 받고 있었다. 특히 주요 적대국인 대한민국을 많이 괴롭혔으며, 수천 명의 해커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3월 감행한 사이버공격이 가장 심각한 피해를 유발했다. ’다크서울 DarkSeoul‘ 공격으로 알려진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 은행과 방송국 등이 7억 달러 규모의 손실을 입었다. 현금인출기가 먹통이 되고, 3만 대에 이르는 컴퓨터 하드드라이브가 삭제됐다. 미국 언론의 주목을 끌었던 이 사건에서 해커들은 해골 그림이 들어있는 메시지를 사용했다.

그러나 소니 픽처스 경영진은 영화 ‘인터뷰’에 몰아친 폭풍에 무방비 상태였다. 그들은 다가올 위험을 측정하려 했다. 히라이에게 연락을 받은 린턴은 유럽에 있던 스튜디오대표 더그 벨그래드 Doug Belgrad에게 조언을 구했다. 벨그래드는 “실존하는 지도자의 사망을 묘사한 영화가 있었는지 알아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메일을 보면, 린턴이 지인을 동원해 비공식적으로 외부 전문가 두 명과 상의했음을 알 수 있다(로겐은 유쾌하게 이 상황을 웃어넘겼다. 그는 ‘12달러를 지불하고 내 영화를 본 사람들이 그 영화 때문에 나를 죽이려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트윗을 보내기도 했다).

린턴을 대신해 소니 대변인 로슨이 서면으로 입장을 밝혔다. 그는 CEO에게 조언한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이 “사이버공격 가능성에 대해 언질이나 경고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대화내용을 기록한 린턴의 메모를 보면, 그와 상의한 전문가 대니얼 러셀 Daniel Russel(동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 차관보)은 해킹위험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린턴과 가장 오랜 시간 상의한 전문가는 또 다른조언을 해주었다. 랜드 사 Rand Corp.(린턴이 이사를 맡고 있기도 하다)의 북한 전문가 브루스 베넷 Bruce Bennett은 자신이 소니 CEO에게 “사이버공격도 하나의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라고 경고했다”고 말했다.

영화 ‘인터뷰’를 본 베넷은 린턴에게 3페이지짜리 메모를 보냈다. 북한이 영화에 대해 불만을 내놓기 훨씬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린턴과 몇 차례 대화를 주고 받았다. 베넷은 린턴에게 북한에 대해 조언을 제공했다. 북한의 위협은 말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고, 크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내용이었다.

베넷의 메모에는 북한 측이 소니 컴퓨터 시스템을 뒤져 볼 수도 있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베넷은 “북한이 영화에 대해 아직 알지 못한다고 해도, 일단 알고 나면 소니 컴퓨터 시스템을 뒤져서라도 소니가 북한으로부터의 비판에 대비했는지 확인할 가능성이 있다”고 메모에 정리해 두었다(유출된 문서 중에선 이 메모를 확인할 수 없었다. 베넷이 포춘에 해당 메모를 읽어주었다).

베넷은 이후 계속된 대화를 거치면서 자신이 한 발 더 나갔다고 주장했다. 그는 린턴에게 김정은 정권이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해커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과 다크서울 사건에 대해 설명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사건이 터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조언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로슨은 이를 부정했다. “만약 (린턴이)경고 같은 것을 받았다면, 사이버 전문가에게 문의하기 위해 전화를 했을 것이다… 베넷과 여러 번 통화했지만, 그는 한 번도 스튜디오를 겨냥한 사이버공격을 언급한 적이 없었다…”

로겐과 골드버그의 대변인 맷 라보프 Matt Labov에 따르면, 두 단짝에게 사이버공격의 가능성에 대해 경고한 사람은 있었다. 영화를 촬영하기 훨씬 전에 둘은 워싱턴에 본사를 둔 맥라티 Mclarty의 리치 클레인 Rich Klein에게 조언을 구했다(워싱턴에 본사를 둔 컨설팅업체 맥라티는 할리우드 관계자들에게 복잡한 지정학적 문제에 관한 조언을 해주고 있다).

클레인은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직접 대본을 읽어본 후, 북한이 사이버공격 형태의 ’반격‘을 취할 수도 있다는 걸 지적했다”고 설명했다. 은행과 이메일 비밀번호를 변경하고 인터넷 계정을 잘 관리하라고 알려줬을 뿐만 아니라 사이버보안전문가도 소개해줬다고 덧붙였다.

클레인은 북한이 스튜디오를 겨냥한 사이버공격을 통해 영화의 개봉을 막을 가능성이 있음을 우려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라보프에 따르면, 로겐과 골드버그는 이런 부분을 소니 경영진에 전달했다. 클레인은 “스튜디오와 제작자를 포함해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사이버공격에 있어 매우 호전적이다… 더 분명하게 경각심을 갖고 주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소니 대변인은 로겐과 골드버그에게도 경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메일 내용을 확인해보면, 소니가 심혈을 기울인 건 네트워크 보안을 더 탄탄하게 다지는 일이 아니었다. 그보단 어떻게 하든 북한의 심기를 덜 건드리는 데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소니의 모습은 할리우드 코미디와 유사하다. 한 정권의 실제 지도자가 끔찍하게 사망하는 영화를 제작하고, 이를 개봉하려 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영화 속 벽화에 나오는 김정은 일가 이미지와 등장인물의 재킷 핀을 디지털방식으로 바꾸는 데만 55만 달러를 썼다. 소니 웹사이트는 영화와 관련된 마케팅 내용을 삭제했고, 스튜디오에서는 영화가 ‘현 상황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없는 가상 코미디’라는 내용의 발표문을 준비했다.

