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ㆍ4 국민의 선택] 외국인·115세 할머니·사할린 귀국 동포·장애인… 우리도 소중한 한 표 행사했어요

카페 등 이색 투표장소도 눈길
가족단위 인증샷 새 문화 정착

이번 선거에는 투표소에 들어서면 받게 되는 각양각색의 투표용지만큼이나 다양한 피부 빛깔과 언어가 투표소를 채웠다.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투표소에는 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유권자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이들은 미리 받은 공약집을 살펴보기도 하고 전날 숙지해온 두 차례의 투표 절차가 맞는지 자원봉사자들에게 서툰 한국말로 확인하기도 하는 등 진지한 모습이었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부터 외국인도 영주권을 취득한 지 3년 이상이 되면 투표권을 가질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된 후 보이는 새로운 풍경 중 하나다. 4일 종로구 청운동 투표소를 찾은 말레이시아 국적의 라쉬드 모하마드 제인(55)씨는 "지인으로부터 영주권자는 이번 선거부터 시장과 교육감을 직접 뽑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연신 "Good idea(좋은 생각)"를 연발했다. 서울 거주 5년 차인 그는 "사실 외국인들도 생활을 하는 만큼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필요를 느낀다"며 "심지어는 요즘 만나기만 하면 선거 얘기가 늘 화제가 된다"고 했다. 실제 이번 선거에서 투표권을 얻게 된 영주권자를 포함해 재외국민·결혼이주민 등 외국인은 12만명에 달한다.

카페 등 이색 투표 장소도 눈길을 끌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지정 공식 투표소에는 카페와 주민 커뮤니티 공간 등이 포함됐다. 이날 투표를 한 김태영(31·광진구 구의2동)씨는 "아침에서야 투표소가 적힌 봉투를 꺼내봤는데 동네에서 종종 가던 카페가 내 투표소로 지정돼 있어서 놀랐다"며 "투표 하면 늘 초등학교나 복지관 같은 곳을 생각했는데 자원봉사자들도 다르게 보이고 신선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날 카페에서 투표를 하게 된 또 다른 유권자 박모(28·종로구 사직동)씨도 "북카페가 투표소라고 하니 지인들이 부러워했다"며 "공공기관처럼 딱딱한 곳이 아니다 보니 투표하는 마음이 예년과 달랐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지난달 30일, 31일 이틀간 진행된 사전 투표에는 직장과 학교 등 평소 생활 반경 내에서 잠시 짬을 내 혼자 들른 유권자가 대다수였다면 이날 본 투표에서는 가족 단위의 유권자들이 많이 보였다. 삼삼오오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 가족끼리 사이좋게 얼굴을 대고 투표 인증샷을 찍는 풍경이 곳곳에서 연출됐다.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신당동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이민호(28)씨는 함께 투표하러 온 어머니에게 인증샷을 제안했다. 십여년 만에 처음으로 투표하러 왔다는 어머니 김모(55)씨는 "쑥스럽다"고 손사래 치면서도 즐거운 기색이었다. 김씨는 "애들이 투표권이 생기고 나서도 비정규직이다 보니 일하느라 바빠 같이 온 적이 없었다"며 "인증샷은 처음 해봤는데 선거가 참 많이 바뀐 것 같다"고 했다. 또 "후보도 투표용지도 많아 내가 얼마나 현명한 선택을 했는지 의문이 든다"고 덧붙였다.

이제는 투표 도장이 찍힌 팔이나 투표소 앞에서 찍는 인증샷에 만족하지 않고 남보다 조금이라도 다른 인증샷을 찍기 위한 노력들도 돋보였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연예인들의 개성 담긴 투표 인증샷이 공개되면서 참고 답안이 많아진 점도 한 이유였다. 이번에 처음 투표를 행사하게 된 이지희(19·종로구 교남동)씨는 투표소 밖으로 나오자마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식 캐릭터를 찾았다. 이씨는 "오면서 꼭 캐릭터 '참참' 입간판 앞에서 인증샷 찍으려고 했는데"라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곧 함께 온 엄마와 동생을 설득해 옆 투표소에 가서 인증샷을 찍기로 했다. 이씨의 어머니는 "아이들이 이제는 적극적으로 티를 내야 자신이 의식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그래도 일단 흥미를 느낀다는 점이 감사하고 앞으로는 다른 부분들도 자연스럽게 가르치려고 한다"고 했다.

이날 제주의 최고령 115세 오윤아 할머니도, 안산의 고향마을에 거주하는 사할린 귀국 동포들도, 새롭게 개선된 장애인용 기표소에서 투표를 진행한 장애인들도 모두 유권자라는 이름으로 투표를 했다. 유권자는 유난히 다양해졌지만 각각의 고민이 의미 있는 행동이 됐기를 바라는 마음은 하나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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