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잠잠하니 미국이 사고를 치네요. 아주 사고뭉치에요."
예상보다 너무 가파른 원화강세 흐름에 외환시장 관계자들이 당황하고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늦춰지면서 어느 정도의 원화절상을 예상하기는 했지만 속도가 너무 빨라서다. 지난주 말 원·달러 환율은 1원10전 내린 1,129원10전으로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 1,120원대 진입한 것은 지난 7월6일 이후 3개월여 만이다. 이 추세라면 원·달러 환율이 1,100원까지 내려가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최근 원화강세에는 확실히 속도가 붙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16~17일 미국 연방시장공개위원회(FOMC) 회의 전까지만 해도 1,200원까지 갔다. 하지만 금리인상이 연기된 후 9월25일 1,194원70전에서 지난 16일 1,129원10전까지 3주 만에 무려 65원60전 급락했다. 원화가치의 1개월 상승률은 4.9%로 주요20개국(G20) 통화 가운데 네 번째로 높다. 러시아 루블화가 9.6% 절상됐고 이어 인도네시아 루피아 6.2%, 터키 리라 5.8% 등의 순이다.
지난달 중국 등 신흥국 경제불안이 외환시장 변동성을 높였다면 최근 외환시장 변동성의 주범은 단연 미국이다. 미국이 발표하는 경제지표가 시장 기대에 못 미칠 때마다 올해 기준금리 인상이 어렵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이는 달러약세로 이어지고 있다. 이달 11일 스탠리 피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부의장의 "연내 금리인상은 예상일 뿐 약속이 아니다"라는 발언은 하루 만에 원·달러 환율을 15원50전이나 떨어뜨리는 등 달러투매 분위기를 연출했다.
외환딜러들이 더 의아해하는 것은 가파른 원화절상에도 불구 외환당국의 움직임이 별로 감지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일단 1,130원선에서 주춤거리고 있지만 과거 당국이 '쏠림현상'을 경고했던 강도 높은 개입 방식을 떠올리면 한결 여유롭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외환당국이 스무딩 오퍼레이션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도 별 움직임이 없었다"며 "당국 입장에서는 원화강세가 더 이어질 텐데 굳이 지금 나서서 비싸게 달러를 받아줄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바람에 수출업체들은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여름 이후 달러강세에 베팅한 외환딜러들은 적지 않은 손실을 입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15일 금통위 기자간담회에서 "일시적 환율절상은 수출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며 최근 원화절상에 대해 상당히 단호한 표현을 썼다. 미 금리인상에 따른 달러강세를 예상하고 달러를 사 모았던 투자자 입장에서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손실에 다급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국의 참을성이 얼마나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비실대는 수출 때문이다. 정부가 내수를 떠받치고 있지만 수출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부진이 예상된다. 이 상황에서 환율이 수출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선성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 등 선진국의 연말 쇼핑물량 수출에 따라 경상흑자가 확대하면 오는 11월까지는 원·달러 하락 압력이 이어질 것"이라며 "다만 12월 FOMC가 다가오면서 원·달러 환율도 다시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연선기자 bluedash@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