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Watch] 박근혜 대통령 미술·박물관서 창조경제 영감을 얻다

지구촌 역사·예술과 소통 … 문화외교 꽃피운 '특별한 외출'
6번 해외 순방길 빠짐없이 시간 할애
문화·세일즈외교 균형 … 이례적 행보
국민에 창조적 예술 체험 본보기 보여
# 문화 공감대 이룬 한·인니 현대미술 교류전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총 여섯 차례의 해외 순방에서 나라는 달랐어도 빠뜨린 적 없는 '특별한 일정'이 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는 일이었다. 첫 순방지 미국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을 시작으로 중국에서는 진시황의 병마용 박물관, 러시아에서는 에르미타주 미술관, 프랑스에서는 오르세 미술관, 최근 순방국인 스위스에서는 파울클레센터라는 미술관에 다녀왔다. 이례적이다. 우리나라의 이전 정부에서는 어떤 대통령도 이처럼 적극적인 문화행보를 보여준 적이 없다. 대통령의 일정은, 특히 해외 순방에서는 분 단위로 쪼개 쓸 만큼 빠듯하다. 즉 여유가 있어서 미술관과 박물관에 간 것이 아니라 특별히 시간을 할애한 것이다. 이는 국정기조로 '문화융성'을 내세운 박 대통령이 '문화외교'와 '세일즈외교'의 두 바퀴를 균형 있게 굴리고 있다는 뜻이다. 과거 대통령의 문화행사가 상징적 이벤트이자 장식물 같은 역할이었다면 이제는 문화가 중심에 놓인 것이다. 용호성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 행정관은 "해외 순방에서 해당국의 문화 명소를 방문하는 것은 우선 그 나라의 역사를 존중하고 문화를 이해하려 한다는 외교적 의미가 있다"며 "동시에 대통령으로서 국민에게 문화 향유의 모범을 실천적으로 보여주고자 문화 일정에 비중을 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미술평론가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국민이 해외 여행 때 미술관과 박물관을 꼭 다녀와야 할 목적지로 만드는 '동기부여' 역할을 한다"며 "그동안 우리가 그림이나 유물을 암기 식으로 봤다면 이를 경험으로 체화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보고 지식이 아닌 지혜로 받아들이는 '창조적 예술 감상'의 본보기가 된다"고 평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어떤 미술관을, 왜 다녀왔을까? 어떤 후일담과 시사점을 갖고 돌아왔을까? 여정을 짚어보자.

# 미국 스미스소니언, 백남준이 숨 쉬는 곳

박 대통령은 첫해외 순방지 미국에서 워싱턴DC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을 찾아갔다. 산하 19개의 뮤지엄을 두고 있는 스미소니언에서도 미국미술관을 택했다. 이 미술관은 한국이 낳은 최고의 현대예술가 백남준(1932~2006) 연구의 '국제 거점'을 자처해 2009년 작가 재단으로부터 아카이브(archive·작품 관련 자료)를 사들였다. 박 대통령 방미 당시 미래를 예견한 선지자 백남준을 회고하며 '백남준:글로벌 비저너리(Global Visionary)'라는 대규모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미국 지도를 형상화한 대형 비디오 설치작품 '일렉트로닉 슈퍼하이웨이'를 눈여겨봤다. 이날 오후 만찬장에서는 "(백남준의 작품은) 가장 세계적이면서 그 바닥에는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포함하고 있다. 한국의 K팝 가수들과 문화는 언어와 인종을 넘어 세계인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물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스미스소니언 내 코갓 코트야드에서는 문경원·양민하 등 백남준의 후예인 한국의 미디어아티스트 5명의 전시가 기획됐고 대통령의 방문은 이들 작품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 중국 진시황 병마용갱 '장구한 문화의 정수'

중국을 방문한 박 대통령은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우정콘서트'에서 K팝을 응원한 뒤 시안(西安)으로 날아갔다. 시진핑 주석의 정치적 고향이자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 진출을 계기로 한국 중소기업의 중국 진출 교두보가 된 이곳에서 박 대통령은 문화로 우의를 다졌다.

그가 향한 곳은 진시황의 병마용 박물관. 진시황릉 동쪽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1974년 실제 사람 크기 만한 갑옷 입은 병사부터 말·전차 등의 형상 수천 점이 출토됐다.

