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업계의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

▶경영난을 겪고 있는 미국 패션계의 아이콘 갭 Gap, 제이 크루 J.Crew 및 애버크롬비 앤드 피치 Abercrombie & Fitch가 더 빠르고 저렴해진 패션 시장에 적응하기 위해 비즈니스 모델을 재정비하고 있다. 그럼에도 H&M 같은 패스트 패션업체들이 여전히 우위를 점할 것으로 보인다. By Phil Wahba◀


지난 12개월간, 미국의 의류 대표기업들은 분명 유행에 뒤처졌다. 영부인 미셸 오바마 Michelle Obama의 사랑을 받은 브랜드 제이 크루는 10억 달러 규모의 손실 처리를 했고, 에어로포스테일 Aeropostale의 시장 가치는 반토막이 났다. 앤 테일러 Ann Taylor는 모회사가 아세나 리테일 그룹 Ascena Reatil group에 매각되기 전 수십 개의 지점을 닫아야 했다. 전형적인 미국 브랜드 갭도 수년간 시장점유율 하락으로 타격을 입어 결국 북미 매장 중 약 4분의 1의 폐쇄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동화 속 요정의 도움을 받을 것 같은 이 의류업계에서, 일부 경영자들은 이제 요정의 가루-픽시 더스트 pixie dust-를 활용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픽시 7부 바지(Pixie Ankle Pant)를 출시한 것이다. 갭은 그중 하나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35달러짜리 바지를 출시했다. 기업 회생의 시금석으로 선보인 이 제품은 갭의 계열사 올드 네이비 Old Navy에서 판매됐다. 저렴하고, 어디에서나 어울리고, 대중적인 픽시 7부 바지는 미국 소매업체들이 수년간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방식이 가져다 준 혜택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패션업계가 살아남으려면 바로 이런 변화들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H&M 뉴욕 지점 모습. 빠르게 성장하는 이 스웨덴 의류업체는 현재 미국에 370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고, 올해 수십 개의 매장을 추가로 열 예정이다.

화려한 무늬에 신축성이 좋은 7부 바지의 가장 큰 특징은 바지를 생산하는 공급망에서 찾을 수 있다. 현재 미국 기업들은 상품을 출시하기까지 약 9개월이 소요된다. 스웨덴의 H&M, 스페인의 자라 Zara, 일본의 유니클로 Uniqlo 같은 ‘패스트 패션’ 업체들보다 두 배나 시간이 더 걸린다는 얘기다. 결과는? 갭을 비롯한 일반 의류 소매업체들이 상품을 내놓았을 땐 이미 한물간 패션으로 치부돼 재고를 헐값에 처리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올드 네이비의 픽시 7부바지는 더 새롭고 더 빠르고 더 유연한 제조업 모델의 결과물이다. 올드 네이비는 대량 생산 전 수요를 파악하기 위해 적은 물량만을 생산한다. 또 공급업체와 더 긴밀히 협력하고, 새로운 유행을 수용하고, 보유한 옷감을 활용한다. 이 전략은 지금까지 꽤 효과가 있었다. 올드 네이비는 긴 슬럼프를 거친 후, 지난 4년간 10억 달러 매출을 올리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갭은 이 시스템을 동명의 브랜드와 바나나 리퍼 블릭 Banana Republic에도 적용하고 있다. 애버크롬비 앤드 피치, 앤 테일러와 제이 크루도 유사한 방식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기호에 대처해 나가고 있다. 금융 서비스업체 코웬 앤드 코 Cowen & Co.의 소매부문 애널리스트 올리버 천 Oliver Chen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고객에게로 극적인 권력 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객들이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최신 유행을 접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올드 네이비의 수석 부사장 조디 브리커 Jodi Bricker도 “고객들은 대부분의 경우 시장보다 빠르게 움직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속도와 유연성은 미국 의류업계의 헤일 메리 패스 Hail Mary pass *역주: 미식축구 용어로, 낮은 가능성을 보고 마지막으로 던져보는 승부수의 일부에 불과하다. 업계는 이제 고객들을 40% 세일 이라는 달콤한 꿈에서 깨워야 한다. 미국 업체들은 초저가 패스트 패션업체들을 따라잡기 위해 할인이라는 ‘깊은 토끼 굴’ 속으로 내려와 버렸고, 로스 Ross나 티제이 맥스 T.J.Maxx처럼 새로운 할인 판매점도 운영했다. 또 할인을 제공하면서도 이윤을 남기려면, 의류의 질을 떨어뜨릴 수 밖에 없었다.

