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의 과거 회계처리 잘못으로 인해 투자자가 집단소송 움직임을 보이는 등 큰 파장이 일어났다. 감독당국도 수주산업 회계처리 건전화를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하면서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기업의 과거 몇 년 동안의 실적과 재무상황을 관찰해보면 동종업계의 다른 기업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금융당국에서 이러한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인지 궁금증이 든다.
과거 수많은 분식회계 사건에 대한 국내 금융당국의 대응은 해당 기업에 대한 조사 이후 감사인에 대한 감리로 이어졌다. 기업의 분식회계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대표이사 등에 대한 처벌이 이뤄져야 하겠지만 사실 대부분 이미 퇴직했거나 잠적한 상태여서 처벌의 실효성이 크지 않다. 오로지 처벌의 매는 감사인이 맞도록 돼 있다.
선진국에서 기업의 회계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금융당국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일차적인 책임을 부여한다. 기업의 감시기구인 이사회나 감사위원회가 자체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재무제표를 다시 작성한 후 외부감사인의 회계감사를 받도록 해 시장에 이를 공표하도록 하는 것이다. 거래소는 사업보고서 제출 기한을 연장해주면서 감사인이 신뢰할 만한 재무제표를 기업이 작성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조치가 이뤄지고 난 후에 회계 문제를 일으켰던 기존 경영자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강한 처벌을 부과하게 된다. 감사인에 대해서는 품질관리 및 개별감사업무에 대한 감리 결과를 시장에 알린다. 기업이 직접 품질이 좋은 감사인을 선임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물론 회계부정으로 인한 시장의 피해를 보상할 책임은 소송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
회계감독은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에 근거를 두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기업은 외부감사를 통해 올바른 회계처리를 유도함으로써 투자자를 보호하도록 돼 있다. 건전한 회계처리를 해야 할 주체인 기업과 경영진의 책임의식보다는 감사인에 대한 조치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 법은 감사인을 정조준하고 있기 때문에 경영자의 높은 책임의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경제발전 시기에 기업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사회적 비용의 최소화를 위해 감사인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유용했던 시기가 있다. 그러나 현재는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가 성장과 성숙을 이뤘는데도 회계 분야만 전 세계에서 최하위권의 투명도와 신뢰도를 나타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