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과 서비스·투자분야 포지티브로 협상 후 후속 쟁점 논의
전기료 등 공공요금 인상 자제하겠지만 요인 있다면 검토
기업 해외로 눈돌리되 환보험은 투기장치로 악용하면 안돼
최근 한·캐나다 자유무역협정(FTA)이 공식 체결됨에 따라 한중 FTA의 연내타결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7월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정상회담을 열어 한중 FTA 연내타결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한중 FTA는 중국이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이라는 점에서 경제적 효과는 물론이고 남북관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제13차 한중 FTA 공식 협상이 끝나고 한·캐나다 FTA 비준 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된 2일 윤상직(58·사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만났다. 윤 장관은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중 FTA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기대에 부응하듯 "한중 FTA는 이제 착륙지점을 찾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오는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타결 선언이 이뤄지기를 기대하는 중국 입장에서는 7일까지인 국경절 이후 협상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게 착륙지점을 언급한 이유다.
윤 장관은 베트남·뉴질랜드와의 타결 소식도 연말 주요 통상 이슈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외에 공공요금 인상의 여지를 열어놓은 뒤 산하기관들의 경영정상화와 부채감축에 대해서는 지속가능 여부를 중심으로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한·중 FTA 연내 타결 '주목'
가장 먼저 FTA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화두에 올랐다. 윤 장관은 APEC 때까지 시간이 촉박한 만큼 우리도 타결을 위해 노력하겠지만 중국 측이 더 적극적인 자세로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윤 장관은 "쟁점이던 서비스·투자 분야의 경우 '선(先) 포지티브, 후(後) 네거티브 전환'의 자유화 방식으로 합의한 상태"라며 "중국 측의 서비스·투자 분야 개방확대 및 국내법 개정 상황 등을 고려해 우선 포지티브 방식으로 협상을 타결하고 일정 기간 내에 후속 협상을 추진하는 것이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TPP 이야기가 나오자 윤 장관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윤 장관은 "미일 간 타결 여부가 불투명하고 전체 12개 TPP 회원국 간 쟁점에 대한 협의도 진행 중이어서 타결시점을 예측하기 어렵다"며 "참여국들과의 예비 양자협의를 통해 협상진전 동향을 면밀하게 살피면서 타결 이전 또는 이후 참여 가능성 모두에 대비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TPP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정리되느냐를 보면서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시점에 결정하는 것이 순리"라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 등의 협상 상황을 보며 참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는 말이다. 속도의 문제지만 과정에서 어떤 조치를 취하는 게 국익을 가장 위하는 길인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는 세계 경제패권을 다투는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우리 경제가 경쟁력을 잃지 않게 해야 한다는 고민에서 비롯됐다. FTA와 TPP를 중심으로 유리한 통상 네트워크를 형성해가고 있는 미국과 경기둔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7% 이상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기록하며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중국 사이에서 한 단계 더 높은 무역장벽 철폐를 의미하는 TPP를 즉시 받아들이기에는 부담이 상당하다는 뜻이다.
TPP 가입은 현재 가입국들의 승인이 있어야 가능한데 지지를 얻기 위한 선결조건이 FTA라는 게 일반적 인식이다. 한국의 참여조건으로 미국이 '한미 FTA의 완전한 이행'을 내건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됐다. 미국과 캐나다 등이 주도하는 다자 간 무역협상인 TPP의 목적은 2015년까지 농업을 포함한 모든 공산품 관세 철폐와 정부조달, 지적재산권, 금융, 의료서비스, 노동규제 장벽 철폐다. 무역장벽을 없앤다는 것은 무역 활성화의 의미이면서도 시장개방을 뜻한다.
이에 비춰 우리나라의 평균 관세율은 2011년 기준 12.1%로 선진국은 물론 신흥국인 베트남(9.8%), 멕시코(8.3%), 말레이시아(6.5%)보다 높아 대외무역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정부는 TPP 참여시 경제효과와 불참시 상황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피해업종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윤 장관은 "TPP 참여시 발효 10년 후 실질 GDP가 1.7%에서 1.8%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며 연간 2억~3억달러 수준의 무역수지 개선이 예상된다"며 "반면 불참할 경우 10년 후 약 0.12%의 GDP 감소와 함께 제조업 분야에서 1억달러 이상의 무역수지가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농업은 연간 4,000만달러 전후, 수산업은 연간 3,000만달러 미만의 무역수지 악화가 예상된다. 윤 장관은 "TPP 참여를 결정하면 농수산물 분야 민감성을 반영한 협상전략을 수립하고 일본 등으로 수출을 확대하는 계기로 활용하는 방안도 적극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하기관 방만경영 조치 지속여부 볼 것
윤 장관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원자력 발전시설 보안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한빛원전에서 직원과 용역업체 직원 간 업무용 컴퓨터 아이디와 패스워드 공유사건을 지목한 것이다. 윤 장관은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드는데 아무리 그래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산업부 차원에서 원전 안전과 관련한 관리·감독을 더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인터뷰 당일 한국수력원자력은 한빛원전 아이디·패스워드 유출 관련 책임자를 직위 해제했다.
윤 장관은 이어 공공기관 평가에 더 엄정한 잣대를 적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외부적으로는 8월 말까지 부채감축과 방만경영 근절조치들이 완료됐다"며 "하지만 이들 조치는 지속 가능한지 아닌지가 더 중요하며 조치가 미흡할 경우 사직서를 받아낼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못 박았다.
