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그랜드세일이 시작된 지난주 말 서울 명동의 '이니스프리' 매장에서 만난 중국인 관광객 펑웨웨(36)씨는 화장품 구매목록이 빼곡하게 적힌 종이를 들고 쇼핑에 한창이었다. 친구들의 부탁을 받아 화장품 매장을 순회 중이라는 그는 요즘 중국에서 인기라는 이니스프리 마스크팩을 종류별로 80개나 샀다고 했다. 펑웨웨씨는 "한동안 백화점보다 훨씬 싼 가격에 한국 화장품을 파는 중국 오픈마켓 타오바오를 이용했는데 타오바오에서 파는 물품들이 가짜라는 이야기가 많아 다들 한국으로 여행 가는 친구들에게 화장품을 사다달라고 부탁한다"고 말했다.
중국산 '짝퉁' 제품이 활개를 치면서 뷰티 한류에 빨간불이 켜졌다. 중국 최대 인터넷 오픈마켓인 타오바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의 짝퉁 한국산 화장품이 중국에 퍼지면서 한국산 화장품의 브랜드 가치를 깎아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7일 화장품 업계 등에 따르면 백화점을 주요 채널로 삼고 있는 아모레퍼시픽의 헤라는 물론 중저가 브랜드인 이니스프리·미샤 등의 인기 제품들을 베낀 모조품이 중국 소비자들을 현혹하고 있다. 짝퉁 판매는 중국 소비자들에게 인기 높은 제품일수록 더욱 극성이어서 헤라의 '미스트쿠션', 미샤의 '빨간BB', 이니스프리의 '마스크팩' 등이 대상 제품이다.
한국에서 유학 중인 짱이짜오(22)씨도 최근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타오바오에서 짝퉁 화장품을 만났던 경험을 올려놓았다. 헤라의 미스트쿠션을 정가보다 1만원 이상 저렴한 가격(198위안·한화 3만4,500원)에 산 그는 상품을 받자마자 짝퉁임을 직감했다. 그는 "배송된 상품은 예전에 쓰던 정품과 포장방법이나 피부 발림성이 크게 달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타오바오에서 미샤의 빨간BB를 구매했다는 한 중국인 네티즌(ID tangwp0)도 "내 생각에 이 제품은 정품이 아니다. 전에 샀던 것은 우유 냄새가 나지 않는데 이번 건 우유 냄새가 난다"며 "미샤는 포장만 바꿨지 내용물을 바꾸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판매자의 신용도뿐 아니라 판매량을 기준으로 고객 선호도를 함께 평가하는 타오바오의 기준 탓에 중국 소비자들이 짝퉁에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앞서 짝퉁이 의심되는 사례로 한 네티즌이 언급한 빨간BB 판매자는 7일 현재 중국 네티즌들로부터 99.78%의 '좋다'는 의견을 받았다. 싼값을 무기로 10만개가 넘는 제품을 판매한 덕분이다.
그러나 한국 기업으로서는 이 같은 짝퉁 유통의 실태를 파악하거나 단속할 만한 마땅한 방법이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타오바오만 해도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유통채널 중 하나로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타오바오 안에 라네즈와 마몽드 등의 공식 판매 사이트를 개설해둔 상태다.
아모레퍼시픽의 한 관계자는 "타오바오 내 공식 판매 사이트가 아닌 경우라도 국내 인터넷 오픈마켓과 마찬가지로 막을 방법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미샤의 한 관계자 역시 "중국에서 짝퉁이 팔린다는 이야기는 접한 적 있지만 달걀마저 가짜가 있는 곳이니 대응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전세계에서 6,000억원(업계 추정치)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으며 이 가운데 60%에 해당하는 3,600억원을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올해 중국시장에서 목표한 매출액은 5,000억원이다. 미샤도 중국에서 백화점과 가두매장 등 700여개의 정식 유통망을 운영 중이며 지난해 260억원대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산된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여유법이 시행된 후 가뜩이나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드는 상황인데 짝퉁 논란으로 국산 화장품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