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김인영 특파원】국제 유가가 조만간 배럴당 10달러 이하로 떨어져 저유가 시대가 장기화될 전망이다. 우리나라처럼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로선 유가인하가 마냥 반가운 소식이지만, 산유국과 석유회사들은 죽을 맛이다.30일 런던 석유거래소에서 1월 인도분 영국 브렌트유는 배럴당 한때 10.08 달러까지 폭락했다가 전날보다 5.9% 하락한 10.48 달러에 마감했다. 뉴욕 상품거래소에서도 원유 선물가격이 한때 배럴당 10.92 달러까지 떨어졌다가 전날보다 0.64 달러(5.4%) 하락한 11.22 달러에 폐장했다. 이날 폭락의 원인은 지난주 스위스 빈에서 열린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에서 산유국들이 감산 원칙에 합의하지 못했다는 소식이다.
이는 12년만에 최저가이며, 인플레이션을 감안할 경우 25년만에 최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유가가 올들어 40% 하락했으며, 연내에 배럴당 10달러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재고는 17년만에 최대량을 기록하고 있다.
보스턴의 켐브리지 에너지연구소의 석유분석가 대니엘 예긴씨는 CNN에 출연, 『동아시아 경제가 회복되는 2000년까지 저유가 시대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석유전문가들은 『유가는 아직 바닥을 치지 않았으며, 현재보다 25% 하락한 배럴당 8달러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배럴당 최고 27달러까지 올라갔던 유가가 곤두박질치고 있는 것은 세계적 석유 수요감소와 공급과잉 때문이다.
지난해 아시아 금융위기로 한국 등 주요 소비국들의 기름 수요가 급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내년에도 세계 석유소비량이 올해보다 하루 40만 배럴 모자란 7,560만 배럴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유가의 또다른 이유는 산유국의 분열이다. 러시아·인도네시아·베네주엘라 등 산유국들도 금융위기에 휘말리면서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원유를 국제시장에 방출하고 있다. 세계 석유생산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OPEC 회원국들이 감산에 합의할지라도, 비회원국인 러시아·멕시코 등이 기름을 쏟아내는데 감당할 재간이 없다.
OPEC 회원국간 결속력에도 금이 가 있다. 지난주 OPEC 회의에서 쿠웨이트의 사우드 알사바 석유상은 배럴당 5~7 달러까지 갈지 모른다며 산유국의 감산 합의를 호소했지만, 국가간 이해를 조절하는데 실패했다. OPEC의 주요 멤버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베네주엘라가 자국 이기주의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베네주엘라는 유권자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감산에 동의할 수 없는 입장이다. 사우디와 이란도 각자 석유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경쟁심리에 빠져있다.
세계 석유시장은 상당기간 소비자가 큰소리 치는 구매자 중심의 시장을 지속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