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금통위 결정은 이미 예견되었던 것이다. 인플레 우려를 대비하기 위한 선제적 통화관리의 필요성이 한국은행 내에서도 제기되어 왔지만 현재의 금융시장상태로는 통화긴축, 금리인상 등은 시기상조라는 것이 통화당국과 금융정책당국의 일치된 견해였다.그러나 이날 금통위는 지나치게 단기적인 금융시장안정에만 무게를 둬 장기적으로 볼때 인플레가 가시화되었을 경우의 부작용을 사전에 예방하지 못하고 방치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전망이다.
◇통화운용, 시장안정에 중점을 둔다= 금통위원장인 전철환(全哲煥) 한은 총재는 『최근 채권시장안정기금의 적극적인 채권매수에도 불구하고 시장전반에 걸친 불확실성이 아직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말했다.
안정적인 장기성장을 위해 물가 관리에 최우선적으로 나서야 하는 중앙은행 총재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상황이 물가관리에 매달릴 수 없을 정도로 좋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금통위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콜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도록 하고 채권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은행지준을 여유있게 운용하며 시장상황에 따라 공개시장 조작을 탄력적으로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환매 조건부채권(RP)매입등을 통해 시중에 자금을 계속적으로 공급해주면서 금리가 더 이상 치솟는 것은 억제하겠다는 의미다.
금통위의 이같은 결정은 최근들어 장기금리가 소폭 하락했다고는 하지만 장단기금리차(회사채-콜금리)가 4% 이상에 달하고 금융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주가가 급락하는 등 시장상황이 예사롭지 않다는 상황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날 금통위 결정과는 달리 내년 이후의 가시화될 인플레를 사전에 막기 위한 선제적인 통화관리의 필요성도 한은 주변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한은 발표대로 올 성장률이 8.8%에 달한다고 볼 경우 내년이후에는 성장과 경상수지 흑자 등 내적 요인과 유가를 비롯한 국제원자재가격 등 외적 요인이 올 연말, 내년초 인플레 압력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그동안 저물가의 바탕이 된 GDP 총수요 갭(총수요에서 총공급을 뺀 것)이 마이너스상태에서 꾸준히 좁혀져 최근에는 0%에 근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IMF이후 극도로 위축되었던 소비 등이 회복되면서 수요요인은 증가하고 있고 공급은 구조조정등으로 더이상 확대될 수 없다고 볼때 내년 이후의 인플레는 당연한 수순이다.
최공필(崔公弼)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시장안정도 중요하지만 선제적 통화관리를 통해 내년 이후에 가시화될 인플레 압력을 일부 흡수해야한다』고 통화정책이 일부 긴축으로 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년 인플레는 예정된 수순= 전철환 한은 총재는 이날 금통위가 끝난후 『경기의 지속적 상승에 따른 총수요 증대에 따라 내년 이후 물가상승률이 높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
단기적으로 통화정책을 시장안정에 두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인플레 관리에 나설수 밖에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이날 한은에서 발표한 물가상승률 전망은 올해 0.8%에서 내년에는 3.8%로 급상승한다. 여기다 최근 대우사태 등으로 일부 저평가되어 있는 환율이 정상적으로 평가절상될 경우에는 인플레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다.
한은은 또 수요항목별로 소비와 설비투자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호조를 지속할 것으로 내다봤으며 수출이 꾸준히 늘어난 데다 건설투자도 내년에는 증가세로 반전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경우 생산, 투자, 소비 등 모든 부분이 IMF 이전의 고성장체제로 완전 복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은은 소비자 물가를 3.8%로 전망하면서 올해 유가상승 영향이 내년에 현재화하고 임금오름세 등 비용요인 등으로 인한 물가상승압력이 증대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리고 내년에는 총선까지 있어 이래 저래 물가는 내년 경제의 주요 테마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全한은총재가 우리경제가 수용할 수 있는 물가상승률이 3~5%수준이라고 말했지만 인플레 불안요인들이 잠복해있기때문에 내년의 물가상승률이 이 수준을 벗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온종훈기자JHOH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