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점점 무너져 가는 권력

■ 권력의 종말 (모이제스 나임 지음, 책읽는수요일 펴냄)
양적증가·이동혁명·교육 향상… 전통적 거대 권력의 힘 빼앗아
사회는 더 자유로워졌지만 주요 의제 합의·추진 못하는 정체·마비 상태 불러 올수도

홍콩의 시민 수천명이 ''정치적 제한 없는 행정장관 직선제''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민권력은 중국 정부의 절대권력에 맞서 주의주장을 펼칠 만큼 성장했다. /=연합뉴스


책의 핵심 메시지는 "권력은 쇠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에겐 저자의 주장이 다소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다. 지금이야 말로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초국적 거대 기업이 출현하는가 하면 몇몇 강대국의 영향력이 전방위적으로 커지고 있는 상황 아닌가.

저자가 말하는 것은 권력의 본질, 즉 권력이 가진 힘에 관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하게끔 하거나 하지 못하게 하는 능력인 '권력'이 과거에 비해 크게 약해졌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

일례로 미국 대통령이나 중국 국가주석, JP모건의 최고경영자(CEO), 뉴욕타임스의 편집장 등은 여전히 강력한

권력자로 꼽히지만, 이들이 지닌 힘이란 전임자들이 행사했던 것에 비해 약할 뿐 아니라 범위도 좁아졌다. 권위에 도전하는 경쟁자가 많아진데다 시민단체·세계시장·언론감시 등의 세력들로 인해 권력 행사에 많은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권좌를 차지하는 기간 또한 짧아졌는데,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기업 CEO의 평균 재임 기간은 1990년대에 10년에서 최근 5년 6개월로 줄었다.

그렇다면 이처럼 전통적 거대 권력이 힘을 잃은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인터넷의 영향'이라거나 '미국에서 중국으로의 권력 이동에 따른 결과' 같은 틀에 박히고 단편적인 해석을 경계한다. 대신 권력의 장벽을 해제시킨 좀 더 근본적인 부분에 주목한다.

인구가 늘고,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늘고, 시장에 나오는 제품이 늘어나는 등의 모든 측면에서의 '양적 증가 혁명'은 소수 권력의 통제를 어렵게 했고, 노동력·상품·돈·아이디어·가치들이 세계 곳곳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이동 혁명'은 새로운 도전자들이 기존 권력이 쳐놓은 장벽을 우회할 수 있도록 도왔다.

무엇보다 교육 수준의 향상 등으로 고양된 의식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이집트 정권 교체를 이루고 리비아 독재정치의 막을 내린 '아랍의 봄'은 의식 혁명으로 발생한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권력이 전통적 거대 권력을 어떻게 무너뜨렸느냐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소수·거대 권력의 쇠퇴는 일견 긍정적이다. 사회는 더 자유로워지고 사람들은 유권자·기업가·투자자·소비자 등으로서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권력의 급격한 분산과 쇠퇴는 위험한 측면도 있다.

저자는 '인간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할 공동의 권력이 없다면 사람들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홉스의 말을 빌려 권력이 사라진 세상에 대한 위험을 경고한다.

저자는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의 행동을 저지할 수 있다는 말은 동시에 누구도 어떤 의제를 밀어붙여 통과시킬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며 "우리는 이미 각국의 정부가 어떤 정책도 합의에 이르거나 추진하지 못하는 상황, 즉 정체와 마비 상태를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자는 미국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최고연구원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외교전문지 '포린 폴린시'의 편집장을 14년간 역임했으며 다보스, 빌더버그 포럼 등에서 세계 엘리트를 대상으로 자주 강연을 할 정도로 존중받는 통찰력 있는 사상가다.

책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추천을 받은 것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최근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2015년 올해를 '책의 해(A Year of Books)'로 선언하고 2주에 한 권씩 읽자며 선정한 첫 책이 바로 '권력의 종말'이었다. 저커버그는 "오늘날 세계가 전통적으로 정부와 군대 같은 거대한 조직만 보유했던 권력을 개인들에게 더 많이 주는 쪽으로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탐색하는 책"이라고 평했다.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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