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크보다는 국밥이죠"
곽경택(46·사진)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국밥이라 표현했다. 1997년'억수탕'으로 데뷔해 '친구'로 800만 관객을 동원한 그는 그간 크고 작은 영화를 연출하며 거칠면서도 낯설지 않은 정감 어린 캐릭터들을 스크린으로 옮겨왔다. 곽 감독이 자신의 18개월 방위 생활을 녹인 자전적 이야기 '미운 오리 새끼'(30일 개봉)로 '통증'이후 1년 여 만에 관객을 찾는다.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곽 감독은 "10번째 영화를 첫 번째 영화처럼 찍었다.'친구' 이후 여러 작품을 하면서 내가 가진 칼날이 무뎌진 느낌을 받았다. 열정 하나만으로 스스로 동기 부여했던 데뷔시절 내 모습을 찾아본 작품"이라 말했다. 영화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헌병대에 배치된 방위병이 군 생활 6개월 동안 겪는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그린다. 전직 사진기자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을 놓아버린 아버지가 등장하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육성 연설이 삽입되는 등 당시 시대상이 펼쳐지기도 한다.
"노 대통령 임기 말 무렵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어요. 군 동기였던 강헌(음악평론가)씨가 뭔가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죠. 386 세대의 상징 인물이 대통령이 됐고, 실정도 있었지만 씁쓸하게 물러나는 게 아쉬웠다는 겁니다. 단순히 전기가 아니라 그 시절을 반추해보는 이야기를 만들어보자고 하더군요. 처음엔 모른다 제쳐뒀는데, 저항의식 없이 지낸 내 젊은 시절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 일종의 부채의식이 계속 맴돌아 시작했죠."
역시나 80년대 군대 이야기에 반길 투자자는 없었다. 뒤늦게 투자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가 합류했지만 영화는 실제작비 10억 원이 채 안 되는 돈으로 어렵게 촬영에 들어갔다.
"지금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지 못하면 영원히 찍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촬영하기로 마음 먹었던 군부대도 곧 재개발에 들어가기도 했고요. 이번 작품은 정말 뭐에 홀린 듯 찍었습니다."
곽 감독이 이번 영화에 남다른 애착을 보이는 데는 함께 한 출연배우들의 영향도 크다. SBS의 연기자 오디션 프로그램'기적의 오디션'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곽 감독이 몇몇 참가자들의 가능성을 눈 여겨 봤고, 자신의 영화에 출연시켜주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주인공'낙만'을 연기한 김준구를 비롯해 조혜련의 남동생인 조지환(중대장 역)등 6명의 주·조연들이 모두'기적의 오디션' 출신이다. 곽 감독은 "위험한 도전이라는 생각에 걱정도 많았던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이제는 깃털 빠진 백조인 내게 함께한 배우들이 백조가 돼 내게 다시 깃털을 이식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전적 이야기를 버무려 내놓은 곽 감독의 10번째 연출작 '미운 오리 새끼'. 그가 영화를 통해 전하는 10번째 메시지는 무엇일까.
"영화 제작에 동기 줬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영화를 만든 저도, 출연한 대부분의 배우들도, 그리고 검증에 검증을 거치며 과거보다 더 힘겹게 살아가는 오늘날의 젊은이들도 모두 처음엔 '미운 오리 새끼'죠. 그러나 나중에 뭐가 될지도 아무도 몰라요. 영화에 동네 바보 혜림(정예진)이 등장하잖아요. 혜림은 사회적 최약자죠. 유린과 강간으로 혜림이 갖게 된 아이, 미친 여인을 성폭행한 악인과 광녀인 어머니의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난 그 아이조차 마지막엔 어찌 될 지 아무도 모른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