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이 우여곡절 끝에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한 합의문을 마련했다. 1년 넘게 논의했던 목적은 경직된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노동시장의 질서를 공정하게 형성해 안정성을 도모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기간제·파견제, 통상해고 및 취업규칙 불이익 등 쟁점 주제들은 쉽게 타협안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대로 추후 결정하기로 합의됐다.
임금피크제,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규제 완화, 해고규제의 완화, 통상임금 법제화 등 쟁점 사안은 노동시장의 모순된 가치인 고용안정과 고용 유연화를 하나로 합쳐 유연 안정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의 문제이다. 노동계는 고용안정을 도모하고 근로조건의 개선을 관철시키려 했고 경영계는 고용과 근로조건의 유연화를 고수했다. 그 결과 타결점이 안보였고 노사정은 쟁점 사안에 대해서는 추후에 논의하는 선에서 봉합했다.
앞으로 국회 입법 과정과 정부 지침을 만드는 동안에도 노사가 계속 자기 이익만을 관철시키려 하면 노동개혁은 이뤄질 수 없다. 해결책은 서로 양보해야 나온다. 노동계가 고용안정을 취하고자 한다면 근로조건 개선을 양보해야 할 것이고 근로조건의 개선을 목표로 한다면 고용안정은 양보해야 할 것이다. 사정은 경영계도 마찬가지다. 고용의 유연화를 취하고자 한다면 근로조건의 유연화는 포기해야 할 것이고 근로조건 유연화를 도모하고자 한다면 고용의 유연화는 포기해야 할 것이다. 양보와 타협 없이 자기 이익만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것은 어느 누가 죽어야 하는 치킨게임을 하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결국 노동개혁을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경제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지속적 성장을 멈추게 해 결국은 한국 경제의 침몰을 가져올 우려마저 들게 한다.
고용 유연화를 우선할지 근로조건 개선을 우선할지에 대해서는 노사정의 선택에 달려 있다. 다만 선진국의 경험을 보면 고용 유연화를 선택하는 대신 근로조건 개선을 강화하는 경향이었다는 것을 우리 노사정은 명심해야 한다. 독일과 일본 등은 기간제와 파견근로에 대한 제한을 철폐하면서 기간제 근로자와 파견근로자의 근로조건은 정규직 근로자와 동등하게 했다. 해고에 대한 규제도 마찬가지다. 해고보호를 강화해 고용안정을 도모하는 경우에도 변경해약고지제도와 통상해고의 사유를 명시하고 있다. 해고 제한규정이 절대적인 일자리 보장 규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근로조건 변경을 가능하게 하거나 근로자 측의 사유로 인한 해고의 길을 열어두고 있다. 유연 안정화의 적절한 예로 볼 수 있다.
물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고용안정을 도모하면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격차를 가져오는 이중적 노동시장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비현실적이고 타협의 여지를 없애버리는 주장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자고 하는 것은 고용안정도 도모하면서 근로조건도 정규직 수준으로 유지하자는 말이다. 비정규직 발생은 경제의 세계화로 인한 무한경쟁 속에서 기업이 생존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전 세계 모든 기업이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만 조건 없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받아들이라고 주장할지라도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노사정은 노동개혁 입법 및 지침 마련과정에서 우리나라 노동시장에 대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지적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 노동시장의 왜곡이나 경직성이 정규직의 과보호에서 기인하고 있고 그 해결책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아니라 정규직 과보호 완화에 있다고 했던 것을….
김영문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