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포커스] 국민연금 기금운용 갈등, 해법은

이대론 '연금 인사파동' 언제든 재발
중단됐던 지배구조 재편 서둘러야
별도 '운용공사화' 독립 등 이번 기회에 전면 손질 필요



500조 기금운용 주도권이 핵심… 책임·권한 명확히 교통정리해야

국회제출 기금운용본부 관련 주요 법안

내년 총선 앞두고 국회서 논의중단 상태

'공사화보다 전문성 제고가 우선' 주장도

해외 주요국은 조직·기금운용 철저 분리


"기금운용과 관련한 현 지배구조를 손질하지 않으면 인사 파동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습니다." (이준행 서울여대 교수)


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의 임기연장 문제를 놓고 정부와 충돌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이번 기회에 기금운용본부의 지배구조 재편작업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번 사태가 표면적으로는 중앙정부와 산하기관장의 충돌이지만 그 이면에는 500조원이 넘는 국민연금기금 운용의 주도권을 누가 갖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용역을 받은 국책연구기관이 지난 7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공사화 방안을 제시하고 정치권에서도 관련 논의가 한동안 활발하게 진행됐지만 총선이 다가오면서 이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다.

15일 국민연금과 정치권에 따르면 이번 인사 파동을 계기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국민연금공단에서 분리해 투자를 전담하는 별도의 기금운용공사로 독립시켜야 한다는 방안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이번 사태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의 기금운용본부에 대한 인사권과 기금운용본부장의 결정권한이 부딪혀 발생한 만큼 이 권한을 명확하게 구분해주지 않으면 앞으로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 기금운용본부장 간 '반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국민연금 지배구조상 공단 이사장과 기금운용본부장의 책임과 역할이 불분명한데다 기금운용본부장의 인사권을 이사장이 쥐고 있는 탓에 기금운용의 큰 갈래는 사실상 이사장의 영향권 아래에 놓여 있다. 전광우 전 이사장 시절이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위원장을 지내며 국내외 폭넓은 인맥을 확보한 전 전 이사장은 기금운용을 주도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출신의 한 관계자는 "이찬우 전 기금운용본부장이 아닌 전 전 이사장이 구체적인 투자 지시까지 내리며 기금운용을 사실상 진두지휘했다"며 "이 전 본부장의 성향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 수장이 별 마찰 없이 동거를 했다"고 전했다.



우리은행장을 지낸 금융권 출신의 박해춘 전 이사장 역시 기금운용에 종종 관여하면서 김선정 당시 본부장과 갈등을 겪은 바 있다. 박 전 이사장은 취임 직후 "기금의 40%까지 주식에 투자하겠다"는 발언 등으로 인해 '월권'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조성일 중앙대 교수는 "정치권이 기금운용본부의 공사화를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가 최근 불거진 공단 이사장과 기금운용본부장 간 갈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것도 있다"면서 "현재의 지배구조에서는 이사장의 개인 성향에 따라 국민의 노후자금인 기금운용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어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7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용역 발표를 통해 기금운용본부의 공사화 계획을 밝혔지만 이후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는 상황이다. 복지부는 당시 △기금운용본부 공사화 △기금운용위원회 상설기구화 △국민연금심의위원회 격상 등을 핵심으로 한 개편안을 제시했다. 이후 여당에서도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인 정희수 의원과 박윤옥 의원이 관련 내용을 담은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잇따라 발의했다. 현재 국회에는 국민연금의 독립성 강화를 골자로 한 법안 5개가 제출돼 있다. 정희수·김재원·박윤옥 새누리당 의원이 제출한 개정안은 모두 기금운용본부를 별도 공사로 설립해 운용의 전문성 및 독립성을 강화하는 쪽이다. 우선 김 의원 안은 기금운용본부를 완전히 독립시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정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김 의원 안에서 한발 더 나아가 분리한 기금운용공사를 복지부 산하가 아닌 총리실 산하에 두는 것을 골자로 한다. 박 의원 개정안은 기금운용본부를 공사화하는 동시에 신설 공사의 본사 소재지를 전주로 명시한 점이 특징이다. 하지만 정부안 발표 이후 달아올랐던 기금운용공사 설립 이슈는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민감한 문제를 다루지 않겠다는 정치권의 암묵적 합의 때문에 관련 논의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전문가들은 해외의 주요 연기금이 대부분 보험금 징수와 연금 수령을 담당하는 조직과 기금운용 조직을 철저히 분리, 운영하는 것을 참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캐나다국민연금(CPP)은 1998년 연금개혁을 통해 CPP와 별도로 독립성이 강한 특수법인인 캐나다연금투자이사회(CPPIB)를 설립했다.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는 민간 금융전문가 12인으로 구성돼 있다. 민간 부문에서 고용된 경영진을 감독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네덜란드 공적연금(ABP)은 2008년 기금의 독립·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자회사 APG를 설립했다. ABP의 자산운용과 마케팅 업무를 APG로 이전하고 장기 아웃소싱 계약을 체결해 감독과 행정관리 업무를 분리시켰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캘퍼스)도 1992년 캘리포니아 주의회가 법률을 개정해 캘퍼스 이사회에 기금 투자와 경영에 대한 독립적이고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했다. 스웨덴 국민연금(AP)은 기금을 6개의 독립된 펀드로 구분해 관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조 교수는 "해외 주요 연기금들과 달리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인사와 예산권을 공단 이사장이 쥐고 있다 보니 이 때문에 최고투자책임자(CIO)가 운용에 전적으로 매진할 수 없는 구조"라면서 "공단 이사장의 인사권으로 인해 개별 운용역, 그리고 개별 투자 건 등 운용에 영향을 미치는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공사화보다는 현 체제에서 기금운용의 전문성을 더욱 높이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김성주·이상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발의한 국민연금 기금운용체계 개선안은 모두 기금운용본부를 현재처럼 공단 내 조직으로 유지하면서 위상을 강화하는 쪽이다. 우선 김 의원 안은 공단 내 부이사장을 선임해 기금을 총괄하는 기금이사를 현재 1명에서 2명으로 늘리는 동시에 기금운용위원회에 가입자 대표, 여성단체 대표, 공익 대표를 추가해 대표성을 높이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의원 개정안 역시 기금운용본부 조직은 그대로 두되 기금운용위원회의 전문성 및 대표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이준행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독립을 하는 게 가장 깔끔하기는 한데 그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보니 현재의 틀 내에서 개선책을 강구해야 한다"면서 "현재 이사장이 쥐고 있는 인사·예산권을 CIO에게 넘기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서민우·박준석기자 ingaghi@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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