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 당시 우리 사회를 풍미했던 벤처붐이 다시 등장하는 분위기다. 정부가 2017년까지 벤처산업에 4조원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후 정부 각 부처는 물론 지자체·대학·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트업 관련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는 창업생태계 활성화를 목적으로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글로벌 K스타트업'을 비롯해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의 '글로벌 엑셀러레이터', 중소기업청의 '청년창업사관학교',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창업발전소' 등 지원책이 소개되고 있다. 지자체로는 서울·대구·광주 등에서 엔젤투자매칭펀드를 운용해 자금을 지원하며 대학이나 기업 등 민간에서도 창업팀을 선정해 기술 서비스나 창업공간 등을 제공한다. 정부 부처와 국내외 투자기관이 참여하는 민관협력 네트워크도 다양하게 구축되고 있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스타트업 전성시대'를 맞은 데는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의 핵심 기치로 내건 벤처카드가 주효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정부 정책을 마냥 환영하기 어려운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2000년대 초의 정보기술(IT) 버블 붕괴로 인한 트라우마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벤처 육성에 정부가 앞장서고 있는 점도 당시와 흡사하다. 김대중 정부 때 역시 벤처육성 특별법이나 코스닥시장 활성화 등의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벤처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로부터 얼마 안 가 무늬만 벤처들의 무더기 몰락과 대박 환상을 꿈꾸던 개미 투자자들의 투자실패 등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했음을 기억할 것이다.
이번에는 IT버블 붕괴 때와 달라야 한다. 민간 영역에서 옥석 가리기나 벤처캐피털 저변확대 등을 주도해나갈 수 있도록 정부는 가능한 한 인프라 구축에 집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자생적인 벤처 선순환 생태계 조성이야말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지속 가능한 스타트업 환경은 민간이 이끌고 정부가 뒤에서 미는 시스템에서 비로소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