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지등 가정용품을 생산하는 다국적 기업으로 프록터 앤 갬블(P&G)이라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쌍용제지를 인수하기도 했다.93년 P&G는 미국의 투자은행 뱅커스트러스트(BT)와 이자율에 관한 파생상품 계약을 맺었다.
P&G는 미국 증시에서도 평판이 매우 좋은 기업이고 BT역시 파생상품 분야에서 명성이 높은 투자은행이다.
두 기업은 그러나 93년 맺은 파생상품 계약으로 인해 엄청난 비용을 들여 소송을 벌였고 기업 이미지에도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당시 미국의 단기금리는 10%대에서 3%대로 계속 하락하고 있었다. P&G는 BT가 만든 복잡한 이자율 헤지 파생상품 계약을 맺었다. P&G는 이자율이 단기간 급반등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94년 2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단기 이자율을 전격적으로 인상했다. 상업어음 이자율은 2월 3%대에서 12월에는 6.5%까지 올랐고 우대금리는 6%에서 8.5%로 급등했다.
원래 계약에 의하면 P&G는 5년간 최대 750만달러의 이자를 절감할 수 있었으나 이자율 급등으로 P&G는 BT에 무려 1억9,500만달러를 지불해야했다.
P&G는 BT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고 지난 96년 법원으로부터 BT에 3,500만달러를 지불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P&G가 실패한 것은 당시 계약을 체결한 경영진이 파생상품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이자율이 상승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전혀 고민하지 않는 것이다.
그나마 법원이 P&G의 청구를 일부 받아들인 것은 「BT가 무지한 P&G에 상품 내용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사실」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놓고 노벨상 수상자인 밀러는 P&G 경영진의 무능함을 빗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프록터 앤 갬블을 아십니까. 프록터는 과부이고 갬블은 애비없는 자식이랍니다.』
파생상품의 세계에서 무지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복잡한 금융환경에서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자들이 파생상품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우리나라 경영진들은 파생상품을 무조건 회피하거나 무조건 신임하는 경향이 있다. 정확히 알면 두렵지 않고 쉽게 속아 넘어가지도 않는다. / 정명수 기자 ILIGHT3@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