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에 지방소비세를 인상하는 방식으로 지원하는 방안에 대해 '퍼주기식 지원'이라는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일부 지자체가 방만한 재정운영으로 지방 재정을 부실하게 하는데 이를 중앙정부의 곳간에서 지원해주는 방식은 가뜩이나 문제가 되는 지자체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부추기고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국 시도지사들은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의 간담회에서 부가가치세에서 지방정부로 이양하는 지방소비세를 현행 5%에서 20%로 올려달라고 요구했고 박 당선인은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을 인수위에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도지사협의회가 그동안 강력하게 요구해온 것이고 행정안전부도 지난달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지방소비세를 5%에서 올해 10%로 올리고 향후 20%로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보고했다.
정부는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매년 부가가치세의 5%를 지방소비세라는 이름으로 지자체에 나눠주고 있다. 세금이라고 하지만 중앙정부에서 지자체에 넘겨주는 교부금이다.
현재 지자체에 이양되는 지방소비세는 연간 3조원 정도다. 이를 10%로 올리면 연간 6조원으로 늘고 20%가 되면 11조원대에 달한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20%대로 확대될 경우 중앙정부는 추가로 8조원을 지자체에 내려 보내야 한다"면서 "박 당선인이 약속한 복지공약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연간 27조원이 필요한데 추가로 8조원을 더 마련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지자체 재원을 보전하기 위해 세목을 추가 발굴하거나 세율을 올리는 등의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지자체들은 재정건전성을 개선하기 위해 자구노력을 먼저 기울여야 하지만 중앙정부에 무턱대고 적자분 충당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객관적인 기준 없이 무조건 지자체 요구를 수용할 경우 지자체들의 도덕적 해이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자체와 행안부가 공동으로 지방소비세 확대를 주장하고 있지만 나라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기획재정부가 지방소비세 확대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지방소비세 확대는 정부가 지난 2009년 지방재정지원제도를 개편할 때부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자체와 이들을 관할하는 행안부는 지방소비세 확대를 주장한 반면 재정부는 지자체에 많은 돈을 넘겨주면 정작 정부가 쓸 돈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확대에 반대해왔다.
이에 대해 김재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지자체를 대변하는 행안부와 국가재정을 쥔 재정부가 지방소비세율 인상 여부를 놓고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면서 "지방재정을 강화하기 위한 논의구조를 총리실로 격상시키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 당선인이 취득세 감면, 무상보육 실시에 따른 지자체의 적자분을 중앙정부가 보전해주기로 한 데 이어 지방소비세도 확대하기로 함에 따라 중앙정부의 세수확보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박 당선인이 약속한 복지재원 확충 방안을 1월까지 제출해줄 것을 재정부에 요청했지만 재정부는 아직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재원확보에 대한 우려가 불거지자 정부는 소득세를 내지 않는 면세점을 동결하는 방식으로 세금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금을 낼 때 적용하는 과세표준 기준을 당분간 현행대로 유지해 임금 상승분만큼 증세 효과를 겨냥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소득세 과표구간과 세율은 1,200만원 이하 6%, 1,200만원 초과~4,600만원 이하 15%, 4,600만원 초과~8,800만원 이하 24%, 8,800만원 초과~3억원 이하 35%, 3억원 초과 38% 등이다. 매년 임금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과표구간을 바꾸지 않고 유지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납세자들의 세금 부담은 늘어나게 된다. 또 소득이 적어 각종 공제를 빼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면세점(免稅點)'도 실질적으로 내려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