8월 초, 파스칼은 가족과 함께 아시아로 긴 휴가를 떠났다. 린턴은 마서즈 비니어드로 피신했다. 이 시기에 둘은 영화 개봉을 크리스마스 때까지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다른 문제를 해결할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었다. 스튜디오 책임자들은 히라이의 지시에 따라 3개월 간의 전쟁을 시작했다. 제작자들과 영화의 유혈장면을 부드럽게 바꾸는 작업이었다(원래는 탱크가 김정은의 헬리콥터에 공격을 쏟아 붓고, 화염 속에서 김정은의 머리가 터지고 사지가 떨어져나가는 장면이 있었다). 그때 할리우드 리포터 The Hollywood Reporter가 이런 분위기를 감지했고, 소니 픽처스의 PR 책임자 장 게랭Jean Guerin이 파스칼을 비롯한 경영진에게 이메일로 이 사실을 알렸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대기업 소니가 주요 장면의 수정을 요구했고, 그 중에는 마지막 장면에서 김정은의 얼굴이 녹아 내리는 장면을 제거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는 기사를 준비 중이었다. 스튜디오 측은 그와 같은 수정 결정에 외부 압력이 있었던건 아니라고 부인했다. 게랭은 경영진에게 “기자의 추측을 부인하고 있으며, 기사화하지 않는 조건으로 그것이 통상적인 영화제작 과정의 일부라는 점을 이해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8월 13일 보도된 기사에는 소니가 북한을 달래기 위해 영화를 수정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로겐은 분노했다. 자신이 변절자로 그려졌다고 생각했다. 경영진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상회의를 소집했다. 회의 참석을 통보 받은 린턴은 마서즈 비니어드에서 저녁식사 중이어서 참석할 수 없다며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사이에 앉아 있다…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면, 우리가 이야기를 나눌 때까진 보류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히라이와 린턴은 영화가 재미있다기보단 위험요소가 많다고 생각했고, ‘머리가 터지는 장면’을 완전히 삭제하고 싶어했다. 린턴은 한 이메일에서 ‘이 부분은 적당히 바꿔서 해결할 수 있는 장면이 아니라며 ‘얼굴이 녹아 내리는 장면을 원치 않으며, 사실 그가 죽는 장면도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썼다. 하지만 로겐은 자신이 ‘최고’라고 부른 장면을 변경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영화 편집의 최종결정권은 소니에게 있었다. 하지만 인터뷰와 유출된 이메일에 따르면, 스튜디오는 회사 측의 입장을 밀어붙일 경우 벌어질 후환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로겐이 자신과 영화의 관계성을 부인해버리면 박스오피스와 PR 측면에서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로겐은 파스칼에게 ‘이 영화는 원래부터 논란이 예상되는 작품이었다’고 이메일을 보냈다. ‘에이미 당신이 우리에게 말한 것이었다.

조롱하려는 바로 그 사람들을 달래기 위해 영화 내용을 수정하면 논란거리가 생길 리 없다.’(로겐은 메시지를 통해 당시 베트남과 발리에서 휴가 중이던 파스칼을 비난했고, ‘인간적으로 가능한 빨리’ 얘기를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파스칼은 한 동료에게 ‘나 정글에서 실종될 수 없을까?’라는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9월 25일,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온 파스칼은 유대교 신년휴일을 맞아 유대교 사원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로겐에게 장면을 ‘조금만 덜 잔인하게’ 바꾸자고 개인적으로 부탁했다. 그녀는 ‘ 나보다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은 없다’ 며 ‘지금 상대하고 있는 사람은 무시할 만한 인물이 아니라 소니 전체를 대표하는 회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만큼 직접 개입해 문제를 해결해주려는 지인이나 영화제작자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당신이 알아줬으면 한다’고 썼다.

결국 로겐은 한 발 물러섰다. 그는 김정은의 ‘불타는 머리카락을 50% 줄이고’, ‘타버린 얼굴 조각 4개 중 3개’를 제거하고, ‘머리 쪽 색상을 덜 끔찍해 보이도록’ 수정한다는 데 동의했다. 9월 28일, 새로운 버전을 확인한 히라이는 이메일로 성공을 기원했다(그는 해당 장면이 해외 개봉 시에는 모두 삭제될 수도 있음을 이해해 달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영화의 개봉과 홍보 계획이 다시 추진되었다. 파스칼은 히라이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당신이 어떤 결정을 하든 당신과 소니를 위해 일하는 것이 즐겁다. 스튜디오와 나에게 이것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다. 당신이 놀라운 리더이자 멋진 상관이라는 점에 감사한다. 감사와 헌신을 담아. 에이미’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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