이와 관련해 일부 에너지 공기업들의 과도한 해외 기업 지분참여는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급적 대규모 지분참여는 자제하게 할 것"이라며 "과다한 지분참여를 억제하지 않으면 계속 빚을 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현상이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스공사와 석유공사의 부채 문제가 결국 무리한 해외 투자 지분 참여에서 기인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전기요금 인상요인 있다면 검토
윤 장관은 이어 전기요금 같은 공공요금 의 경우 가급적 인상을 자제하겠지만 인상요인이 있다면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지역난방요금은 오랜 기간의 요금동결로 인상요인이 충분하다고 윤 장관은 내다봤다.
윤 장관은 "전기요금 인상요인이 있다면 요금에 반영해야 한다"며 "큰 틀에서 요금결정의 변수들이 많지만 연료 가격과 송전선로 배상 문제 등이 있어 인상요인이 있는지 앞으로 살펴볼 것"이라고 밝혔다. 전기료는 내년부터 연평균 2,000억원의 송전선로 배상 등 사회적 비용을 기본적으로 고려하되 원화 강세에 따른 원자재 가격 인하요인이 사회적 비용을 흡수할 수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인상을 자제하겠지만 그럼에도 인상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지역난방의 경우 1년 이상의 요금동결로 인상요인이 충분하다고 봤다. 그는 "공공요금은 주로 전기·가스·난방의 세 가지인데 가스는 연료비연동제로 돼 있고 문제는 지역난방 쪽"이라며 "요금이 너무 억제돼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기업들 환보험 투기장치로 생각 말아야
윤 장관은 기업들이 투자할 곳이 없다고 호소하기보다 서비스 부문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 대상을 찾기 쉽지 않은 현실에서 중국의 알리바바와 샤오미가 왜 나왔는지를 주의 깊게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윤 장관은 "이미 우리 기업이 글로벌화돼 있어 세계 시장을 공략할 능력을 충분히 가졌다"면서도 "정부가 규제개혁을 제대로 해야 하지만 알리바바와 샤오미의 예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국내 시장에 안주하고 경쟁을 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면 스스로 개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엔저의 영향으로 채산성이 크게 악화돼 어려움을 겪는 수출기업들에는 "기업들이 환보험 자체를 투기적 장치로 봐선 안 된다"며 "기본적으로 환 리스크를 줄이는 데 인식의 비중을 두고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환변동보험이 환차손을 보상해주고 차익을 보장해주더라도 이를 목적으로 인식하면 경영상의 어려움을 촉발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He is… △1956년 경북 경산 △부산고, 서울대 무역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미국 위스콘신대 법학박사 △행시 25회 △2004년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과장 △2009년 지식경제부 산업경제정책관 △2009년 무역위원회 상임위원 △2010년 지식경제부 기획조정실장 △2010년 청와대 지식경제비서관 △2011년 지식경제부 1차관 △2013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
'폐 시추공' 처럼 중간 기술을 시장에 적용… 창의적 발상 필요 ■ 윤 장관의 브리지 창조경제론 미래부의 창조경제와 달라야 구경우 기자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글로벌 시장에서 최고 자리에 있던 스마트폰 사업도 중국 샤오미 등 경쟁자들의 거대한 도전에 직면했다"며 해법으로 이른바 '브리지 창조경제론'을 펼쳤다. 윤 장관의 브리지 창조경제론은 10년 이상의 연구개발(R&D)이 장기적으로 큰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프로젝트가 연속성을 가지려면 중간과정에서 도출되는 기술들을 시장에 적용하는 창의적 방식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윤 장관이 "산업부의 창조경제는 미래창조과학부의 창조경제와는 달라야 한다"고 지적한 것도 이러한 시각에서 비롯됐다. 윤 장관은 최근 울릉분지 폐시추공을 이용한 시추선(드릴십) 시험평가 사업을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시추선 시험평가 사업은 동해 울릉분지에 위치한 '주작-1' 폐시추공을 활용하는 것이 내용이다. 전 세계에서 폐시추공을 시추선 시험설비로 활용한 것은 우리 정부가 처음이다. 윤 장관은 "거리만 2만8,000km로 도착까지 63일이 걸리던 멕시코만에서 진행하던 시추시험을 동해에서 할 수 있게 돼 국내 조선사들의 수주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됐다"며 "장대한 해양플랜트도 중요하지만 폐시추공의 성격을 바꿔 해양플랜트 서비스 시장을 만든 것과 사례를 많이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장관은 이어 "우리 경제가 앞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존 제품이 아닌 스마트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산업부는 '아이디어 팩토리' 등의 프로그램으로 새 기술이 시장에 자리 잡을 수 있게 지원하고 있다. 아이디어 팩토리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 제품이나 기술을 중소기업에 이전하거나 창업을 돕는 사업이다. SK텔레콤이 마케팅과 유통을 맡아 중소기업이 개발한 움직이는 교육용 로봇 '알버트'를 지난 6월 중국에 3만대(450만달러) 수출한 것과 중소기업의 태양광을 이용한 압축 쓰레기통 수출 등이 구체적인 성과로 꼽힌다. |
대담=권구찬
사진=이호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