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가 8기통 엔진을 장착한 새 모델 ‘488 GTB’를 국내 출시했다. 지난 7월 페라리 국내 공식 수입사 FMK는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세빛섬에서 488 GTB를 선보였다. 이날 488 GTB 출시를 기념하기 위해 페라리 극동지역 총괄 지사장 디터 넥텔(Dieter Knechtel)이 한국을 처음으로 찾았다. 그는 한국 시장의 성장성이 크다며 투자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세빛섬에 붉은색 페라리 깃발이 나부꼈다. 어두운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자 납작하게 엎드린 차량 한대가 얼핏 보였다. 차량 주위로 짙은 연기가 깔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녀석이 눈에서 퍼런 불빛을 쏟아냈다. 번쩍거리는 조명이 켜지자 이번엔 귓청을 때리는 배기음을 토해냈다. 서서히 연기가 사라졌다. 드디어 강렬한 붉은색으로 치장한 페라리 488 GTB가 모습을 드러냈다.
화려한 신고식을 마친 뒤 페라리 극동지역 총괄지사장 디터 넥텔과 만났다. 디터 넥텔 지사장은 이날 선보인 488 GTB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488 GTB가 지난해 국내에 선보인 캘리포니아 T에 이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디터 넥텔지사장은 말한다. “지난해 한국 수입차 시장은 19만대 규모로 커졌습니다. 슈퍼카 판매량 역시 상승세를 타고 있어요. 페라리 역시 지난해 캘리포니아 T 모델로 시장을 탄탄히 구축한 만큼, 이번 488 GTB도 한국시장의 잠재력을 활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페라리 공식수입사 FMK는 지난 5월 한국 고객 초청 행사에서 488GTB 40대를 사전 주문 받았다. 현재 주문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디터 넥텔은 488 GTB의 판매 목표량에 대해 언급을 회피했다. 판매 목표량을 밝히지 않는 것이 페라리 본사의 방침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다만 지난해 이룬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는 데다 488 GTB가 8기통 모델인 만큼 새로운 고객까지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원래 페라리 브랜드를 상징하는 건 자연흡기 12기통 엔진이다. 그런데 페라리는 지난해 캘리포니아 T에 이어 이번에도 8기통 엔진을 탑재한 미드십(엔진이 운전석 뒤쪽에 위치하는 차량) 모델 488 GTB를 내놓았다.
한국에서 페라리 고객층은 람보르기니 고객들보다 연령대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디터 넥텔은 말한다. “유럽에서도 페라리 고객 연령대가 높아지고 있어요. 때문에 우리는 젊은 층을 공략하는 방법에 대해 계속 연구하고 있습니다. 한국 같은 경우에는 작년 캘리포니아T 모델 출시로 새로운 젊은 고객층들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죠. 페라리 브랜드를 접할 수 있는 엔트리 모델로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488 GTB 역시 8기통 모델로 상대적으로 젊은 고객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페라리는 연간 글로벌 판매량을 약 7,000대 수준으로 조정하고 있다. FMK는 지난해 페라리 국내 판매량이 100대를 크게 웃돌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고 귀띔했다. 슈퍼카 브랜드로는 이례적인 판매량이다. 디터 넥텔 지사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한국 시장에 대해 언급했다. “제가 담당하고 있는 극동 지역에서 한국 시장은 일본, 호주에 이어 3번째 규모입니다. 중국은 별도법인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페라리에 대한 한국 고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앞으로 상당한 성장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는 단순히 판매 대수를 늘리는 게 페라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디터 넥텔 지사장은 말한다. “전체 판매량을 관리하는 건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시장이 성장한다고 해서 판매대수를 늘리지는 않아요. 페라리는 판매 대수를 늘리는 걸 비즈니스 1순위에 두지 않고 있습니다.” 일종의 희소성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고객들에게 전반적인 오너십 경험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3월 페라리 공식 수입사인 FMK는 큰 변화를 맞았다. 벤츠(더클래스 효성), 토요타( 효성 토요타), 렉서스(더 프리미엄 효성) 등 수입차 딜러사를 계열사로 보유하고 있는 효성그룹이 FMK 지분 100%를 인수한 것이다. 현재 FMK는 기존 경영진인 이건훈 대표와 효성 출신 김광철 대표가 각자대표로 공동 경영을 하고 있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삼남인 조현상 효성 부사장도 FMK 사내이사를 맡고 있다. 효성인수 후 한국에서의 페라리 판매·마케팅 전략이 달라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디터 넥텔은 말한다. “저희에겐 큰 장점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경험과 열정을 가지고 있는 기존 FMK팀과, 강력한 지원 의지를 가지고 있는 효성의 도움을 모두 받을 수 있어서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고객 행사들을 효성과 함께 만들어서 운영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어요. 딜러 네트워크도 훨씬 좋아질 것 같습니다.”
