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자사 반도체 사업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렸거나 사망한 근로자와 관련해 이른 시일 내에 경영진의 공식입장을 내놓기로 했다. 삼성전자가 그동안 백혈병 산업재해 논란에 대해 여러 채널을 통해 조사결과와 보상대책 등을 내놓은 적이 있지만 경영진이 공식입장을 밝히기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삼성 측이 경영진 입장을 내기로 한 만큼 기존 입장에서 진전된 전향적인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김준식 삼성전자 부사장은 14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반도체 백혈병 가족 측에 대한 삼성전자의 입장'이라는 자료를 내고 "심상정 정의당 의원 측의 중재보상안 제안에 대해 경영진이 이른 시일 내에 공식입장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이번에 중재안에 대한 입장을 내놓기로 함에 따라 지난 2007년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의 여성 근로자 황유미씨가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후 7년간 끌어온 이 문제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기흥 반도체 공장 백혈병 문제는 2007년 3월 황씨가는 급성백혈병으로 사망하면서 불거졌고 황씨 부친은 같은 해 6월 산업재해 유족급여를 신청했다. 이후 2007년 11월 '삼성 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 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반올림)'가 발족했고 이듬해부터 백혈병 피해자들의 산업재해 신청과 행정소송 등이 잇따랐다. 2011년 서울행정법원이 황씨 등 2명에 대해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으나 근로복지공단이 이에 불복, 항소해 아직도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지난해 12월 6년여를 끌어온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 본협상을 시도했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2011년 반도체·액정표시장치(LCD) 사업장에서 일하던 임직원이 퇴직 후 3년 내 암에 걸리면 1억원 한도에서 10년간 치료비를 지원하는 제도를 발표하고 작업장 환경을 개선하는 등 재발방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근무환경과 암 발병 간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올해 초 황씨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된 데 이어 이달 9일 심 의원과 반올림이 기자회견을 갖고 직업병 피해자 및 유족 구제를 위한 결의안 발의 계획을 밝히는 등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자 삼성 측으로서는 사태해결을 서둘러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유가족 측과 심 의원 등이 삼성 측에 제안한 내용은 크게 △공식사과 △제3의 중재기구 구성과 여기서 마련한 방안에 따른 보상 △제3의 기관을 통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의 종합진단 및 재발방지 대책 수립 등 3가지다.
관심은 삼성전자가 경영진의 입을 통해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함께 근무환경과 암 발병 간의 인과관계를 인정할지 여부다. 김 부사장은 '백혈병 사망 근로자들의 피해원인이 삼성전자에 근무했기 때문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이냐'는 질문에 "확답하기는 어렵다. 여러 가지를 검토하고 있다"며 "유가족과 관련된 분들을 치유하고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삼성 측이 전향적인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을 지향하는 삼성전자로서는 작업장 안전과 관련 있는 백혈병 문제는 '아킬레스건'"이라며 "유가족 측과 정치권에서 금전적 보상보다 진정성 있는 사과와 산업재해 인정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삼성 측이 이를 받아들일지 여부가 향후 문제해결의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