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바둑 영웅전] 부자는 안 싸운다

제7보(101∼117)



백이 선점했던 좌하귀였다. 그것이 겨우 두 눈을 내고 간신히 살았다. 선수를 뽑은 이세돌은 흑3으로 좌변마저 보강했다. 백4는 마지막 남은 큰곳. 흑5는 이런 형태에서 늘 등장하는 응수법. 참고도1의 흑1로 응수하는 것도 사전에 나오지만 지금은 백에게 실속을 내주게 되므로 내키지 않는다. 흑9로는 참고도2의 흑1에 버틸 수도 있는 자리였다. 그것이면 백은 2, 4로 넘어가고 흑은 5로 상변을 키우는 바둑이 될 것이다. 흑11은 승부수. 여기서 왕시는 남은 시간 5분을 모두 쏟아부어 숙고하더니 백12로 넘었다. "우상귀 방면의 흑과 중원의 흑은 일단 양곤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둘 중의 하나를 맹렬하게 공격해서 뭔가 이득을 챙기지 않으면 백이 모자랍니다."(홍성지) 이세돌은 우상귀를 방치하고 흑13으로 중원부터 돌보았다. "왕시는 흑이 우상귀를 손빼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흑13이 너무도 빛나는 착점이 되고 말았어요. 백이 이 방면을 먼저 두는 것이 나았던 모양입니다."(홍성지) 흑13이 놓이자 하변에서 흘러나온 백대마가 당장 위급하게 되었다. 왕시는 백14, 16으로 대마를 수습했다. "흑17은 너무 온건한 거 아닌감?"(필자) "단수를 치고 싶다는 얘기지요? 백이 패로 받으면 조금 시끄러워진다고 보고 참은 겁니다. 세돌이형은 지금 형세가 유망하다고 믿기 때문에 순하게 두고 있는 겁니다."(홍성지) 하긴 그렇다. 부자는 분쟁을 싫어한다. 부자가 거지랑 싸워 봤자 명주바지만 찢어지지. 시인 신동문이 생전에 자주 쓰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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