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 새 정부 앞날에 희망과 기대가 우선이어야 함은 당연하다. 대한민국이 평안하길, 국민이 행복하길, 한반도가 평화롭길 바라는 마음은 그래서 지지자나 반대자나 한결같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대외 환경은 그리 녹록지 않다.
제재를 위한 제재는 긴장만 고조시켜
당장의 북핵실험 국면을 극복해야 하고 다루기 힘든 북한과 남북관계의 새판짜기를 추진해야 한다. 협력과 갈등의 미중 사이에서 대한민국의 국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지혜를 짜야 한다. 한중관계, 한일관계 어느 것도 쉽고 간단한 해법은 없다. 복잡하고 어려운 대외정책 환경을 전제로 이제 박근혜 정부는 임기 5년의 외교안보정책의 시동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원칙은 확고하게, 해법은 유연하게'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복잡다단한 대외 환경을 슬기롭게 헤쳐나가기 위해서도 대통령의 강력한 원칙과 소신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국익에 필요한 외교안보정책에 있어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은 바로 한반도 평화와 화해협력의 남북관계이다. 북핵실험 국면과 동북아 갈등 구조라는 당면의 정세에서 더더욱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은 소중하고 절실하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평화를 포기할 수 없다. 한반도적 특수성에서 전쟁은 그 자체로 재앙이고 공멸이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의 첫 번째 원칙은 한반도 평화를 지켜내고 유지하고 만들어가는 것이어야 한다. 특히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한반도 정세 불안이 커지고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는 무책임한 논의는 매우 위험하다. 일각에서 거론되는 선제 타격론과 핵 무장론, 그리고 지도부 제거와 레짐 체인지, 미사일방어(MD) 참여론 등은 한결같이 한반도의 전쟁 위험성을 증대시킬 뿐 실효성도 현실성도 없는 어설픈 주장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평화를 지킨다는 원칙하에 그 방식과 해법은 상황과 조건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의 도발은 확고한 억제력과 사후 응징 의지로 막아내야 한다. 전쟁을 결심할 수 있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음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전쟁 불사만을 고집해서도 안 된다. 평화를 해치는 전쟁에의 유혹은 단호히 뿌리칠 수 있어야 한다. 군사적 옵션과 무력개입은 한반도 전체를 전쟁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겁쟁이라 욕먹어도 확고하게 거부해야 한다. 자존심보다 한반도 평화가 훨씬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동북아에서 평화 촉진자로서 미중 간, 중일 간 평화와 협력의 촉매제가 돼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 원칙은 남북관계 개선이다. 동북아에서 우리의 발언권을 유지하고 한반도 정세에서 우리의 개입력을 확보하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은 바로 남북관계라는 끈이다. 이명박 정부가 '비핵개방3000'을 내세워 하염없는 기다림의 전략으로 남북관계를 중단하면서 우리는 한반도 정세에서 고립되고 말았다. 지금의 북핵 문제 역시 제재 국면이 지나면 결국 협상 국면이 도래할 가능성이 크다. 남북관계를 끊은 채 대북 제재에만 매몰될 경우 협상국면에서 우리는 또다시 외톨이가 된다. 남북관계라는 끈을 유지해야 북핵으로 인한 한반도 긴장 고조를 막고 북핵협상에서 우리가 소외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 위한 유연한 접근 필요
북한을 제재하는 것도, 북한의 버릇을 바로잡는 것도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원칙에 기여하는 방향에서 진행돼야 한다. 제재만을 위한 제재는 실효성도 없이 긴장 고조만 초래할 뿐임을 잘 알고 있다. 버릇을 고치기 위해 남북관계를 포기한 이명박 정부의 오류를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된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때로는 주저되고 내키지 않지만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고 전향적 조치를 취하는 것도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북핵실험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가동을 강력하게 천명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원칙을 이루려면 다양하고 유연한 접근을 고민해야 한다. 자존심 때문에 남북관계를 포기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원칙에 강한 박근혜 대통령의 유연한 접근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