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서 손꼽히는 부동산 감정평가 공기업인 한국감정원이 토지를 잘못 평가한 책임을 지고 17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는 감정평가 관련 민사소송 사례중 손해배상액을 기준으로 사상최고 규모다.
17일 대전고법 민사1부(김용대 부장판사)는 한국리스여신(옛 중앙리스금융)이 “서울리조트의 담보를 과다 평가해 부실대출로 이어졌다”며 한국감정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한국리스여신에게 97억1,300만원과 1994년11월9일 이후 판결선고일까지 연 5%의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감정원이 잘못된 감정평가로 물어야 할 금액은 170억원을 웃돌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94년 감정원은 서울리조트가 소유한 경기도 미금시 호평동의 4만9,797평 일대를 519억원으로 평가했다. 서울리조트는 감정결과를 들고 한국리스여신의 전신인 중앙리스금융을 찾았고 200억원 가까이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경영난에 부딪힌 서울리조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리스료를 연체하기 시작했다. 채무상환 능력이 충분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200억원을 내준 중앙리스금융은 서울리조트의 부실에 큰 타격을 입어 결국 1998년 파산했다.
중앙리스금융이 파산한 후 손해배상 책임을 가리게 된 청주지법은 문제가 된 토지가치가 고작 62억 5,000만원이라는 감정평가사의 의견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감정원이 195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감정원이 불복해 사건은 대전고법으로 올라갔다. 대전고법은 다시 한번 토지를 평가해 171억원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1심 배상액을 대폭 낮춰 10억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손해액을 산정하는 방식에서 심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판단 아래 사건을 다시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법원 판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토지 감정가가 제각각인 것은 표준지를 선정하고 가격을 매기는 기준이 달랐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감정원 관계자는 “근처 토지의 개발이익까지 감안해 519억원으로 평가했다”며 “파기환송심이라고 하더라도 이번 판결이 마지막이라고 볼 수 없다”며 대법원에 상고할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