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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회가 발전하고 국가 경쟁력이 높아지는 데 선결 과제가 후진적 정치를 쇄신하는 일이라는 공감대는 오래 전부터 국민 속에 형성돼 있다. 하지만 정치쇄신은 기득권을 사수하려는 기존 정치권의 구태에 막혀 번번이 좌절됐다. 정치쇄신이 다시 화두로 떠오른 것 역시 국회와 의원들의 자율적 의지보다는 표를 얻기 위한 방편이었다. 한국 사회의 고질병인 3류 여의도 정치를 개혁할 무대는 일단 만들어졌다. 국회는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여야가 약속한 정치쇄신을 위해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출범을 미루다 최근 결국 닻을 올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다음달 공직선거법 개정 등 정치쇄신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하고 본격적인 여론수렴에 나서고 있다. 정치인들의 기득권을 견제하면서 한건주의 식 제안은 논의 과정에 걸러낸다면 선진 정치 시대가 현실화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정치쇄신특위는 지난달 말 정치와 국회쇄신을 위한 16개 의제를 선정했다. 이들 과제가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선관위가 제시한 정치 신인 문턱 낮추기를 비롯해 선거활동 규제 완화, 정치인 및 정당 평가 강화 등의 개선안이 입법화할 경우 선진 정치로 도약할 계기는 마련될 것으로 평가된다. 국회 특위는 정치쇄신을 위해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개선 ▲정당의 후보자 추천 과정에 국민 참여 확대 ▲선거에 있어 지역주의 완화 방안 마련 ▲의원 선거구 획정제도 개선 ▲정당 정책연구소 개선 등에 나서기로 했다. 또 국회쇄신을 위해 의원 겸직 및 영리업무 금지 강화를 비롯해 국회 폭력 예방 및 처벌 강화, 의원연금 폐지 등도 추진하기로 했다.
김진표 국회 정치쇄신특위위원장은 "쇄신이 제대로 되려면 극한 정치 대립이 사라져야 하고 그러려면 게임의 룰을 바꿔야 한다"면서 "16개 과제와 관련된 모든 면을 부각시키며 공론에 붙여 여야 간 합의를 도출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쇄신안이 이번에는 제대로 국회에서 마련될 수 있을지'를 묻자 "내년 지방선거가 유권자들이 정치권의 쇄신안에 대해 평가하는 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특위가 본격 가동되고 있지만 정치권의 기득권 내려놓기는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실제 의원 겸직 금지 등은 지난해 이미 여야가 합의했지만 입법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세비인하나 겸직 금지 등 의원 특권을 줄이는 일은 오랫동안 논의된 사안"이라며 "정치권이 당장 할 수 있는 쇄신부터 하도록 압박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도 "국회가 신뢰회복을 위해 의원들의 윤리나 자격심사 등만 독립적으로 엄격한 잣대로 하고 징계를 하면 된다"고 말했다.
선관위가 최근 내놓은 정치쇄신 관련 선거법 개정 초안 등이 국민 토론 등을 거쳐 다음달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어서 이를 정치개혁의 단초로 삼을 수도 있다. 이강윤 시사평론가는 "선관위 제시안이 상당히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며 "정치인들의 기득권 해체를 위해 입법 과정을 시민단체나 유권자가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초의원∙단체장 정당공천 폐지 등 한건주의로 급조된 안들이 자칫 개악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논의 과정에서 수정∙보완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신 교수는 "정치인들 수준이 낮다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유권자가 바뀌어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정치 과정에 참여해 의원들을 평가하고 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