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외국어 이름 쓰는 회사


얼마 전 인터넷에 소리파일이 떠돌았다. 어느 이동통신사 상담원과 할머니가 얘기를 나누는 내용이었다. 회사 이름을 알아듣지 못해 "어디에 불났다고"를 계속 되묻는 할머니와 인내심을 갖고 성의를 다해 설명하는 상담원 간의 대화를 들으며 배꼽을 잡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회사를 알리려고 교묘하게 만든 광고였다 해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지만.

왜 그 회사는 손님이 알아들을 수 없는 이름을 쓸까. 회사이름(상호)과 상표는 손님에게 회사나 상품을 나타내려고 쓴다. 상호와 상표는 이름표다. 느낌이 좋고 기억하기 좋아서 대상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것이 좋은 이름이다. 광고로 수십번 이름을 억지로 되풀이해 머릿속에 박히게 하는 이름은 좋은 이름이 아니다.

예전 이름이 한국담배인삼공사였는데 지금은 케이티앤지라고 쓰는 공기업이 있다. 케이티앤지를 보거나 들으면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인지 알 수 있는가. 이 회사에서 만드는 담배는 거의 모두 외국어 이름을 가졌다. 그 담배를 거의 모두 우리 국민에게 판다. 담뱃갑에는 우리말 이름조차 적지 않아 엉터리 이름을 말하면서 샀던 짜증스런 기억도 있다(담배는 RAISON이었다!). 이 회사는 알아듣기 쉬운 회사 이름을 버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것으로 바꿨다. 거꾸로 갔다.

농협은 언제부터인가 엔에이치농협이라고 이름을 바꾼 모양이다. 그 회사 간판마다 앞에 엔에이치를 붙였다. 농협은 조합원이 농민이고 주로 농민을 대상으로 일할 것이다. 엔에이치란 외국어를 앞머리에 붙여서 농민에게 뭐가 도움이 될까. 회사 활동에 뭐가 도움이 될까.

한국철도공사도 이제는 코레일이라 쓰는 모양이다. 누리집에 가보면 코레일은 영어로 크게, 그 옆에 한국철도공사라고 작게 적어뒀다. 이 회사는 우리나라에서 우리 국민을 상대로 사업을 운영할 것이다. 그 회사가 외국어 이름을 쓸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관광 온 몇몇 외국인이 더 중요한 손님인가.

이들 말고도 포스코ㆍ엘에이치ㆍ케이워터 등 수없이 많다.

사기업이라도 우리 이름을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사기업이 자기 돈 들여 나쁜 이름을 짓고 그 이름 알리려고 돈을 들이든 말든, 이름 때문에 사업이 잘되든 말든 내가 알 바 아니다. 공기업은 그렇지 않다. 공기업은 우리의 정체성을 보이는 구실도 맡아야 한다. 공기업은 우리가 내는 세금을 쓴다. 그런 공기업이 회사이름을 외국어로 쓰는 것은 정말 엉뚱하다.

전세계를 상대로 활약하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외국어 이름이 아니다. 이름 이전에 그 회사가 만드는 제품의 품질이 먼저다. 외국어를 써야 세계화고 국제화가 아니다. 우리 것이 바로 세계적이다. 온갖 분야에서 쓸데없이 외국어를 쓰는 분위기가 걱정스럽다. 이러다가 개인 이름도 영어로 바꿔버릴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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