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중기 '퍼펙트 스톰'] 경기침체·엔저·중국산 공습까지… "매출 반토막에 폐업 속출"

공장가동률 40~50%선
금융위기 때보다 낮아 아예 멈춘 곳도 수두룩
"그렇게 원하던 주5일근무… 일감없어 하게 돼 한숨만
탈출구 안보여 더 문제"

인천 남동공단의 한 중견기업 주방가구공장에 목재 등 자재들이 방치돼 있다. 세계경기 침체와 내수 부진으로 인한 소비 위축, 엔저, 저가 중국산 공습 등으로 중소기업들이 ''퍼펙트 스톰''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인천=이호재기자.


#중소 생활가전업체 A사는 올 매출이 지난해보다 30% 이상 뚝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수년간 2∼3%대로 지지부진했던 영업이익률도 올해는 더 주저앉을 것으로 보여 이자비용 등을 제하면 사실상 남는 게 없을 정도다. 회사 관계자는 "올해는 제습기 시장에 기대를 걸고 뛰어들었지만 이것마저 잘 안됐다"며 "새로운 사업을 하려 해도 돈이 없어 앞으로도 계속 경기가 안 좋으면 큰일"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에 있는 건설중장비 부품업체 B사는 일감이 끊겨 업종 전환을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 건설 업계 불황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다 글로벌 악재가 이어지면서 출근한 직원들은 멈춰버린 공장 기계들을 닦으며 시간을 보낸다. 이 회사 대표는 "회사 매출이 지난해 대비 절반으로 줄어 직원들 월급 줄 걱정에 밤잠이 오지 않는다"며 "그렇게 원하던 주5일 근무를 일감이 없어 하게 되다니 한숨만 나올 뿐"이라고 털어놓았다.

중소기업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대기업 협력업체는 물론 가전·건설·소비재 등 전 업종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험난한 경영난에 맞닥뜨리고 있다.

세계경기 침체와 내수 부진으로 인한 소비 위축, 엔저, 저가 중국산 공습 등 대내외 악재가 겹치면서 '퍼펙트 스톰'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것. 더욱 문제는 앞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신달석 자동차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은 "매년 국내외 경쟁업체가 늘어 매출과 영업이익은 쪼그라들고 엔저 때문에 해외에서 가격 경쟁력도 뚝뚝 떨어지고 있다"며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지만 지금은 탈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자동차부품 업계에서는 부도설이 도는 등 분위기가 매우 흉흉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매출액 수천억원대인 C기업 등 몇 개 업체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있다"고 전했다.

전자부품 업계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실적 악화가 중소업계를 강타한 지 오래다. 대부분의 업체는 매출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고 일부는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 납품업체 D사의 최대주주는 주주들에게 회사 매각 안내서를 보냈다. 이 회사는 지난해 5,064억원의 매출과 26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올 상반기 매출은 1,335억원에 그치고 262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조선 부문은 더욱 안 좋다. 전남 목포에서 선박용 주물을 만드는 조선부품업체 E사 대표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공장 가동률이 80%를 넘었는데 요즘은 조선 경기가 아예 죽어서 40~50%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울상을 지었다.

건설기계부품 업계에서는 아예 공장 가동을 멈춘 곳이 많다. 지난 8월 건설기계산업 동향에 따르면 건설산업 불황으로 기계 판매가 급감하면서 내수 판매는 전년 동월 대비 22.3%나 줄었다. 중국 수출은 전달과 비교해 45.6% 감소해 반토막이 났다. 업계 관계자는 "외환위기 당시에는 해외수출을 통해 어느 정도 위기를 극복할 방법이 있었지만 현재는 북미 시장을 제외하면 시장이 없다"며 "1차 협력사 정도만 그나마 버틸 뿐 2~3차들은 매출이 50%씩 빠져 침울한 연말을 보낼 것"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가전 등 소비재 기업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한 중소가전업체 관계자는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필수품이 아니면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며 "특히 국내 판매가 점점 더 안 좋아져 현상 유지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한때 대박 신화를 낳았던 제습기 업체들도 된서리를 맞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내 제습기 시장은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성장이 예상되는 등 장밋빛 전망이 넘쳐났다. 제습기 1위 업체 위닉스는 올 2·4분기만 해도 1,2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지만 3·4분기 들어 355억원으로 뚝 떨어졌고 영업손실이 106억원이나 났다.

지난 8월에는 국내 유일 토종 전기면도기업체 조아스전자가 글로벌 기업과 값싼 중국산 제품에 밀려 부도를 맞기도 했다. 로봇청소기업체인 F사와 G사 등도 최근 판매량이 급격히 줄면서 불과 1~2년 새 급격하게 경영사정이 악화됐다.

액자 업계는 중국업체의 추격으로 폐업이 줄을 잇고 있다는 전언이다. 노상철 신일프레임 대표는 "액자 업계는 수출이 80~90%인데 5년 전부터 중국 업체의 추격으로 세계시장을 많이 뺏겼다"면서 "다른 시장을 못 찾은 업체들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장은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요가 줄다 보니 기업들의 일감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이런 상황일수록 중소기업들은 기술개발과 원가절감에 힘쓰고 정부도 기업들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sed.co.k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