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하우스를 나서자마자 폭포를 품은 20여m 높이의 기암절벽이 골퍼를 압도한다. 강원도 홍천군 남면에 있는 힐드로사이CC. 이곳 캐디들은 절벽에 시선을 뺏긴 골퍼들에게 한마디 더 보탠다. "저 절벽 위에 그린이 있습니다." 절벽 위 그린이라…. 라운드 전부터 호기심을 발동시킨다.
호기심이 풀리는 곳은 버치코스 7번홀. 이 홀 그린이 클럽하우스에서 나오자마자 보였던 바로 그 절벽 꼭대기에 마련돼 있다.
티잉그라운드에 서면 분명 파3홀인데도 깃대가 눈에 들어올까 말까 한다. 아니나 다를까 레귤러티에서도 거리가 187m다. 블루티에선 200m가 넘는다. 일단 어느 클럽을 꺼내 들어야 할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티잉그라운드가 끝나는 곳은 까마득한 낭떠러지. 계곡 사이로 숲이 빽빽해 깊이를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거리상 계곡을 넘기기는 어렵지 않지만 파3홀인데도 온그린 자체가 만만찮다. 핀까지의 거리만 보면 하이브리드나 심지어 우드를 잡아야겠지만 버디를 위해선 롱아이언을 들어야만 할 것 같다. 그래서 머리가 복잡해지는 홀이다.
이 홀의 압권은 그린 쪽 조망이다. 티잉그라운드에서 바라보면 그린이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날씨와 시간에 따라 구름 속의 그린부터 안개 속의 그린, 해를 품은 그린까지 천의 얼굴을 가졌다. 구름 사이로 수줍게 녹색을 비친 '공중그린'에 살포시 안착시키는 짜릿함은 그야말로 황홀경이다. 하지만 위압적인 거리에다 신비로운 전경에 넋을 뺏겨서일까. 지난 2011년 7월 개장 이래 이 홀에서 홀인원은 서너 차례밖에 안 나왔다고 한다.
7번홀에서 이미 짐작했겠지만 힐드로사이CC는 살짝 부담스러울 정도로 긴 골프장이다. 전장이 무려 6,787m(7,423야드). 파4홀들도 2온이 쉽지 않다. 게다가 티샷이 떨어질 만한 곳엔 어김없이 벙커가 자리 잡고 있고 두 번째 샷이 멈추는 곳엔 계류가 흐르는 홀이 많다. 그렇다고 무자비하게 어렵기만 한 골프장은 아니다. 페어웨이의 폭이 평균 75m라 아웃오브바운스(OB) 걱정은 내려놓고 시원하게 질러도 좋다. 호쾌한 샷엔 관대하되 한 타라도 줄이기 위한 세심한 전략이 요구되는 흥미로운 골프장인 셈이다. 어렵기만 해 다시 찾기 싫은 골프장이 있고 어렵지만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골프장이 있게 마련인데 힐드로사이CC는 후자에 가깝다. 12개 홀을 감싸고 관통하는 7개의 호수, 골프장 전체를 휘감는 생태하천이 주는 청량감도 그 이유다. 그러고 보니 힐드로사이는 라틴어로 '신이 내린 신성한 대지'라는 뜻. 이곳에선 15~18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후반기 첫 대회인 넵스 마스터피스도 열린다. 투어 프로들이 7번홀을 어떻게 공략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추천할만한 관전 포인트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