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비자들의 주택구매여력이 커진 반면 4ㆍ1부동산종합대책 이후 회복세를 보이던 집값은 다시 주춤하고 있다. 거래 역시 서울 강남권 등 일부 지역에 집중되고 있을 뿐 외곽지역은 대책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책이 집값 추가 하락을 막기는 했지만 본격적인 상승 모멘텀을 제공하지는 못하는 분위기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지표상으로는 좋아지는 것으로 보이지만 상승동력이 없다"며 "일부 지역의 중소형아파트가 제한적으로 시장을 끌어가고 있어 지표와 현실과의 차이가 크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주택구입여력 커졌다=21일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4ㆍ4분기 서울의 주택구입잠재력지수(HOI)는 34.4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집값이 최고 정점을 찍었던 2009년 4ㆍ4분기(14.2)보다 20포인트 이상 상승했다. 특히 인천은 84.2에 달해 소득 수준을 감안했을 때 대부분의 아파트가 매입 가능한 것으로 조사됐다.
HOI는 가구별 소득과 연간 주거비 지출을 감안해 총 아파트 재고량에서 구입 가능한 주택의 비율을 나타낸 지표다. HOI가 높으면 소득 수준에 비해 싼 아파트가 많아 주택을 구입할 여력이 높다는 의미다.
서울의 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PIR) 역시 2008년 이후 한때 12.1배(소득 3분위 기준)까지 달했지만 지난달에는 9.5배로 낮아졌다. PIR는 연간소득보다 주택 가격이 얼마나 높은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예컨대 PIR가 5.0이면 연간소득을 온전히 모을 경우 5년이면 집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주택구매력지수(HAI) 역시 개선되고 있다. 2009년 말 62.2에 불과했던 HAI는 지난해 말에는 86.7까지 올랐다.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도 꾸준히 오르고 있다. 서울의 지난달 전세가율은 54.2로 2011년 12월(49.7)보다 5포인트 가까이 올랐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전문위원은 "집값이 많이 떨어져 소비자들이 주택구입여력은 예전보다 상당히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대책 효과는 강남권에만=주택구입여력을 나타내는 각종 지표들은 개선되고 있지만 실제 시장의 체감경기는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일단 올 초 취득세 감면과 4ㆍ1부동산종합대책 등으로 절대적인 거래량은 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총 5,916건으로 전년 동기(4,061건) 대비 1,500여건 늘었다. 하지만 거래량 은 강남ㆍ강동ㆍ서초ㆍ송파 등 강남 4구와 다른 지역 간 온도 차가 확연하다. 강남 4구의 경우 지난달 총 1,620건이 거래돼 78%나 급증했지만 비강남권은 36%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강남 지역의 경우 올 초 재건축 호재가 잇따라 발표되면서 거래가 활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타 지역으로 분위기가 확산되지 못했음을 반증한다.
더구나 4ㆍ1대책 한 달이 지나면서 강남권 일부 재건축아파트는 약세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의 경우 대책 발표 직후보다 최대 2,000만원까지 가격을 낮춘 매물이 인근 중개업소에 등록되기도 했다.
함 센터장은 "이번주 들어 일부 강남권 재건축아파트가 평균 500만원 정도 가격이 떨어지는 모습이 포착된다"며 "반짝 했던 시장이 다시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본격 상승보다는 바닥 다지기 이어질 듯=이처럼 지표와 시장상황의 간극에 대해 전문가들은 수요자들의 심리적 영향이 크다고 분석한다. 집값이 최근 2~3년간 큰 폭으로 하락했지만 여전히 중장기 상승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낮다 보니 실제 구입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주택이 투자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임대수익이 자본수익을 앞지르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주택만을 투자처로 고집할 필요가 없으며 실수요자 입장에서도 가격이 떨어졌다고 서둘러 집을 사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 위원은 "투자자의 경우 오피스텔 등 수익형 부동산이라는 대체투자처가 늘어난 만큼 주택에 대한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거시경제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집값은 당분간 소폭의 등락을 반복하면서 '박스권'을 형성하는 장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바닥권을 확실히 다진 후 시장상황에 따라 변동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함 센터장은 "시장의 탈동조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특정 지역이 시장 전체를 견인해나가지는 못할 것"이라며 "국지적으로는 집값 변동이 클 수 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바닥을 다지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