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시대에도 싸워야 찾아지는 소비자 권리필자가 미국에서 학위과정에 있을 때 겪은 일이다. 석달 정도만 지나면 첫아이를 낳게 될 상황이라 아기 침대를 장만해야 하였다. 그래서 열심히 신문광고를 주시하던 중 통상 1백60달러 하던 침대가 1백달러에 세일이라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좋은 기회다 싶어 집사람과 함께 매장에 갔으나, 워낙 좋은 가격이었는지 침대는 다 팔리고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물건은 못 사고 「레인 체크(Rain Check)」만 받아왔었다. 미국의 유통업체들은 세일기간에 고객이 매장에 물건을 사러 왔다가 그 물건이 다 팔려 못 사게 되면「레인 체크」를 만들어 준다. 이것은 세일기간이 지나더라도 그 물건이 다시 입고되면 세일가격에 고객에게 인도하겠다는 약속의 표시인 것이다. 이렇게 침대는 들여놓질 못하고 물건이 들어왔다는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중에 첫딸이 예정일보다 5주나 먼저 태어났다. 며칠을 정신없이 병원에서 보내고 산모와 아기가 내일이면 퇴원해도 된다는 말을 들었으나 아직 아기 침대가 해결이 안된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침대는 구해야 되겠기에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예전의 매장에 들러 물건이 들어왔나를 매장의 지배인에게 확인해 보았으나 아직 들어오지 않은 상태였다. 난감해 하는 필자에게 침대가 그렇게 급하냐고 그 지배인이 물어왔고 필자는 저간의 사정을 얘기해 주었다.
얘기를 다 듣고난 지배인은 필자에게 그러면 다른 백화점에 가서 동일한 침대를 가져오면 영수증에 찍힌 금액과 자기들이 「레인 체크」에 표시해 준 세일가격과의 차이를 환불해 주겠다고 제안하였다. 얼떨떨하기는 했지만 급한 김에 그 옆에 붙어있던 「시어즈」 백화점에 가서 똑같은 침대를 1백70달러에 샀고, 그 영수증을 갖다 보여 주었더니 차액 70달러를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거슬러 주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아기 침대를 구입했으나 이때 지배인이 고객을 위주로 일을 처리하는 것에 깊은 감동을 받은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자기가 팔지도 않은 물건에 대하여 손님을 위해 70달러의 손해를 기꺼이 감수하는 그의 행동이 처음에는 이해가 잘 되질 않았으나, 그때 받았던 감동은 평생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며, 기회 있을 때마다 여러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그렇게 태어난 딸이 지금 중학교 1학년이니 벌써 13년 전의 일이다. 그 침대는 6년 후에 태어난 둘째 놈도 충분히 쓰고 지금은 후배의 집에 가 있다.
필자가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또 잘 알려진 얘기로 노드스트롬 백화점의 일화도 있다. 미국 오리건주에서 식품 제조업을 하고 있는 제임스라는 사장이 이 백화점에서 겪은 얘기다.
양복을 한벌 이 백화점에서 산 제임스 사장은 치수의 조정을 위해 수선을 부탁했다. 보통때 같으면 당일로 되는 일이었지만 마침 세일 기간이라서 손님이 많아 그 다음 날까지 수선을 해놓겠다는 약속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제임스 사장이 다음 날 하오 수선을 의뢰한 양복을 찾으러 다시 백화점에 들렀다. 그가 들어서자 『사장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직 양복 수선이 끝나지 않아 죄송합니다. 수선이 되는대로 댁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며 간곡히 말하는 것이었다. 제임스 사장은 실망했지만 그 직원의 친절한 서비스가 맘에 들었고, 집에 배달해 준다고 하여 그리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백화점에 나온 제임스 사장은 그날 따라 사업상 시애틀로 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시애틀에 도착하여 일을 본 후 예약된 호텔에 들어갔을 때 호텔직원이 소포를 하나 내미는 것이었다. 그것은 노드스트롬 백화점에서 보낸 것이었는데 수선이 끝난 양복을 항공 특급화물편으로 시애틀까지 보낸 것이다.
포장 속에는 담당직원의 정중한 사과문과 함께 실크 넥타이가 들어 있었다. 백화점 직원은 양복대금 결제때 신용한 카드회사에 조회를 하여 제임스 사장의 집 전화번호를 알아냈고, 집에 전화해 여행일정을 확인한 후 양복을 보낸 것이다.
이 백화점에서 양복을 보내면서 든 비용은 항공특급소포료 98달러와 실크 넥타이 25달러, 도합 1백23달러였다. 이 일이 있은 후 제임스 사장은 그 백화점의 단골고객이 되었고,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의 체험담을 소개해 줌으로써 노드스트롬 백화점의 이미지를 크게 높여 주었다.
남의 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이와 같은 고객위주의 경영이 왜 우리나라에는 아직 실현되지 않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고객은 그저 봉일 뿐인가? 우리 기업들에서도 고객감동이라는 말이 구호로 쓰여진지 오래이다. 그러나 필자는 위의 예같은 감동을 국내에서는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감동은 커녕 싸워야만 겨우 찾아지는 고객의 권리임을 매일 실감하며 산다. 개방의 시대에 우리 기업이 다시 한번 곰곰 반성해야 할 사안이다.
▷약력◁
△서울대 경영학과졸 △미 Indiana대 경영학석사, 박사 △미 South Carolina 주립대교수 역임 △현 고려대 경영대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