기업들은 이로 인해 타격을 입은 브랜드 이미지를 복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애버크롬비 앤드 피치는 제품에서 과감히 로고를 빼고 옷감의 질을 높였다. 바나나 리퍼블릭은 신축성이 향상된 제품과 다양한 꼬임 무늬의 스웨터를 출시하고 있다. 갭의 브랜드 담당자 제프 커완 Jeff Kirwan은 “제품 질 향상이 곧 브랜드 회생의 기반”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의류업체들이 어떤 조치를 취하든, 현재 수준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선 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위쪽 차트 참조). 유니클로는 4년 전만 해도 미국 내에 소수 매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이젠 42개 지역에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H&M의 미국 매장은 이제 갭 매장에서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위치해 있다.

현재 370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H&M은 올해에도 수십 개 매장을 추가로 열 계획이다. 반면 갭의 전 상품을 취급하는 매장은 곧 500개 정도만 남게 될 것이다. 한때 최고 2,000개에 달했던 매장 수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게 줄어든다는 얘기다. 가을엔 모든 기업들이 두려워하는 새 라이벌도 등장할 예정이다. 유럽을 휩쓴 아일랜드의 패스트 패션브랜드 프리마크 Primark가 그 주인공. 이 브랜드는 H&M도 두려움에 떨게 만들 정도로 저렴한 가격을 자랑한다. 게다가 프리마크는 여러 무늬의 크롭 팬츠를 12.41달러에 판매하고 있다.

▲시카고의 또 다른 경제학 학교

이 이야기는 금융분야 교육과 관련된 흔치 않은 미담이다. 110억 달러 규모의 아리엘 인베스트먼트 Ariel Investments 회장 존 로저스 John Rogers는 지난 1996년 시카고 남부 저소득층 지역에서 금융 교육에 초점을 맞춘 초등학교의 설립을 지원했다. 이 학교에선 각 학급이 투자 포트폴리오를 작성하고 주식을 매입하거나 매도한다. 학생들은 졸업할 때 약간의 이익배당을 받기도 한다.

지금까지 아리엘 커뮤니티 아카데미 Ariel Community Academy는 필자-10년 전 회의적인 시각으로 금융교육을 바라보고, 위 학교를 언급한 기사를 쓴 적이 있다-를 포함한 여러 회의론자들의 의심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해왔다. 현재 이 학교는 조기 금융교육의 장점을 보여준 성공한 사례 중 하나가 되어 있다. 8학년까지 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점수가 지속적으로 시 및 국가 평균을 상회하고 있다. 이들은 취업도 하고 있다. 로저스는 지난해 처음으로 아리엘 졸업생인 23세 마리오 게이지 Mario Gage를 마케팅부서에 고용했다. 게이지는 제2기 졸업생으로, 졸업 후 시카고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그의 동생 역시 아리엘 졸업생으로, 헤지 펀드에서 인턴으로 일을 했다.

로저스는 아리엘의 성공 선례를 따라 다른 기업들도 학교와 파트너십을 맺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는 “우리는 도심지역 일자리 창출에 일조해야 한다. 여기서 금융분야 교육은 큰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게이지 역시 이에 동의한다. 그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내게많은 가능성을 열어줬다. 확실히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Stephen Gan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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