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은행원 입니다. 30대 중반 남성이고 창구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오늘도 7시 반까지 출근을 합니다. 출근하자마자 회의를 하고, 오늘 처리해야 할 서류를 검토합니다.
벌써 9시네요. 고객들이 줄줄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대기하는 고객이 워낙 많아 개별 서류 처리는 꿈도 못 꾸고 다음 손님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점심시간이네요. 자리를 다 비울 수가 없어 두, 세 명씩 쪼개서 점심을 먹어요. 허겁지겁 점심을 마치고 업무에 열중하다 보니 어느덧 오후 4시.
대기하던 고객들의 업무를 다 처리하고 정리하다 보면 대략 5시경.
진짜 본격적인 업무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오늘 들어온 돈과 나간 돈을 맞춰보는 일이예요.
전산 상 숫자와 현금을 맞추고 전체를 취합해 다시 맞춥니다. 돈이 안 맞을 경우 이 작업은 수차례 반복됩니다.
이 업무가 끝나면 대출 심사가 시작됩니다. 다음날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이나 예·적금과 관련해 고객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 해야 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할 고객한테는 마케팅 차원에서 전화도 돌립니다.
일이 마무리되고 시계를 보니 9시가 다 돼가네요. 대출 심사 건이 많거나 월말에 고객이 많이 몰리는 경우, 실적 회의가 있는 날은 10~11시까지 근무하는 일도 허다합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가는 길에 본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은행원 4시 마감 발언’ 뉴스.
세계경제포럼(WEF) 평가 결과 한국의 금융 경쟁력이 세계 87위로 우간다(81위)보다 못하다는 발표 때문인 것 같은데요.
그런데 선진국들을 보더라도 오후 4시에 문을 닫아 금융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는 말이 안되죠. 미국은 대체적으로 4~5시고, 일본은 오후 3시로 우리보다 짧아요. 영국, 독일 등 유럽은 3~6시에 영업을 마칩니다.
전문가들은 관치, 낙하산 인사를 금융 경쟁력 저하의 한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금융개혁의 핵심은 관치의 금융문화와 왜곡된 소유구조를 바로잡는 데 있다는 거죠.
은행 업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이 금융개혁을 하겠다는 금융당국. 국민들이 은행보다 금융당국을 더 불신하고 있는 현실을 정말 모르는 걸까요. /윤홍우·정수현·이종호기자 seoulbird@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