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마지막 대재앙(大災殃)」으로까지 비유되는 컴퓨터 2000년 표기(밀레니엄 버그, 일명 Y2K)의 문제점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지만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미온적이다.특히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컨설팅 그룹인 가트너 그룹을 비롯해 세계은행(IBRD), 심지어는 감사원으로부터도 Y2K 해결 진척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여러 차례 받아왔으나 정부는 여전히 뒷짐만 지고 있다.
급기야 국내기업으로부터 연간 10억달러 가량의 부품을 구매하는 미국 인텔사의 존 데이브스 부사장이 3일 『한국기업이 Y2K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거래처를 바꾸겠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산업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외국 바이어들로부터 이같은 경고를 받은 업체는 자동차·전자 등 주력 수출산업이 주류를 이루어 수출액 달성에도 악영향이 우려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같은 경고와 지적을 무마하려 애쓸 뿐 여전히 구체적인 실천방안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3일 관계당국 및 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Y2K 관련 핵심조직인 총리 직속의 「Y2K 상황실」과 「정보화책임관(CIO) 협의회」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Y2K 대응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거세지자 최근 총리 직속기관으로 정보통신부에 Y2K 상황실을 만들었다. 그러나 Y2K 상황실은 보름이 지나도록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가장 기본적인 업무인 Y2K 해결 진척도에 대한 통계마저 취합하지 못하고 있다.
정통부 관계자는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에 대한 Y2K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처하려면 적어도 20여명의 인력이 요구되지만 현재 사무관 2명만 있다』며 『이 상태로는 보고서를 만드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행정자치부에 인력을 충원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현재로서는 필요한 인력을 충분히 받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Y2K 대책에 대해 얼마나 소홀히 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중앙행정기관의 「CIO 협의회」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CIO는 각 기관의 정보화를 책임지는 고위 담당관으로 Y2K 대응에 있어서도 당연히 핵심역할을 해야 한다. 또 이들의 모임인 CIO 협의회는 각 기관별로 Y2K 추진실태를 종합하고 범정부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CIO 협의회 회의는 한달에 꼭 한번씩 남보란 듯이 열린다. 그래서는 심도있는 대책을 논의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정부 스스로 자기 코도 닦지 못하면서 Y2K의 최대 취약지역인 중소기업을 비롯한 민간부문을 지원하겠다고 하면 누가 믿겠느냐』며 『허울좋은 「정책」보다 「실천」이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Y2K에 대한 대응자세에서 우리와 미국은 너무나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미국 증권거래소의 셰일라 슬레빈 부국장은 3일 『Y2K 그 자체보다 투자자들이 Y2K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게 더 큰 문제』라며 미국의 각 증권회사에 『Y2K 대비상황을 수시로 투자자들에게 알려줘 불안감을 없애라』고 주문했다.
미국은 정부나 민간 할것없이 해외 전문인력을 대량 투입하는 등 Y2K 해결에 총력전을 벌이면서도 투자자를 비롯한 국민 개개인의 불안감까지 신경을 쓸 정도다. 【이균성·문병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