5,000점 이상으로 추정되는 무사 각각의 얼굴이 다르게, 섬세하게 표현돼 '세계 8대 경이' 중 하나로 꼽힌다. 박 대통령은 "놀랍고 위대하다"라고 감탄하며 박물관 방명록에 "병마용에서 장구한 중국문화의 진수를 느끼고 간다"고 적었다. 역사에 대한 존중은 중국을 감동시켰고 지난달 하얼빈역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 개관의 결실도 보였다.

# 러시아 에르미타주 "하나라도 더 봐야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은 표트르 대제가 처음 지어 러시아 황제들이 겨울을 보낸 '겨울궁전'이었던 곳으로 예카테리나 여제가 예술품 감상을 위해 옆에 미술관을 지으면서 자리를 잡았다.

이후 유럽 최고의 건축가들이 참여해 겨울궁전을 포함한 6개의 건물을 연결하는 아름다운 초대형 미술관으로 탈바꿈했고 소장품만 270만여점에 이른다. 이곳은 대한항공 후원으로 한국어 오디오가이드 서비스가 제공되는 등 한국 기업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피테르 파울 루벤스와 안토니 반 다이크, 네덜란드 출신 하르멘스 반 라인 렘브란트 이탈리아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산치오 등의 작품을 특히 눈여겨봤다. 그는 "하나라도 더 봐야 한다"며 쉬는 시간까지 생략한 채 그림을 감상했다.

인도네시아에서 박 대통령은 자카르타의 롯데쇼핑몰 에비뉴점에서 열린 '한-인니 현대미술 교류전'을 관람했다.

미술 관람을 하며 롯데 등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힘을 실어줘 문화교류와 세일즈외교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대통령은 비누로 만든 도자기 작품을 만지며 "발상의 전환"을, LCD 영상작품을 보며 "표현 범위의 확장"을 이야기하고 한국의 골목상가를 표현한 인도네시아 작가의 설치작품을 보며 "맞아요!"라고 반응하는 등 문화를 통한 공감대 형성을 보여줬다.

# 오르세 미술관 밀레 '만종' 앞에 발길 멈춰

루브르·퐁피두센터와 더불어 프랑스의 대표적인 국립미술관인 오르세는 인상주의 작품을 기준으로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의 미술을 담고 있다. 원래 오르세는 기차역이었지만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했다. 박 대통령은 서유럽 순방 전에 만난 드림웍스의 제프리 카젠버그 애니메이션 최고경영자(CEO)가 "프랑스에 갈 때마다 꼭 상상력의 보고인 오르세미술관에 들러 창조적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추천한 것을 받아들여 이곳으로 향했다. 오르세 입구에 들어서면 낭만주의 들라크루아와 고전주의 앵그르 등의 작품들로 시작해 인상주의 화파로 안내한다. 세잔과 모네, 반 고흐, 고갱, 쇠라 등 친숙한 19세기 화가들의 명작이 여기 다 모여 있다. 박 대통령은 장 프랑수아 밀레의 명작 '만종' 앞에 머무르며 "그림 속 농부의 뒤쪽으로 펼쳐진 황혼녘의 대지와 하늘의 의미"를 묻기도 했다. 밀레의 '만종'은 한때 미국미술협회에 팔려간 적이 있다. 파리 시민들의 애끓는 모금 운동에 정부까지 나섰지만 미국의 자본력을 이기지 못했고 1890년 백화점 재벌인 알프레드 쇼사르가 애국심의 대가로 당시 80만프랑의 거금을 들여 되찾아온 작품이다.

# 스위스가 자랑하는 파울 클레 작품에 푹

20세기 추상미술을 이끈 선구자 파울 클레(1879~1940)는 우리나라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도 등장하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파울클레센터'에 담긴 스위스의 자부심은 놀랍다. 베른의 이 미술관은 파울 클레가 평생 남긴 미술품 9,100점 중 4,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클레의 며느리가 유산으로 받은 690점의 기증작을 토대로 각계의 노력이 더해져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작품까지 모았다. 3개의 물결 모양을 한 개성 있는 건물은 퐁피두센터, 오사카 간사이공항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설계했다. 파울클레센터는 국가를 대표하는 예술가를 깊이 있게 연구하는 태도, 방대한 컬렉션 확보, 예술을 체험하는 종합문화센터 운영 등에서 배울 점이 많다.

클레는 단순함을 추구하며 환상적이고 재치 있는 작품들을 남겼는데 박 대통령은 대표작 '달콤 쌉쌀한 섬'과 말년작 '스틸 라이프' 등을 한참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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