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통해 세상읽기] 무욕속 무견소리

국민 관심 큰 새 역사교과서 집필 서둘러 결정할 가벼운 사안 아냐
모든 주장 자유롭게 토론·논의… 더디더라도 공통분모 찾아가야


요즘 연일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 문제로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정부와 여당, 그리고 야당과 시민단체는 각자 자신들의 입장을 강화시키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교과서 문제라면 주로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서 벌어졌다. 일본의 역사교과서에서 우리나라를 왜곡 기술해 우리나라가 그 사실에 항의를 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이제까지는 국가와 국가 사이에 교과서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는데 지금은 우리나라 안에서 사회적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다.

여기서 기존 교과서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새로운 교과서의 집필을 촉구하는 사회적 논의의 방식에 깊이 생각해볼 만하다. 기존에 문제시되지 않았던 사항에 대해 정부와 정당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이의가 있다"며 사회적 논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보장된 권리이기도 하고 상식이기도 하다. 특히 교과서처럼 전 국민이 관심을 가질 사안이라면 자신의 입장을 대표할 만한 단체 또는 관련자들이 참여해 토론하는 공청회가 필요하다. 공청회에서 새로운 교과서 집필과 관련된 모든 주장이 자유롭게 논의되면서 점점 공통의 분모를 찾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 한쪽의 주장만이 일방적으로 관철된다면 상대방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이렇게 토론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설사 결론이 난다 하더라도 그 결론은 오래갈 수가 없다. 교육정책과 방향은 자주 바뀌는 것보다 한 번 정해지면 안정적으로 추진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교육을 두고 백년의 대계라고 말하는 것이다.

'논어'를 보면 공자는 목표에 이르려고 서두르다 오히려 중도에서 그치게 된다는 교훈을 말하고 있다. 제자 자하(子夏)가 거부(거父)라는 지역의 수령이 됐다. 그는 임지의 부임에 앞서 공자를 찾아서 정치하는 방법을 물었다. 공자는 자하의 질문을 받고서 두 가지 사항을 들려줬다. "무슨 일이든 빨리 하려 하지 말고 작은 이익을 밝히지 마라(무욕속·無欲速, 무견소리·無見小利)." 이렇게 말을 마친 뒤에 공자는 그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다시 말을 이었다. "빨리 가려고 하면 오히려 목표에 이르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밝히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욕속즉부달·欲速則不達, 견소리즉대사불성·見小利則大事不成 )."

무슨 일이든 서두르다 보면 챙길 것을 놓치기 마련이다.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도 일어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중간에 생긴 일을 처리하느라 정작 원래 해야 할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기이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손해를 보지 않고 이익을 거두려고 한다. 작은 이익을 끝까지 챙기려고 하다 보면 함께 일하는 사람이 같이 일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주위에 함께 일하려는 사람이 없어지니 정작 큰일을 할 때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 공자는 자하가 수령이 돼 서두르고 작은 이익을 밝히다가 위정자의 도리를 잊어버릴까 걱정했던 것이다.

교과서 문제는 서둘러 뚝딱 결정을 내릴 사안이 결코 아니다. 설사 시간이 걸린다고 하더라도 입장이 같은 사람이 모여 자신들의 입장을 외칠 것이 아니라 입장이 다른 사람이 모여서 상대의 주장을 듣고 자신의 주장을 합리적으로 펼쳐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누구의 주장이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지 가려질 수 있다. 이렇게 느리게 가는 것이 오히려 더 빨리 갈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반대 소리를 막고 자기 소리만을 외친다면 공자의 말처럼 빨리 가려다가 목표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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