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아세안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나섰다.미국의 반대로 좌절됐던 아시아통화기금(AMF) 부활을 공식적으로 제기하는 가 하면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을 겨냥, 노골적인 비판을 서슴지 않고 있다.
또 오부치 게이조 총리는 16일 하노이 현지에서 아시아 국가들에게 연리 1%의 초저금리로 모두 6,000억엔(51억달러)의 엔차관을 추가로 지원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잇따라 선심공세를 퍼부어 미국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 미 월가의 위축 등으로 최근 미국측의 입지가 약화된 틈을 타 아시아에서 확고한 영향력을 굳혀놓겠다는 포석인 셈이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는 16일 미국과 일본이 아시아지역에서 치열한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면서 앞으로 양국간의 긴장관계가 더욱 격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야자와 기이치 일 대장성 장관은 15일 『일본과 중국, 홍콩 등 자금력을 갖춘 국가를 중심으로 투기세력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아시아 펀드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들어 일본의 고위 당국자가 AMF 구상계획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미국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던 AMF를 1년여만에 되살리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기존의 국제 금융시스템과 IMF가 금융시장의 위기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면서 아시아를 위해 따로 자금을 비축해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야자와 장관은 IMF에 대해서도 대출조건을 보다 완화시켜야 한다면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그는 이날 일본이 IMF 페기를 원하고 있다는 일부 주장을 부인하면서도 지금이야말로 IMF의 개혁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또 오부치 총리는 엔차관 창설을 통해 아시아 국가들의 도로, 발전소, 공항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에 40년 만기의 장기차관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일본이 내부문제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경제 회복의 견인차 역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오부치 총리는 일본과 한국, 중국 등 동북아 3개국의 대화를 활성화시켜 장기적으로 「삼자간 네트워크」를 창설하자고 제안했다.
【정상범 기자】