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베이션 코리아 2014] 1부. 혁신 없는 4만달러는 신기루 <4> 일자리 대타협 절실

저성장 탈출·고용대박,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에 답 있다
노사정 서로 한발씩 양보해 정규직-비정규직 차별 해소
근로시간 단축·임금피크제 등 노동시장 구조 개혁 서둘러야


휴대폰 제조업체인 인탑스는 시간제 근로자를 위해 오전10시부터 오후5시까지 일하는 탄력적 근무시간제를 운영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여성 근로자가 대상이다. 연장·휴일근무는 금지다. 시간제 근로를 위한 별도의 생산라인을 설치했고 보육시설도 운영한다. 결과는 '윈윈'이다. 회사는 출산·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고용해 구인난을 해소했고 다시 직장생활을 하게 된 여성들은 육아우울증에서 벗어났다.

인탑스는 시간제를 통한 일자리 창출의 모범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문제는 이런 시간제가 우리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노사정 대타협을 통한 법·제도의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벽'에 부딪힌 고용률 70%=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인 고용률 70% 달성의 핵심은 시간제 일자리다. 오는 2017년까지 70% 달성에 필요한 추가 일자리 238만개 가운데 40%에 육박하는 93만개를 시간제로 채우겠다는 게 정부가 제시한 로드맵이다.

사실 시간제 일자리는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 때도 시간제 일자리를 통한 고용창출을 시도했으나 무위에 그쳤다. 주로 공공 부문에서 출산·육아휴직을 대체하는 인력과 콜센터, 쓰레기 무단투기 단속, 취업상담 등에 계약직 형태로 채용됐다. 시간제 일자리가 '질 낮은 일자리 나누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비등한 것이 이때부터다.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되는 부분은 처우개선을 통한 '양질'의 시간제라는 수식어가 하나 더 붙은 점이다. 어느 정부든 시간제 일자리를 통하지 않고는 획기적인 고용확대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시간제 일자리는 남성 위주의 외벌이형 소득구조를 탈피하고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노동인구 감소에 대처하는 핵심 방안이다. 실제 미취업자들의 시간제에 대한 선호도는 높다. 고용노동부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63.5%는 '시간제로 일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여성의 경우 비중이 69.3%에 달했다. 하지만 고용시장의 현실은 정반대다. 시간제 일자리가 실제 고용창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우리나라 취업자 가운데 시간제 일자리 비중은 10% 안팎으로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16.9%보다 낮다. 특히 시간제 일자리로 고용창출 효과를 톡톡히 누린 네덜란드(37.8%)에 비하면 3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자연스럽게 시간제 일자리의 필요성이 높은 여성 근로자의 고용률 저하로 연결된다. 우리나라 여성 고용률은 47.1%에 불과해 전체 고용률을 깎아먹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여성 고용률이 80%에 달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더욱이 우리나라 여성 고용률의 경우 20대까지는 남성보다 높다가 출산·육아기에 접어드는 30대부터 남성에게 크게 역전되는 경향을 보인다.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서는 30~40대 경력단절 여성을 시간제를 통해 노동시장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해법 못 찾는 '노사정'=문제는 시간제 근로의 '함정'이다. 현재 시간제 일자리는 '비정규직'으로 분류된다. 대부분 저임금에 단시간·단순 업무에 집중돼 있다. 이 때문에 '시간제=질 낮은 일자리'라는 낙인이 찍혀 있다. 180만여개의 시간제 일자리 가운데 임금이 높고 4대보험을 보장해주는 양질의 시간제는 6만여개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다. 시간제 근로자의 사회보험 가입률도 30%대에 불과하며 시간당 임금은 전체 근로자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위해서는 비정규직인 '시간제'와 정규직 간의 차별을 없애는 노사정 대타협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시간제 일자리의 질적 제고 없이는 양적 확대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시간제 일자리 확대와 정규직·비정규직 차별 해소라는 두 과제는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있다"며 "어느 한쪽만 따로 떼어서는 해결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임금, 복리후생, 4대보험 가입 등에서 정규직 근로자와 차별이 없는 시간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근본 문제인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양분된 노동시장 구조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정규직 근로자가 장악한 노조 측과 시간제 일자리 확대의 키를 쥔 기업, 그리고 각종 복지와 세제혜택을 지원해야 하는 정부가 각자의 입장을 조금씩 양보해야 가능한 일이다.

근로시간 단축 역시 시간제 일자리 확대의 전제조건이다. 네덜란드·독일 등 선진국의 노사정도 시간제 일자리 확대에 앞서 근로시간 줄이기부터 합의했다. 임금피크제와 정년연장 등도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노사정이 하루빨리 합의점을 찾아야 할 과제다.

유 연구위원은 "10년 이상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는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여러 전제조건 가운데 하나가 고용시장 개혁"이라며 "획기적인 고용률 개선 없이는 우리 경제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대처는 물론 경제혁신도 요원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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