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판사가 전직 경찰청장에게 내린 보석결정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을 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고 한다. 법원의 잘못에 대해서는 아무런 시정 수단이 없는 점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법관의 독립이라는 원칙은 재판에 대한 시정방책으로 상소절차만을 마련하고 있다.
법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어느 선배 법관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던 일이 있다. 법관의 독립은 법관의 식사의 독립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래 전 공무원 외식을 제한하던 시절에 일부 법관들은 나 몰라라 하고 외식을 계속하던 일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럴까.
법관이 독립해야 한다는 말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법관의 독립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그 전제란 독립해 내리는 판결이 독립하지 못하고 내리는 판결보다 나아야 한다는 실증적 기초이다. 적정하지 않은 판결이 튀어나올 때 이 믿음은 위기를 맞을 것이다.
헌법은 법관에게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하라고 주문하고 있으나 이것은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법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고 양심은 영원불변의 도덕률이 아니다.
법관의 독립을 규정한 헌법은 정치적 공동체 의지가 문서화된 것이고 헌법 제1조가 규정하는 민주공화정 체제마저도 실은 광복을 맞은 대한국민이 내렸던 정치적 결단의 소산이다. 법관의 독립이라는 개념의 중립성 내지 무내용성을 채우는 것은 법관의 사법철학이다.
그런데 사법철학은 고개를 외로 꼬고 앉아 혼자 생각에 잠긴다고 해 형성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재판 받는 사람의 자리에 서 보는 법적 상상력, 나무와 함께 숲을 볼 수 있는 정보력과 통찰력, 열린 마음을 가능하게 하는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한 가치체계이다.
오늘날 법관이 가지고 있는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는 우선 유례없이 강화된 재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해 검사ㆍ변호사ㆍ법무사ㆍ법무관ㆍ법학교수 등 법률사무와 법학교육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진정 열린 마음으로 사법운영에 관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청취해야 한다. 나아가 사법부의 문턱을 드나드는 당사자나 일반 국민으로부터 오늘날 그들이 법과 법원에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봐야 한다. 그런 자세만이 법관 독립의 가치중립성이 가지는 위험에 대한 해독제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냥 두고 보기에는 아무래도 걱정스럽다. 법관들 대다수가 지니고 있는 그 도덕성과 진정성과 근면성에도 불구하고 법관의 사법철학에 대한 불안은 법원 주위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법원 청사마다 설치해놓은 저 민망한 모습의 스크린도어 뒤에서 법관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지를 가늠해보는 바깥 사람들의 마음은 답답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방향성 없는 격무에 시달리면서 다른 한편으로 혹시라도 법관의 식사가 독립해야 한다는 따위의 아만을 키워갈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면 좀 끔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