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했어."
데뷔 첫 승에 대한 칭찬치고는 너무 싱거웠다. 23일(한국시간)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와일드파이어GC(파72·6,583야드)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JTBC 파운더스컵. 3타 차 완승으로 우승한 김효주(20·롯데)를 아버지 김창호(57)씨는 살포시 안으며 "수고했다"는 한마디를 남겼다. 김효주는 '미국의 자존심' 스테이시 루이스(30)에 2타 앞선 단독 선두로 출발, 한 번도 동타를 내주지 않은 끝에 최종합계 21언더파로 우승 상금 22만5,000달러(약 2억5,000만원)를 벌었다. 루이스는 18언더파.
김효주는 '무늬만' 신인이다. 이미 지난 시즌 5승에 4관왕으로 국내 무대를 평정했다. 9월에는 LPGA 투어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에 초청선수로 나가 우승해 버렸다. 이 우승으로 올해 LPGA 투어 정식 멤버로 직행했다. 지난 2012년 말 프로 데뷔 후 2년여 동안 쌓은 승수는 9승(국내 7승+미국 2승)이 됐다. 아버지와 딸 모두 우승이 익숙하다.
올해 LPGA 투어 3개 대회 출전 만에 시즌 첫 승을 따내면서 김효주는 세계랭킹 1위 등극에 시동을 걸었다. 세계 8위였던 그는 이날 발표된 랭킹에서 4위(6.10점)로 껑충 뛰었다. 3위 루이스(9.30점), 이번 대회를 거른 2위 박인비(10.08), 1위 리디아 고(10.71점)와의 거리는 아직은 멀지만 1위 다툼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세계랭킹 포인트는 최근 2년간 성적으로 산정하는데 LPGA 투어 대회 배점이 가장 높으며 최근 13개 대회에 가산점이 있다. 김효주는 라섹 수술 탓에 2월 말에야 시즌을 시작해 이대로라면 포인트를 올리는 일만 남았다. 첫 대회 혼다 타일랜드에서 공동 23위를 한 김효주는 직전 대회인 HSBC 챔피언스에서 공동 8위로 감을 잡은 뒤 바로 정상에 섰다. 그는 이번이 통산 13번째 LPGA 투어 대회 출전이었는데 톱25 밖으로 한 번도 밀린 적이 없을 정도로 미국 투어와 궁합이 잘 맞는다.
◇루이스의 '코리안 징크스'=김효주는 이날 3주 만에 전 세계 1위 루이스와 재대결했다. 3주 전 혼다 타일랜드 1라운드에서는 같은 조 루이스에게 압도당했다. 한때 10타 차까지 벌어진 끝에 6타 열세로 마무리했다. 김효주는 "루이스는 차원이 다른 골프를 하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대였다. 마지막 날 같은 챔피언 조에서 2타 차로 쫓기면서도 김효주는 미동도 없었다. 버디 2개에 보기 1개로 전반을 마친 그는 10번홀(파4) 보기로 1타 차로 추격당했으나 12번홀(파4)에서 10m쯤 되는 버디 퍼트를 넣는 등 11~13번홀 3연속 버디로 버텨냈다. 이후에도 버디 2개를 보탰다. 위기 뒤 8개 홀에서 5타를 줄이는 무서운 집중력을 과시한 것이다. 1타 차로 맞은 18번홀(파4). 긴장감이 흘렀지만 역전 드라마 같은 것은 없었다. 오히려 김효주가 버디, 루이스는 보기를 적었다. 루이스는 티샷이 왼쪽으로 치우쳐 디벗(골프채에 파인 자리)에 박히는 바람에 두 번째 샷이 핀을 멀리 지나쳤다. 김효주는 아이언샷을 3m 안쪽에 붙인 뒤 1퍼트로 마무리했다. 이미 패배가 확정되자 루이스는 가까운 파 퍼트마저 놓쳤다. LPGA 투어 통산 11승을 자랑하는 루이스지만 씁쓸한 준우승이 벌써 17번째다. 특히 올해는 혼다 타일랜드에서 3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리다 마지막 날 양희영에게 역전패하고 HSBC 챔피언스 최종 라운드에서 박인비와 챔피언 조 대결을 벌여 무너지는 등 '코리안 징크스'에 시달리고 있다. 이번 코스는 루이스에게 좋은 기억이 있는 곳이었다. 그는 2년 전 와일드파이어GC에서 열린 RR도넬리 파운더스컵을 우승, 처음 세계 1위에 올랐다. 기분 좋은 장소에서 시즌 첫 승을 별렀으나 루이스는 또다시 쓴잔을 들었다. LPGA 투어 통산 41승의 베테랑 캐리 웹(호주)을 꺾고 지난해 에비앙 챔피언십을 제패하고 올해 루이스마저 잡은 '슈퍼루키' 김효주는 한 달여 만에 재개된 미국 본토 대회 우승으로 '슈퍼스타' 대접을 받게 됐다.
◇장군멍군 천재 대결=뉴질랜드동포 리디아 고(18)와의 '천재 소녀' 맞대결에서도 김효주는 멍군을 불렀다. 2주 전 HSBC 챔피언스에서의 시즌 첫 대결에서는 리디아 고가 단독 2위(김효주는 공동 8위)로 판정승을 거뒀다. 이번에는 김효주가 우승, 리디아 고는 김효주에게 6타 뒤진 공동 6위를 했다. 리디아 고는 시즌 2승은 놓쳤지만 LPGA 투어 9개 대회 연속 톱10, 47개 대회 연속 컷 통과 기록을 이어갔고 연속 언더파 기록도 24라운드로 늘렸다. 상금 1위, 올해의 선수 포인트 1위는 여전히 리디아 고다.
김효주도 만으로 따지면 아직 19세 8개월의 10대다. LPGA 투어에서는 지난 시즌부터 7차례나 10대 선수 우승이 이어지고 있다. 김효주와 리디아 고를 중심으로 한 '10대 파워'가 올 시즌 LPGA 투어를 휘감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