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속 두 남녀의 애틋한 감정과 서정적인 영상은 무대 위에 어떻게 그려질까. 연극 '만추'는 개막 전부터 원작의 명성만으로도 큰 화제를 모았다. 만추는 1966년 개봉한 고(故) 이만희 감독의 작품으로, 살인죄로 복역 중인 여자 애나가 어머니의 부고로 3일간 외출을 나왔다가 우연히 만난 남자 훈과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에서 7번이나 리메이크될 만큼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으며, 이번 연극은 2011년 김태용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탕웨이·현빈이 주연한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이만희 감독의 작품은 원작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


연극은 영화 속 분위기를 '성실하게' 무대 위에 담아낸다. 서정적인 영상미를 만들었던 스크린 속 브라운 톤의 메마른 색감과 그 위에 내려앉은 회색빛 안개는 조명과 스모그로 표현했다. 세트도 철골구조를 이용해 쓸쓸하고 전반적으로 가라앉은 감성을 그려냈다.

아쉬운 점은 '옮겨 담기' 이상의, 연극만의 '새 맛'이 없다는 점이다. 원작은 각자 상처를 지닌 두 남녀가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이야기를 침묵과 여운으로 완성했다. 반면 연극은 '공연 장르'만이 할 수 있는 새로움보다는 영화의 대사와 분위기를 따라가는 데 급급해 보인다. 다양한 장면 연출이 가능한 영화에선 정적이 애틋한 감정을 빚어내는 미덕이었지만, 편집 없는 무대 공연에서 이렇다 할 장치 없이 이어지는 침묵은 이따금 지루하게 다가온다. 영화 속 주요 에피소드를 모두 풀어내려다 보니 배우들은 2층으로 나뉜 무대를 수시로 오르락 내리락하고 장면 전환을 위한 잦은 암전과 소품 이동에 몰입은 이내 깨진다.

기본 스토리와 배우의 열연만 놓고 보면 만추는 분명 평균 이상의 작품일 수 있다. 그러나 잔향 짙은 원작을 고려하면 무대만의 새로운 시도와 연출은 내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11월 8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

/송주희기자 sso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