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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대다. 세계경제는 분명히 위기다. 인류는 과연 글로벌 경기침체를 딛고 새로운 도약을 기약할 수 있을까. 신간 '금융 오디세이'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국제경제는 유지되고 있다. 주요국의 중앙은행들이 정부를 대신해 금융시스템을 보호해온 덕분이다. 그러나 심각한 의문이 하나 남는다. 중앙은행이 위험해지면 누가 나설 것인가.
저자는 로마의 풍자시인 유벨날리스를 인용한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경구로 유명한 유베날리스는 일찍이 '그러나 보호자는 누가 보호할 것이냐'는 물음을 던졌다. 답을 모르는 문제에 대한 한탄이 깔려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한 해법이 그만큼 어렵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미국의 물리학자 리차드 파인먼에 주목한다. 1957년 전미 물리학회에서 파인먼은 원자 속의 텅 빈 세계를 잘만 이용하면 인류생활에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라며 '저 밑바닥까지 파고들면 여지는 무궁무진합니다'라고 말했었다.
오늘날 나노공학의 출발이 누구도 모르는 원자 속 공간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된 것처럼 돈과 은행, 예금, 지급결제, 중앙은행 등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자부해온 것들에 대한 탐구와 재인식에서 위기극복의 무궁무진한 길을 찾을 것이라는 희망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금융 오디세이'는 지중해 일대와 중근동을 넘어 인도까지 당시에 알려진 모든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 대왕부터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의장에 이르기까지 경제와 금융의 역사를 빼곡히 그렸다. 깊고 풍부한 내용을 경제서가 갖는 일반적인 딱딱함과 달리 일반독자도 알기 쉽도록 최대한 편하게 서술한 점도 이 책의 강점이다. 특히 에피소드 중심의 각주가 독서의 맛을 배가시킨다.
단순한 경제사 뿐 아니라 스미스와 케인스 같은 경제학자들의 삶과 사상에서 당대의 전반적인 시대상황과 인문학이 곳곳에 녹아 있다. 미국 경제금융사와 유럽 근대사를 긴장감 있게 압축시킨 솜씨에서는 탄성이 나온다. 우리나라 현대금융의 출발과 고도성장기, 외환위기, 글로벌 위기를 겪으며 경제주도권을 둘러싼 관료들의 암투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책을 펴낼 때마다 경제부처와 한국은행간 묘한 신경전을 야기했던 저자의 신간 '금융 오디세이'가 이번에는 어떤 논란을 일으킬까 궁금함이 남는다./권홍우 논설실장 hongw@sed.co.kr
속이 꽉 찬 크레이피시 같은 독서의 맛 선사 '에레혼(Erewhon).' 영국의 소설가 새무얼 버틀러가 1872년 발표한 소설로 풍자소설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제목부터 Nowhere를 거꾸로 읽은 이 소설을 저자는 금융을 이용하려는 사람들과 거품, 위기 조정을 설명하면서 등장시킨다. 우리나라 돈의 단위(원)가 고대부터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추적하면서는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을 소개하며 피러디 한 귀절을 읊는다. '누가 우리 돈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다오'. 시장의 형성과 금융망의 태동을 전하는 장면에서는 사이먼 가펑클의 '스카로보 장터'가 나오고 월가의 '99% 시위'를 세익스피어의 샤일록과 오버랩시킨다. 뿐만 아니다. 프랑스 시인 장 콕토에서 희대의 거품을 야기한 존 로의 묘비문, 미국 대토령들의 편지와 연설문, 심지에 언어철학의 지평을 연 오스트리아의 비트겐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소재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금융 오디세이'는 이래서 더 끌린다. 속이 꽉 찬 크레이 피시 맛이 이럴까. 경제학과 인문학의 보물창고를 대하는 기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