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외자 치고 빠지고 채권 롤러코스터… 왜곡되는 자금흐름
■ 글로벌 금리 인하에 한은 나홀로 동결중앙은행-시장 괴리에 금융사 경영전략 차질
이연선기자 bluedash@sed.co.kr
국내시장에서 단기적으로 채권시장 롤러코스터..기준금리 관계 없이 시장은 계속 사상 최저…해외자본은 비정상적 유출입 반복…최근 금리 격차 더 커지면서 생기는 문제
유럽중앙은행(ECB)에 이어 아시아 시장에서 '자금 흐름의 경쟁국'인 호주중앙은행까지 금리인하 대열에 전격 합류하면서 9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둔 한국은행에 이목이 다시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의 십자포화에도 불구하고 김중수 한은 총재의 금리동결 의지가 여전히 확고해 다른 금통위원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한 이달에도 동결될 확률이 높다.
우려되는 점은 선진국과 경쟁국의 금리 줄인하 속에서 '나 홀로 동결'이 시장에 파생시킬 문제들이다. 이미 우리 금융시장을 오가는 외국인들은 지난해 말부터 기대했던 기준금리 인하가 실행되지 않으면서 변덕스러운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국내 시장의 불안정성은 갈수록 증폭되는 양상이다. 기준금리와 관계없이 채권금리가 사상 최저를 이어가면서 중앙은행과 시장이 사실상 괴리돼 있고 이 속에서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들도 경영전략에 심각한 애로를 겪기 시작했다.
◇호주도 금리인하 동참…괴리 커지는 한국=7일 호주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2.75%로 내렸다는 소식에 국내 채권시장에는 화색이 돌았다. 이날 국채 3년물 금리는 장중 4~5bp(1bp=0.01%포인트)까지 올랐다가 차익실현 물량에 2bp 하락한 2.54%로 마감했다. 유럽에 이어 인도ㆍ호주 등까지 금리인하에 동참하면서 한은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것이다. 채권시장의 한 관계자는 "호주는 우리나라와 기준금리 수준이 비슷하고 경제규모도 비슷해 한은 입장에서도 무시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은의 계산은 복잡해졌다. 지난달 경기진단 논란에 이어 이번에는 해외 통화정책과의 괴리를 설명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김 총재가 최근 "한국이 기축통화를 쓰는 미국ㆍ일본도 아닌데 어디까지 가란 것인가"라고 발언한 것도 실상 금리동결을 예고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다른 국가들과 우리와의 금리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고 이에 따라 해외 자금의 유출입 동향에 또 한번 긴장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실제로 지난해 말 이후 금리동결이 이어지면서 국내 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의 단기화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롤러코스터 장세에 시장 혼란 가중=한은보다 머릿속이 더 복잡한 것은 시장이다. 기준금리가 자꾸 예상을 빗나가면서 투자자들은 롤러코스터를 타듯 우왕좌왕하고 있다.
채권시장이 단적인 예다. 한은이 발표한 1ㆍ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 경기를 낙관했던 채권시장은 지난달 30일 통계청의 '3월 산업생산 동향'이 부진한 것으로 확인되자 국채 3년물이 3bp 하락(2.49%)하며 강세로 돌아섰다. 외국인은 이날 3년물을 무려 2만4,000계약이나 순매수했다. 2일에는 금통위 의사록 여파로 하락폭이 5bp로 커져 금리가 사상 최저(2.44%)까지 내려앉았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시 김 총재가 연일 엔저에 따른 우려감을 표명해 5월에는 바뀔까 했던 일부 기대감이 완전 깨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ECB의 금리인하로 3일 국채 3년물 금리는 3bp 오른 2.47%로 반등하더니 6일에는 김 총재의 금리인하에 대한 보수적 발언으로 9bp 오른 2.56%까지 상승했다.
◇밀려오는 외국인 투자자금에 변동성 고조=기준금리 결정 과정이 오히려 시장의 변동성을 키우면서 금융시장의 피로감도 커지고 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바꾸면 장단기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쳐 기업투자와 가계대출까지 영향을 끼쳐야 하는데 기준금리와 시장금리의 괴리가 장기화되자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임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통화당국과 시장의 견해차로 지난달 최고조일 것으로 생각했던 불확실성이 이달 들어 더 커지면서 기업ㆍ가계 등 시장 참가자들이 이에 대한 암묵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며 "어느 정도 불가피성이 있겠지만 장기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주요국의 금리인하 대열에서 소외되면서 내외 금리차에 따른 자금 유출입으로 금융시장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외국인은 4월 한달간 한국 채권에 2조1,360억원을 순투자했고 주식시장에서는 2조7,76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특히 채권시장에서는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하면서 외국인 자금이 대거 몰려 외국인의 전체 채권보유 규모가 97조4,000억원으로 3개월 연속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글로벌 투자가 입장에서는 신용등급에 비해 금리가 높은 한국 채권이 여전히 매력적"이라며 "다만 글로벌 경기 흐름에 따라 외국인 자본이 일시에 빠져나갈 경우에 대비해 면밀한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