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금 두가지 상반된 시각으로 국세청과 국세행정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대선때 국세청 최고위층들이 나서 한나라당 후보를 위해 기업으로부터 선거자금을 모금한 사실과 관련해서는 「용서할수 없는 일」로 이미 밑줄을 그어놓은 상태다.그러나 이 문제가 국정감사에서 걸러지고 정치적으로도 어느정도 봉합되고나면 나머지 부담은 고스란히 정부 여당에 돌아오게 된다는 사실도 잘 알고있다. 나머지 부담이란 국세행정 개혁을 통한 세정의 민주화다. 국세청과 세정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여전히 그 뿌리가 깊은 데다 향후 국세청 조직이 또다시 문제가 될 경우 그 책임은 현 정부가 질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애증이 교차하는 시선으로 정부는 국세행정의 근본적인 수술방안을 마련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최근 정부가 밝힌 금융소득 종합과세 조기부활 방침과 함께 이번 세정개혁 작업은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이후 깊어가는 중하위층 국민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국정개혁의 핵심분야로 부각되는 셈이라는 평가다.
◇추진주체=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세풍(稅風)이 수그러들 즈음부터 정부는 혁신적인 세정개혁을 위한 구체적 작업을 시작해야 할 것』이라며 『청와대와 재경부에서도 같은 인식을 공유하고 물밑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민의 정부 출범부터 국세청이 자체적으로 세정개혁을 위한 실무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국세청에만 맡겨서는 설득력을 가지는 개혁실행이 어렵다는 시각이 있다』고 지적했다.
주무부서인 국세청을 배제하지는 않되 범정부 차원에서 획기적인 세정개혁을 추진한다는 취지라는 것이다.
◇배경과 의미= 지금 정부가 추진하려는 세정개혁의 방향은 한마디로 「세정의 민주화」로 집약된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경제철학을 모아놓은 DJ노믹스에서는 『그동안 우리의 조세기관은 세무 서비스를 제공하기 보다는 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으로 인식될 정도로 권위주의적 측면이 강했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세정에서 권위주의를 추방하고 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金대통령은 특히 최근 외부인사들과 만나는 비공식자리에서 검찰과 국세청의 정치적 독립문제와 관련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이를 숙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 조직이 권력변동기에 국기를 흔들만한 사건을 저질렀다고 보는 것이 집권층의 기본시각이다. 따라서 국세청의 「색깔」을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바꾸면서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여진다.
국세청의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해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은 지난 91년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 일가와 현대그룹 계열사에 대한 세무조사다. 당시 국세청은 1,200억여원을 추징했으나 최근까지 이루어진 법정소송에서 국세청은 완패, 거둔 세금을 고스란히 돌려주어야만 했다. 재벌들에게 세금을 중과하는 국세청의 업무집행에 반대할 국민들은 없겠지만 정치적 무리수가 무리한 징세로 연결되어 징세기관의 위신을 실추시키는 사례를 부른다면 이는 조세정의 확립이상의 심각한 문제로 부각된다.
결국 조세정의도 징세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이 전제돼야 확고히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세정개혁은 금융소득 종합과세 조기부활 방침과도 맥을 같이한다.
금융소득 종합과세는 있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더 걷고, 없는 사람들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의 과세체계이다. 그러나 지난해 경제위기를 핑계로 종합과세 실시를 중단, 서민층의 불만을 사온 것이 사실이다. 서민층들은 자기들과 상관없는 금융종합과세가 왜 실시됐다가 금방 유보됐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또 자신들이 내는 세금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보는 대부분 봉급생활자들은 고무줄식 세정에 대해 상당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IMF체제 이후 갖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들은 어찌보면 현정부의 집권 기반이기도 하다. 조세정의 실현으로 서민들의 숨통을 트고 세정개혁으로 과세의 형평성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개혁작업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전망과 과제= 정부의 세정개혁을 위한 물밑 작업은 국정감사와 경제청문회가 끝나는 올 연말께부터 수면위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세정의 민주화와 정치적 중립, 권위주의요소 철폐와 부패방지 등 개혁의 기본 방향은 이미 잡혔지만 추진 과정에서 정치적 중립성과 같은 문제는 상당한 논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적 중립이 또다른 정치적 부담을 줄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위원회설치 등이 실현되더라도 실질적인 감시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인물들로 구성될 수 있는 여건 확보와 운영의 독립성 등 실행상 과제도 만만찮다. 새로운 체계를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징세행정의 공백이 우려된다는 조심스런 시각도 있다.
그렇지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강조하는 정부 국정방향에 비춰 세정개혁은 그냥 적당히 넘길 수 없는 핵심 민생과제임을 부인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기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