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별것이냐 아니냐의 차이

그외의 것들은 진실에 접근하는 방증자료는 될 수 있어도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정형근 의원이 이를 폭로한 것이나 이도준 기자가 자료를 훔쳐낸 것이나 이기자가 정의원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이나 더욱이 정의원의 빨치산 발언으로 케케묵은 서경원 방북사건이 재등장하는 것, 그리고 그것들이 본질을 압도할 정도로 요란한 것은 본말전도(本末顚倒) 이다. 문건이 있었기에 훔치고 폭로한 것 아닌가.이 사건을 보는 일반인의 시각은 대체로 세가지가 아닌가 한다. 첫째는 문일현 기자가 정권 일각의 요청에 따라 문건을 작성했고 정권의 내부에서 이 문건을 참고해 언론장악 시도에 나섰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둘째는 문일현 기자가 공명심에 들떠 자진해서 이종찬 국민회의 부총재에게 문건을 만들어 보냈고 이부총재는 자신의 주장처럼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버려두었던 중 기자의 손에 넘어갔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셋째는 중앙일보가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 문기자로 하여금 그같은 문건을 만들게 했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문기자가 공교롭게도 정부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중앙일보 소속이라는 점에서 제기됐던 추측이다. 문기자와 접촉했다는 중앙일보 논설위원에 대한 수사에서도 이와 관련한 혐의가 추궁된 것 같다. 첫째 경우에 관해서는 언론문건의 내용이 언론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고 장악을 위한 실천계획이 구체적이라는 점,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의 구속이 문건이 제안한 방법과는 약간 다르지만 유사하게 진행됐음이 지적된다. 문기자의 현정부 실세들과의 친밀도가 그런 유추를 부추기기도 한다. 이러한 사안의 성격상 수사는 매우 어렵게 돼 있다. 첫번째 상황이라면 이는 음모에 해당되기 때문에 수사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수사대상이 정권의 실세들이어야 하고 그들이 입을 열지 않는 한 혐의를 밝히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검찰수사 결과는 둘째 상황으로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그것 역시 개연성이 큰 상황이긴 하지만, 이 경우 수사의 형평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문건작성자인 문기자나 보관중 문건을 잃어버린 이부총재는 이렇다 할 잘못이 없고 이를 훔친 기자와 폭로한 국회의원만의 잘못으로 되기 때문이다. 면책특권이 있는 국회의원의 발언에 대한 처리가 어떻게 마무리 될지 예측하기는 어려우나 구속까지에 이를지는 좀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결국 이 사건은 기자 한 사람을 구속하는 것으로 끝나버릴 공산이 커졌다. 그것도 기자에게는 치욕적인 절도혐의로. 이거야 말로 또다른 본말전도이다. 기자의 취재행위에 절차의 정당성이 확보돼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는 보호해야 할 권리가 사익이냐 공익이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 또 기자가 정부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정부가 기밀 등을 이유로 국민의 알 권리를 배제할 경우 이를 취재하기 위해서는 비상의 수단을 동원해야 할 것이고 사안에 따라서는 문서의 절취까지도 용인받을 여지가 있을 것이다. 권력이 언론장악을 꾀하고 있다는 내용의 문건을 본 기자가 이를 못본 체 한다면 그를 기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기자가 그것을 보도하지도 못한 채 국회의원에게 건네주었고 더욱이 그 국회의원으로부터 상당액의 돈을 받았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취재가 기자의 본연의 임무라는 점에서 그를 절도혐의로 구속까지 한 것은 지나친 일이다. 그것은 한국언론의 취재현실을 외면하고 결과적으로 기자의 취재활동을 위축시키는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자에게 절도죄를 물릴려면 정보를 잘못 관리한 공직자도 책임을 지게 함이 합당할 것이다. 언론문건 사건이 몰고온 사회적 파장은 이 사건이 공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다. 그러나 검찰수사 결과는 이 문건이 별것 아니라는 데로 쏠리고 있는 인상이다. 별것도 아닌 것을 기자가 훔쳐내고 국회원이 터뜨려서 별것이 됐다는 식이다. 원래의 것이 별것이 아니라면 나머지도 별것이 아니어야 한다. 林鍾乾편집국차장IMJ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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