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인상… 산업계 비상] 산업용, 선진국보다 상대적으로 비싼데… "대기업 전력 특혜 호도"

■ 기업 반응
주택용 대비 상업용 요금 비율… 한국 100일때 미국은 84 그쳐
정확한 원가회수율 기준도 없이 한전 적자 책임 기업에 돌려

전기를 이용해 쇳물을 생산하는 전기로 철강업체는 전기요금 인상으로 연간 수백억원대의 추가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한 철강업체의 전기로가 불꽃을 내뿜으며 고철을 녹이고 있는 모습. /서울경제DB


한국전력공사는 지난달 평균 13.1%의 전기요금 인상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이 가운데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률은 무려 20%. 인상안의 핵심은 기업이 쓰는 전기요금을 대폭 올리고 그 대신 가정용ㆍ상업용 전기요금은 인상폭을 낮춰 평균을 맞추자는 것이다.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방안도 기본틀은 이와 다르지 않다. 지식경제부는 다음달 전기요금을 평균 4%가량 인상할 계획이며 이 가운데 산업용 전기요금은 6~7% 올리는 방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산업용 전기요금만 대폭 올리려는 기류에 대해 '반기업 정서에 편승한 대기업 때리기 식 요금 인상 시도'라는 질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전 적자 및 국가 전력 수급은 결국 주택용 전기 등 국가 전력 시스템 전체의 문제"라며 "이를 두고 마치 대기업들이 전력 특혜를 받으며 국가의 전력 손실을 주도하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계, "하필 유럽 재정위기 상황에…"=업계에서는 특히 이번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안이 자칫 국가 경제 전체에 파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럽 경제위기의 대두, 제조업 수익성의 지속적 하락, 환율과 물가의 불안정 등 국내외 경제 상황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8월, 12월에 이어 10개월도 안된 시점에서 또다시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할 경우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우리 경제가 충격을 수용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점진적으로 요금인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수출계약의 경우 통상 3개월 전에 체결되기 때문에 갑자기 산업용 전기요금이 인상될 경우 미리 맺었던 3개월치의 수출 계약이 적자계약으로 바뀔 수 있다. 이에 인상 시점의 경우 최소 3개월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단계적으로 요금을 인상해 원가에 맞는 전력요금 체계를 구축하는 데 동의한다"며 "다만 5년ㆍ10년 등 원가를 회수할 수 있는 기간을 정하고 정부와 한전, 산업계, 외부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해 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요금 산정하자고 정부에 건의했다"고 전했다.

◇산업용 전기요금의 진실은=한전은 산업용 전기요금의 대폭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한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한전 적자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은 산업용 전력 부문으로 1조6,100억원의 손해를 봤다"며 "이 가운데 76%에 해당하는 1조2,300억원이 대기업 부문에서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한적 적자의 책임을 사실상 대기업에 돌린 셈이다. 한전은 우리나라 산업용 전기요금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가장 낮다는 점 등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산업계가 제시한 기준을 적용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국가 간 전력요금 비교시 보조지표로 사용하는 '주택용 요금 대비 산업용 요금 비율'을 보면 한국이 100일 때 일본은 95, 미국은 84 수준이다. 다른 OECD 국가의 산업용 전기요금이 상대적으로 더 싸며 한국이 오히려 높은 것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은 산업용 전기가 다른 용도의 전기보다 단가가 싸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한전에 따르면 현재 산업용 전기요금은 81원23전/kWh로 평균 전기요금 89원32전/kWh보다 8원09전 싸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이처럼 낮은 것은 전기를 생산하는 원가가 산업용 전기원가가 92원11전으로 주택용 137원51전 대비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저원가ㆍ저단가의 구조인 셈이다.

따라서 산업용 전기의 경우 오히려 다른 용도의 전기보다 오히려 한전이 떠안는 손실폭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셈이다. 지경부 발표에 따르면 산업용 전기의 원가회수율은 지난해 12월 요금인상 이후 94.4%로 전체 평균 90.9%보다 높다. 한전이 100원을 들여 전기를 만들어 공급하면 보통 9원10전의 손해를 보지만 산업용 전기는 손해 폭이 5원60전에 그친다는 뜻이다.

◇정확한 원가회수율 기준 적용해야=기업들은 산업용 전기가 너무 싸서 기업들이 에너지를 펑펑 쓴다는 논리도 억지라며 반론을 펴고 있다. 철강과 석유화학 등 주요 전기 다소비 업종의 에너지 효율성은 한국 기업이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다. 실제 석유화학 설비 효율평가기관인 솔로몬스터디에 따르면 철강 1톤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지수는 한국이 100일 때 일본이 104, 영국이 107, 미국이 116으로 한국 기업이 가장 낮았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산업용 전기 소비량이 많은 것은 제조업 수출국이라는 경제 구조의 특성 때문"이라며 "기업에 전기는 일종의 생산도구로 필요할 때는 아무리 비싸도 사용할 수밖에 없고 불필요할 때는 아무리 싸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요금으로 전력수급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논리는 산업용 전기에는 적용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전 측이 제시하는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의 근거 자체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한전이 공개한 원가회수율이 들쑥날쑥하다는 것이다.

한전은 이번 요금인상안의 근거로 지난해 1년 평균 전기요금 원가회수율이 87.5%에 그쳤다는 점을 제시했다. 한 경제단체의 관계자는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원가회수율이 88.7%였고 12월에는 산업용 전기요금을 더 올렸는데 연간 원가회수율이 오히려 떨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기요금은 정보의 비대칭성이 매우 커서 소비자는 한전 발표자료에만 기대야 한다"며 "특히 원가회수율은 발표할 때마다 달라 전문가 및 제3기관을 통한 공개 검증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