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해외자산 헐값매각은 공기업 개혁 아니다

에너지 공기업들이 해외자원 개발 기업이나 유전·광산 지분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알짜자산이라도 하루빨리 팔아 부채감축 등 정상화에 나서라"거나 "성과가 부진한 공공기관장은 해임하겠다"고 압박하고 있어서다. 이명박 정부의 무리한 해외자원 개발로 부채가 급증했으니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부채감축 논리에 매몰돼 어렵사리 매입한 에너지 자산을 헐값에 매각해서는 곤란하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일본 원전사고로 석유·가스·우라늄 등 국제 에너지 가격이 지금은 약세지만 이런 상태가 얼마나 갈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과도한 부채로 외환위기가 닥치자 1998~2000년 20여개 해외광구의 투자지분을 팔았다가 땅을 치고 후회한 경험이 있다. 얼마 안 가 자원가격이 급등해 자원수급에 애를 먹었고 지분을 사들인 일본·중국 기업들은 대박을 터뜨렸다.

그런데도 정부는 분기별·연차별 부채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공기업 사장을 해임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인수 대상 기업들에 우리 패를 다 보여주며 헐값매각을 조장하는 셈이다. 해당 공기업들은 정부 지침을 밀어붙일 기세다. 해외자원을 담당하는 직원도 극소수여서 조직 내 반발이 없고 단기성과를 내기도 좋으니 가격 불문하고 팔아치울 가능성이 높다.

해외자원 개발은 적어도 10년 앞을 내다보고 전략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장기 프로젝트다. 리스크가 크지만 이를 소홀히 하면 우리 기업·경제의 경쟁력과 지속가능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중국·일본이 아프리카 등지의 자원부국에 큰 돈을 써가며 공을 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와 공기업은 부채감축 논리에 함몰되지 말고 해외광구의 옥석을 잘 가릴 필요가 있다. 부채감축도 중요하지만 안정적 자원수급은 더욱 중요하다. 진입전략이 부실했다고 출구전략마저 부실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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