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산업이 기로에 섰다. 저성장ㆍ저금리 시대에 맞춰 구조적 변신을 통한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할지, 아니면 과거 고성장 시대에 통했던 부채자본주의의 틀에 맞춘 영업에 안존하며 서서히 고사할지 하는 중대 갈림길에 있다.
올해 우리금융 등 금융지주 순익은 전년 대비 반토막도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단순히 주기상 국내외 경기침체에 따른 기업부실 요인이 아니다. 저출산ㆍ고령화 심화, 경제인구 감소, 이에 따른 저성장 고착화라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건전성 기준이 한층 강화된 글로벌 규율체계인 바젤Ⅲ가 도입되는 등 외부상황도 녹록지 않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사회적 부가 축적되며 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고부가 금융 서비스 산업의 중요성이 커진다. 구본성 금융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정부가 단순히 개별 금융산업 육성 차원이 아니라 국가발전에서 금융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금융자산 축적에 초점을 둔 종합적인 국가전략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을 단순한 산업발전 측면을 넘어 국가 어젠다로 설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구조적 환경변화에 대한 대증적ㆍ표피적 대응으로는 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금융산업의 기존 틀을 다시 짜야 하는 이유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1,000조원 부채에 짓눌린 가계, 저금리 시대에 따른 소비자의 새로운 금융상품 욕구 출현 등으로 은행의 천편일률적 예대마진 장사 시대는 끝났다"며 "이자수익 중심의 모델에서 탈피해 금융자문 서비스 구조로 대전환하는 등 새로운 금융산업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사는 여전히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쪼그라드는 주택담보대출 등 기존 시장에서의 제살깎기 경쟁만 지속하고 있다. 은행은 서비스다. 서비스 산업의 요체는 인재다. 고령화 등에 따른 자산관리 서비스 수요 증가에 맞춰 인재 투자에 나서야 한다. 국내시장 성장 침체로 해외 진출을 외치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낙제점이다. 금융은 수십년에 걸쳐 신뢰와 노하우ㆍ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하는 비즈니스다. 그럼에도 본부 비서실 출신 등의 해외 보은인사가 횡행하고 2년마다 물갈이된다. 국내 은행의 현지화지표인 초국적화지수가 4%로 HSBC(64.7%) 등 글로벌 은행과 차이를 보이는 이유다.
김용환 수출입은행장은 "시중은행들은 그동안 국내 시장에 안존해 우물 안 개구리식 성장을 해왔다"며 "국내시장이 포화되고 정체되는 상황에서 진정한 해외 현지화 등 살길을 찾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고 전했다.
다시 금융의 기본을 새기며 새로운 환경변화에 맞춰 장기 성장전략의 밑그림을 그려야 할 때다. 이에 서울경제신문은 '전환기-한국 금융산업의 틀을 다시 짜라'라는 주제로 한국 금융산업이 나아갈 바를 시리즈로 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