그는 국내시장 공략 강화를 위한 고객 서비스 확대도 약속했다. 당장 차량을 한대 더 파는 것보다 페라리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앞으로 FMK는 전문 드라이버가 아닌 일반 고객들이 트랙 전용 페라리 모델을 테스트하고 연구개발에 참여하는 ‘XX프로그램’을 운영할 방침이다. 현재 FMK는 고객들의 운전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는 드라이빙 스쿨을 운영 중이다. 앞으로는 레이싱 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는 과정과 서킷 레이스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페라리 각 모델들에 대한 성능 테스트는 물론, F1에서 실제 사용했던 모델을 구매할 수 있는 방안까지 고민하고 있다. FMK는 현재 마세라티와 함께 사용하고 있는 서울 성수동 서비스 센터를 분리해 독자적으로 운영할 방침이다. 마세라티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으로 서비스센터를 이전하면 기존 성수동 센터는 페라리만이 사용하게 된다. 디터 넥텔 지사장은 말한다. “익스클루시브 서비스 센터를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한국 시장에서 애프터마켓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한 첫 단계죠. 애프터서비스가 판매보다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거기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페라리 단독 서비스 센터는 페라리가 한국 시장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걸 증명하고 있어요.”
그는 페라리가 다른 슈퍼카 브랜드들과 차별화된 점으로 페라리만의 철학과 페라리 운전자들간의 유대관계를 꼽았다. “우리 고객은 열정과 꿈을 가지고 페라리의 성능과 가치를 이해하는 분들입니다. 페라리를 좋아하는 분들이 운전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많은 기회를 제공하려 해요. 488 GTB를 통해 페라리가 한국에서 새로운 도약을 하길 기대합니다.”
페라리 최초 터보엔진 장착 8기통 미드십 슈퍼카 488 GTB는 페라리가 내놓은 새 모델이다. 지난 3월 ‘2015 제네바모터쇼’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488 GTB는 40년 전 탄생한 ‘308 GTB’모델에서 시작한 미드십 8기통 페라리의 계보를 잇는 직계 후손이다.
488 GTB는 페라리 모델 최초로 자연흡기가 아닌 터보 엔진을 장착했다는 점에서 페라리 역사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488 GTB는 새로 개발한 3,902cc V8 터보엔진과 7단 F1 듀얼 클러치 기어를 조합해 최고 출력 670마력(8,000rpm)과 최대 토크 77.5kg·m(3,000rpm)의 동력 성능을 발휘한다. 일반적으로 터보엔진은 가속페달을 밟았을 때 스로틀 반응이 반 박자 늦는 ‘터보 랙’ 현상이 발생한다. 그러나 488 GTB는 새로 설계한 터보차저를 달아 반응이 즉각적이다. 최고 속도는 시속 330Km이며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걸리는 시간은 3초에 불과하다.
특히 488 GTB는 공기역학적 디자인으로 기존 458 모델보다 다운포스(달리는 차를 아래로 누르는 공기 힘)가 50% 향상됐다. 공기저항계수는 페라리 양산 모델 중 가장 낮은 1.67다. 시속 250Km로 주행할 경우, 총 다운포스는 325Kg에 달한다. 디터 넥텔 지사장은 기존 458모델 보다 주행이 더욱 쉬워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488 GTB는 기존 458모델보다 운전이 쉬워졌기 때문에 일반 운전자도 페라리 오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격은 기본모델 기준 3억4,000만 원대다. 주문생산 방식이기 때문에 색상과 휠 등 고객이 원하는 옵션에 따라 최종 가격은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